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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1~22일 이틀간 강원 동해안과 산간지방에는 최고 1m가 넘는 ‘눈 폭탄’이 떨어졌다. 학교는 임시휴교령을 내렸고, 마을이 고립돼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당연한 수순인 듯, 비난의 화살은 기상청을 향했다. 이 모든 피해는 예보가 빗나갔기 때문이라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예보관들은 한순간에 ‘죄인’ 취급을 받았다. 천기(天氣)를 ‘누설’해야 하는 예보관의 ‘숙명’치곤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지난 1월 14일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 국가기상센터를 찾았다.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예보관들과 24시간을 보내며 매초 날씨와 사투를 벌이는 그들의 일상을 체험했다.

1월 14일 07:50

“안녕하세요.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정준석 예보관이 중앙에 위치한 원탁에 앉아 마이크를 켜고 전날 밤 8시부터 12시간 동안의 기상 상황을 요약한다.
“호남 서해안과 경북 상주, 구미에 약하게 눈이 내리고 있다”는 실황부터 전한 뒤 “한랭건조한 기단이 동해안으로 내려갔고, 기단이 백두대간을 넘지 못해 최저기온이 영하 7.4℃로 떨어졌다”며 일기도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16일 오전 서울·경기 지역에 눈이 올 확률이 있다”며 주간예보를 내놓는다(실제로 이날 오전 서울·경기 지역에 눈이 내렸다).

매일 아침 7시 50분이면 국가기상센터에서 어김없이 벌어지는 광경이다.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그리고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예보관들은 8명이 한 팀이 돼 24시간 날씨를 감시한다. 그러니까 이 브리핑은 야간 근무를 마친 팀이 다음 팀에게 그간의 날씨를 종합해 요약해주는 시간인 셈이다.

밤샘 근무 탓인지 야근 팀의 얼굴엔 피곤이 가득하다.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 그들은 퇴근한다. 식당에 쫓아 내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이제 가서 자야죠. 그런데 눈은 왜 강남에만 온 거야?” 한 예보관이 옆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다. 심기가 불편한 눈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다시 2층으로 올라오니 다들 컴퓨터 앞에 앉아 분주하다. 김남욱 예보관에게 ‘강남에만 온 눈’ 얘기를 물었다. 서울에 눈이 내린다고 예보했는데, 공교롭게도 강북에는 눈이 안 오고 강남에만 눈이 왔단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아침부터 한 방송사가 “기상청 오보”라는 뉴스를 내보냈단다. 조금 전 식당에서 허탈해 하던 예보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억울할 만도 하겠다.

1월 14일 11:00

“장성에 적설 있어?”
“오후에! 장성 있고, 정읍도 있어.”
“고창, 강수 확률 100%에서 80%로 내렸습니다.”
딜러들이 소리치며 일하는 외환딜링룸을 방불케 한다. 10시 50분, 11시 예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날씨를 점검하는 중이다. 이인성 예보사가 “3시간 단위로 동네예보를 해야 한다”며 귀띔한다.

기상청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동네예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전국을 한 변이 5km인 정사각형으로 나눠 기온과 강수확률, 바람의 세기와 방향, 습도 같은 12가지 기상요소를 3시간마다 동네별로 제공한다. 전국 3500여개 읍·면·동을 포함해 4400여개 지역의 날씨 정보가 아침 8시부터 3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여덟 차례 제공되는 셈이다.

덕분에 예보 정확도는 높아졌다. 대신 예보관들은 죽을 맛이다. 3시간 주기로 날씨를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모든 작업이 컴퓨터에서 이뤄지니 한 순간도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다. 김남욱 예보관은 메신저로 전국 46개 기상대 예보관과 지역 기상상황을 수시로 논의한다.

1월 14일 11:30

한쪽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4명만 일어나고 나머지 4명은 그대로 앉아 있다. 국가기상센터를 한 시도 비워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밥도 교대로 먹는다. 구내식당에서 ‘새치기’는 기본. 다른 직원들도 예보관들에게는 군말 없이 맨 앞자리를 내준다. 밥 먹는 덴 10분도 채 안 걸린다. 그들에게 여유로운 점심시간이란 꿈도 꿀 수 없다.

식사를 마친 뒤 박지훈 예보사가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간다. “오전 9시에 각 나라에서 관측한 기상자료가 전송되는데, 지금쯤 전송이 끝났을 것”이라며 후다닥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일기예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크게 4단계. 그 중 첫 단계가 현재 기상 관측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다. 날씨라는 것이 자국의 하늘만 관측한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반구 중위도 지방에서는 대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현재 유럽 날씨가 10일 뒤 한국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 밤 9시 두 차례에 걸쳐 각 나라 1000여 군데가 육, 해, 공을 망라한 관측 자료를 GTS라는 기상 통신망으로 동시에 교환한다. 한국도 육상(623개), 해상(19개), 고층(19개)에서 관측한 자료를 보낸다.

