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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지층, 해양 동식물 샘플 보관에서 대여까지

해양연구의 규장각, ‘해양시료도서관’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보물창고인 규장각. 규장각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1776년 9월 25일에 창덕궁 금원의 북쪽에 세운 학문연구기관이자 도서관이다. 1946년부터 서울대가 규장각의 모든 자료를 이어받아 관리하고 있으며, 2006년 한국문화연구소와 통합돼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됐다.

현재 규장각에는 조선왕조실록 같은 조선왕실의 고문서나 도서, 국보와 보물지정 자료 총 26만여 점이 보관돼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곳에 잠자고 있는 수많은 자료를 분석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아내는데 여념이 없다. 이들에게 규장각은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연구실인 셈이다.

규장각 같은 사고(史庫)가 역사학자들에게만 필요할까? 한국해양연구원 임동일 박사는 “해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도 규장각 같은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가 보관하려고 하는 것은 해양학 관련 도서가 아니다. 그는 해양탐사로 얻은 해저 퇴적층이나 동식물 샘플 같은 시료를 보관할 ‘해양시료도서관’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한번 보관 잘한 해양시료, 열 번 탐사 안 부럽다
임 박사는 해저의 지질학적 현상을 연구해 대양과 지구의 역사를 밝히는 해양지질학자다. 그는 한 해 수차례 배를 타고 나가 우리나라 근해 또는 태평양 연안 해양퇴적물코어를 분석한 뒤 이를 토대로 해양의 형성과정이나 지질변화의 역사를 연구한다.

해양퇴적물코어란 배 위에서 긴 원통관을 떨어뜨려 해저의 퇴적층을 뚫고 들어가게 한 뒤 회수해 채집한 해양퇴적물 시료를 말한다. 그에게 1년에 고작 수mm 밖에 쌓이지 않는 해저퇴적물은 바다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인 셈이다.

10년 넘게 우리나라 해저지층을 연구해온 임 박사는 길이가 수 m에 이르는 해양퇴적물코어를 수십 개 뽑아 연구할 때마다 애가 탄다. 해양퇴적물코어에 담겨 있는 수 만년 바다의 역사를 모두 분석하려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데, 이 코어를 장기간 보관하면서 연구할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 분석 자료만 얻은 뒤 임시 보관소인 컨테이너에 쌓아둔다.

“정확히 말하면 ‘방치’입니다. 큰돈을 들여 배를 타고 나가 힘들게 뽑은 해양퇴적물코어를 그냥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일단 줄줄이 쌓아 두긴 하는데…. 수년이 지나면 다 말라비틀어져서 결국 버립니다. 보관만 잘 하면 몇 년 동안 논문 몇 개는 나올 귀중한 연구 자료인데 말이죠.”

임 박사는 해양학 분야에서 해양시료를 보관하는 시설이 필요한 이유를 “지구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지질이나 기후, 생태계 변화를 오랜 시간에 걸쳐 추적하고 분석하는 해양학의 학문적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1960년대 이후 미국, 일본, 독일 같은 선진국은 전문적인 해양시료 보관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해양시료를 채취해 와 분석을 모두 마친 뒤에도 훗날 새로운 분석기술이 등장했을 때를 고려해 장기간 보관했다가, 새로운 연구과제 재료로 삼는다. 영국에서는 19세기 건초(乾草) 시료를 지금까지 매년 채취해 전용 시설에 보관하고 있는데, 최근 이를 재분석해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기후변화를 추적해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해양시료 보관시설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연구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해양시료를 채취하는 데 필요한 연구선은 하루 대여료만 온누리호가 1000만 원, 이보다 규모가 작은 이어도호는 500만 원에 이른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3대밖에 없는 연구선 대여 스케줄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임 박사는 “해양시료도서관은 단지 해양시료를 장기간 보관하는 저장소가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연구자에게 대여해주는 시설”이라고 강조하며 “도서관에 해양시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관리해 두면 나중에는 굳이 바다에 나가지 않고도 연구에 필요한 해양시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학자들이 해양시료를 공유하면 불필요한 연구비 중복투자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58억 원을 들여 건설할 예정인 해양시료도서관은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해양과학자를 꿈꾸는 학생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임 박사는 “학생들이 직접 해양시료를 분석하고 연구보고서를 쓰는 교육실험실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양시료도서관이 21세기 한국 해양연구의 ‘규장각’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해양2만리 과학3만리’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해양2만리 과학3만리’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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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울진=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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