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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유학일기] 낙제는 통과의례? 교수와 관계는 걱정 NO~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독일 대학은 학생을 너무 사랑한다고. 너무 사랑해서 붙들고 놔주질 않는다고. 사실 이 정도면 거의 일방적인 집착 수준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일단 시험에서 성적을 잘 안 준다. 정확히는 낙제를 시킨다. 독일 대학은 1.0(최상)~4.0(최하)으로 성적을 매기고, 그 아래는 전부 5.0이다. 5.0은 낙제를 뜻하는데, 이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워낙 많아서 제때 졸업 하는 학생이 드물다. 
교수님들은 “나 때는 말이야, 80%가 낙제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나으니 행복한 줄 알라”고 말한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한 시험에서 고작(?) 60~70%가 낙제한다. 
낙제율이 이렇게 높다 보니 ‘4.0 gewinnt(직역하면 ‘4.0이 이긴다’로 4.0이 최고라는 뜻이다)’를 외치는 학생이 많다. (나를 포함해) 4.0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성적을 정정하는 날에는 4.0을 받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온갖 점수를 끌어모으려는 ‘스코어 헌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이미 채점 당시에 줄 수 있는 만큼 최대로 준 점수이기 때문이다. 
같은 과목에서 두 번 낙제를 받은 학생들은 ‘진실의 방’이라 불리는 교수 연구실에 간다. 그곳에서 교수, 조교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구술시험을 봐야 한다. 
이게 참 고역이다. 마지막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시험이라 부담감이 상당한 데다가 이 시험마저 떨어지면 다니던 학과뿐만 아니라 독일 대학 중 그 과목을 배우는 학과에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카를스루에공대 경제수학과에 다니며 ‘해석학1’ 수업을 3번 낙제하면, 독일 내 해석학1을 배우는 모든 학과에 지원할 수 없다. 
반면 한 과목을 3번 낙제하지 않으면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지 퇴학은 면한다. 이는 대학마다 조금씩 다른데, 내가 자퇴한 아헨공대는 최대학기(독일 대학 중에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학기 수가 정해진 경우가 있다)가 없거나 매우 길다. 카를스루에공대는 전공마다 최대학기가 정해져 있다. 잦은 낙제로 졸업이 계속 늦어진 학생들은 대개 9~10학기 안에 졸업한다. 
독일에선 수능을 한 번 보면 성적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수능을 잘 본 학생들은 전학이나 전과가 쉽다. 그래서 낙제로 힘들어하다가 첫 학기에 그만두고 학교나 전공을 바꾸는 학생이 주변에 많다. 필자의 경우도 카를스루에공대에 입학한 후 1학기 때 경제수학과 오리엔테이션에서 마음이 잘 맞는 친구 7명과 그룹을 만들었는데, 이 중 필자를 포함한 3명만 경제수학과에 남아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2명은 산업공학과로 전과했고, 1명은 대학을 바꿨고, 다른 한 명은 연락이 두절됐다. 
독일 대학에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교수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독일은 애초에 교수의 주 업무가 연구고, 강의는 어찌 보면 부수적인 일이라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 교수가 많다. 심지어 학생도 많은데 출석은 부르지 않으니 학생들을 잘 모른다. 
시험 채점도 교수가 아닌 대학원생(튜터)이 하고,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이뤄진다. 그러니 교수와 사이가 나쁘다고 해서 성적에 불이익이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교수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학생들은 교수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학들이 온라인 강의를 진행해 학생과 교수 사이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사제 간에 친밀감이 없다는 점에서 삭막해 보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예를 들어 학과에서 진행하는 축구 시합에서 교수들이 학생들과 어울려 경기를 하고, 밴드 공연이 있을 때도 학생과 교수가 함께 모여 연주한다. 개인적으로는 독일 대학의 이런 분위기가 꽤 맘에 든다. 

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원창섭 독일 카를스루에공대(KIT) 경제수학과 3학년
  • 에디터

    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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