당연히 데이터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 자료들이 모두 모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자료가 모이는 대로 예보사 2명이 달라붙어 일기도부터 그린다. 일기도는 고도에 따라 총 9가지. 지상부터 하층(1.5km 상공), 중층(3km 상공), 고층(5.5km 상공)까지 마치 컴퓨터단층촬영을 하듯 고도에 따라 일기도를 그린다.

바쁘게 손을 놀리는 박지훈 예보사는 강풍이 가장 강한 곳이 어디인지 일기도에 붉은색 굵은 화살표로 제트기류를 그리고 있다. 그는 “강풍 모양에 따라 저기압이 발달하거나 소멸하는 현상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제트기류가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1월 14일 12:00

옆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박영주 주무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박영주 주무관은 30분마다 한 번씩 수신되는 위성사진과 레이더영상을 분석해 예보관에게 알린다. 몇 시간 앞을 예측하는 단기예보에서는 위성사진과 레이더영상이 가장 정확하다. 이 자료를 분석하면 구름의 이동 속도를 파악해 비나 눈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 가령 여름철 대류성 구름은 위성사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박영주 주무관은 “오늘 새벽에 내린 눈도 위성사진에서는 구름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1월 14일 12:30

“예상도 나왔나?”
김남욱 예보관이 큰 소리로 묻는다. 슈퍼컴퓨터가 관측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날씨 예상도가 나왔냐는 뜻이다. 일기도와 위성사진, 레이더영상이 현재 기상 관측 자료라면 예상도는 미래 날씨를 예측한 자료다. 일기예보의 두 번째 단계가 이 예상도를 얻는 일이다. 일기도와 위성사진, 레이더영상에 예상도까지 갖춰져야 예보관은 세 번째 단계로 비가 온다 안 온다, 날씨가 흐리다 맑다는 결정을 내놓을 수 있다. 저쪽에서 “첫 예상도가 나왔다”는 문보영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현재 국내 슈퍼컴퓨터가 예상도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수치모델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전지구모델을 비롯해 지역모델, 태풍모델, 황사모델 등 너댓가지. 모델이 여러 가지인 이유는 초기 조건을 조금씩 다르게 지정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기상청의 통합수치예보모델까지 도입해 수치모델은 하나 더 늘었다. 올해 슈퍼컴퓨터 3호기가 도입되면 영국 모델도 정상 운영돼 예보의 질도 향상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남욱 예보관은 “슈퍼컴퓨터는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존재”라며 슈퍼컴퓨터에 대한 ‘환상’을 깨뜨렸다. 그는 “수치모델 연구가 앞선 미국에서도 여전히 100km 정도 오차가 생긴다”며 “이 정도면 땅덩이가 좁은 한국에서는 서울과 대전 사이의 기상 예보는 빗나갈 확률이 큰 셈”이라고 말했다.

1월 14일 14:00

오후 2시 예보를 마치고 한숨 돌리나 했는데 김남욱 예보관은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조금 전 슈퍼컴퓨터에서 마지막 예상도가 나왔다면서. 이제 그가 날씨를 결정할 때다. 입이 바짝바짝 타는지 그는 혀로 계속 입술을 훔치며 모니터에서 한반도 이곳저곳을 색칠했다 지우길 반복한다.

1시간쯤 지났을까. 전준모 예보상황과장이 중앙 원탁에 앉아 지방기상대 예보관들과 화상회의를 시작했다. 여기서 회의한 결과가 오후 5시 예보로 나간다. 슈퍼컴퓨터가 내놓은 예상도가 포함되기 때문에 오후 5시 예보는 이후 12시간 동안 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청주가 문젭니다. 내일 경기 남부와 강원 영서 지방에는 눈이나 비가 올 것으로 예상하거든요. 청주는 그 접경지대라 예상하기 좀 어렵습니다. 예상도엔 강수 확률이 있으니 다시 한 번 검토해보죠.” 예보관의 예보 권한은 누구의 침해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예측한 내용이 서로 다를 땐 의견을 조율하기도 한다.

1월 14일 17:20

예보를 시작한 지 꼬박 9시간이 지나서야 국가기상센터 분위기가 조금 여유를 찾았다. 오후 5시 예보가 나갔기 때문이다. 이때다 싶어 머릿속에 담아놨던 질문을 꺼냈다. “예보도 오래하면 ‘달인’이 되지 않을까요?”

그간 예보관의 경력 부족을 문제삼아온 언론 보도를 다분히 의식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김남욱 예보관은 지난달 예보 정확성 평가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런데도 “다음 달엔 꼴등할 수 있는 게 예보”라며 손을 내저었다. 기상청에서 ‘예보통’으로 불리는 전준모 예보상황과장은 예보 경력 25년이지만 “날씨는 단 한 번도 같은 경우가 없다”며 “예보에서 ‘달인’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름철은 예보관들에게 유독 곤혹스러운 계절이다. 날씨 변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전준모 예보상황과장은 “한반도는 저위도와 고위도 사이에 있어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부딪칠 수밖에 없고, 삼면이 바다인데다가, 중국 대륙과 한반도 사이에 서해가 있어 예측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죽하면 “한반도를 뚝 떼어다 미국 한가운데 갖다 놓으면 예보 적중률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할까.

1월 14일 20:00

저녁 8시, 앞 팀과 바통 터치를 하고 새로운 팀이 야간 예보를 시작했다. 3시간 마다 예보를 하고, 밤 9시 세계 각국에서 기상 관측 자료를 받고, 이를 토대로 자정부터 2시간에 걸쳐 슈퍼컴퓨터가 예상도를 내놓으면, 새벽 5시 예보에서 새로운 일기예보를 내놓은 일은 낮과 동일하다. 다만 간밤에 기상특보가 생기거나 미처 예상 못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지 더 긴장해야 한다.

오늘 밤은 한파주의보가 발표됐다. 윤성득 예보관은 “전날 아침 최저기온보다 10℃ 이상 떨어지고, 이 기온이 평년 기온보다 낮을 때 한파주의보를 발령한다”고 설명했다. 저녁 8시를 기해 전북 진안군과 무주군, 장수군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됐다.

1월 14일 22:00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방송국에서 마감뉴스를 하기 전 마지막으로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건 모양이다. 박경희 통보관이 친절히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밤 11시까지 전화벨은 간간히 계속 울린다. 그에게 밤 근무 노하우를 물었다. “충분히 자고 오는 방법 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보관들은 ‘낮 근무-밤 근무-이틀 휴식’이라는 4일 주기로 생활하기 때문에 4일에 한 번씩은 밤 근무에 ‘시차적응’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예보관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체력이다. 박경희 통보관도 동네 스포츠클럽에서 일주일에 2~3번 탁구를 치며 건강을 관리한다.

1월 15일 04:00

슬슬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하품을 하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4시. 하지만 새벽 5시 예보를 앞두고 국가기상센터 안은 낮과 다름없이 분주하다. 생각보다 한파가 심한 모양이다. 어젯밤 10시부터 두 차례에 걸쳐 한파 특보가 발표됐다.

1월 15일 07:50

하루가 지나고 다시 아침 브리핑 시간. 윤성득 예보관은 “오늘 아침 최저기온이 올 겨울 들어 가장 낮은 지역이 많다”고 전달한다. 브리핑이 끝나자 홍윤 예보국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한파가 문제였다. 예보관들이 한파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스포츠 중계하듯 한파가 발생할 때마다 특보를 낼 것이 아니라 왜 한파가 닥쳤는지 설명을 곁들였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홍윤 예보국장은 “국민이 원하는 일기예보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밤새 고생한 것을 알기에 예보관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깝다.

1월 15일 00:40

기상청 정문에 들어선지 25시간 만에 퇴근하는 길. 차가운 아침 공기에 잠이 확 깬다. 초등학교 자녀가 소풍가는 날 비 예보가 있어 학교에 날짜를 바꾸라고 얘기했다가 실제로 비가 와 ‘스타’가 됐다는 이인성 예보사, 지난해 중국 후진타오 주석 방한 당시 청와대에서 야외행사 직후 소나기가 쏟아져 마음을 졸였다는 전준모 예보상황과장 그리고 일본은 주간 일기예보에 A(변화 가능성 크다), B(변화 가능성 약간 있다), C(변화 가능성 적다) 같은 등급을 붙여 날씨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는다며 우리도 예보 체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박경희 통보관까지, 하나 둘 얼굴이 떠올랐다.

1년 내내 하늘을 쳐다보며 마음 졸이고 지내는 사람들. 주말도, 공휴일도, 명절도 없이 국가기상센터를 지키는 그들에게 예보가 적중했을 때 전하는 칭찬의 댓글이 큰 힘이 되진 않을까.

제트기류
대류권 상부 혹은 권계면 부근의 좁은 영역에 집중된 강한 기류. 일반적으로 길이는 수천 km, 폭은 수백 km, 두께는 수백m에 이른다. 저기압을 만드는 강한 바람으로 알려져있다.

대류성 구름
여름철 지표면의 따뜻한 공기와 상층부의 찬 공기가 상충하면서 발생하는 구름. 갑작스런 폭우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보팀, 어떻게 구성되나
예보상황과장(1명) 예보팀 사령탑. 예보관과 수시로 예보 내용을 상의한다. 한파, 폭우, 풍랑주의보 같은 특보를 담당한다.
예보관(1명) 날씨를 결정한다. 동네예보를 담당한다.
통보관(1명) 주로 언론을 상대로 예보 내용을 알려준다. 주간예보를 담당한다.
예보사(3명) 일기도를 작성하고(2명), 예보가 나간 뒤 예보 내용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한다(1명).
주무관(2명) 위성사진과 레이더영상을 분석하고(1명), 슈퍼컴퓨터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감시한다(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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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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