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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꽁꽁 언 그곳의 생명 비결 ‘얼음 화학’

목성의 위성 유로파를 상상한 모습.
유로파를 뒤덮은 얼음을 매개로 생명의 기원이 되는 분자가 합성될 수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2025년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 착륙선을 내리겠다고 지난 2월 밝혔다. 유로파는 10~100m의 얼음으로 덮여 있는데, 여기서 생명체의 기원이 되는 물질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배경에는 얼음 화학이 있다.


2월 NASA가 발표한 유로파 탐사를 위한 상세 계획서의 핵심은 ‘착륙선’이다. 유로파는 두꺼운 얼음으로 표면이 뒤덮여 있고 아래엔 광대한 바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NASA는 실제로 바다가 있는지, 생명체의 흔적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2020년 유로파에 우주선을 보내는 ‘플라이 바이 미션’을 추진해왔다. 여기에 2025년에는 착륙선까지 내리겠다는 계획이 추가된 것이다(착륙선 계획은 3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가 발표한 예산안에 포함되지 못해 현재 좌초될 위기에 있다).


상식 뒤엎는 얼음 속 화학 반응
생명을 이루는 분자가 우주에서부터 진화했을 것이라는 가설에는 과학자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적외선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해보면 실제로 다양한 분자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떨어진 운석만 보더라도 포름알데히드, 일산화탄소, 물, 암모니아, 탄소고리화합물과 같은 다양한 유기분자들이 발견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 나올 질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다.

NASA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마크 뢰플러, 레기 허드슨 연구원팀은 2010년 유로파 얼음의 화학적 작용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얼음 속에 포함된 소량의 이산화황이 영하 수백℃의 낮은 온도에서 빠른 속도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아냈다. 연구팀은 NASA 홈페이지를 통해 “우주에서의 화학 반응은 방사선을 쪼였을 때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두꺼운 얼음 속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고 말했다. 이는 낮은 온도에서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상식을 뒤집었다.

분자가 얼음을 매개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변화했다니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것은 지구 중심적인 생각이다. 확률로만 따지면 기체보다는 고체인 얼음에서 반응이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원자들이 기체상태로 만나 분자를 이룬다고 가정해보자. 화학 반응이 일어나려면 적어도 삼중 충돌이 일어나야 하는데(원자와 원자가 만나 들뜬 중간체가 되고, 여기에 또다른 원자가 부딪쳐 분자를 생성한다) 그 빈도가 대략 1017년 동안 1번이다. 100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 동안 화학 반응이 0.0000001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극한 우주의 얼음 화학… 지상에서도 가능할까?
얼음에서 이 확률은 껑충 뛴다. 성간 영역은 온도가 영하 273℃~영하 150℃에 이르는 진공 환경이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메탄올 같은 단순한 성분이 차가운 얼음층으로 덮여 먼지 입자를 형성하고 있다. 확률적으로만 따지면 여기에 1년에 100만 개의 분자가 부딪힌다. 이 분자들이 쌓이고, 쌓인 것들끼리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화학 반응이 일어날 확률은 1억 년에 1번 정도. 우주의 역사에서 약 100번의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강헌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꽁꽁 얼어붙은 성간 구름의 먼지 입자 표면에서 분자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팀은 극저온 초진공 장치를 이용해 성간 물질이 모이면서 별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의 환경 조건을 재현했다. 연구팀은 실험 장치 내부를 10K~100K(영하 약 260~170℃) 온도의 고진공 상태로 만들고, 인공 얼음 시편을 만든 뒤 이산화탄소, 메틸아민 성분을 넣었다. 그리고는 1억 년에 걸쳐 이뤄지는 화학반응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얼음 시편에 자외선을 쪼인 뒤, 시편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질량분석기로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얼음 시편 위에서 아미노산 분자가 만들어진 사실이 확인됐다(doi:10.1088/0004-637X/697/1/428). 강 교수는 “이런 반응이 계속된다면 간단한 성간 물질이 인간의 몸을 이루는 핵산의 염기분자(아데닌)를 생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지의 얼음이 저위도에서 생성된 오염물질의 독성을 없애는 자정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중금속 폐수… ‘얼려서’ 독성 뺀다
얼음의 독특한 화학 반응은 지구의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열쇠가 된다. 1992년 일본 연구팀은 나이트라이트(아질산염) 물질이 물에 있을 때보다 얼렸을 때 10만 배 빠른 속도로 산화한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11년 5개월에 걸쳐 일어나는 반응이 1시간 만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김기태 극지연구소(극지연) 극지고환경연구부 선임연구원은 이런 독특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이 얼음의 ‘동결농축효과(Freeze concentration effect)’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얼음은 고체라고 생각하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완전히 얼어붙지 않은 영역이 존재한다. 얼음 결정 주위에 얼지 않는 층이 있다. 마치 사람의 혈관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유사액체층(Liquid-Like Layer)’이라고 한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얼지 않는 유사액체층에서 유기물의 농도가 수천~수만 배 상승하고, 산소가 농축되며, pH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김 선임연구원은 유사액체층에서는 산화환원 반응 속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극지연 연구팀은 해양수산부에 내년부터 6년 동안 ‘얼음화학 특성 연구를 통한 극지방 자연현상규명 및 응용기술 개발’ 연구를 할 것을 제안한 상태다. 극지방과 지구의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오염물질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극지연, 한림대, UNIST, 체코 마사릭대 공동 연구팀이 중금속인 6가 크롬이 녹아있는 폐수가 얼어붙으면서 독성이 크게 줄어드는 현상을 밝혀 1월과 3월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발표했다(doi:10.1016/j.jhazmat.2017.01.031, doi:10.1016/j.scitotenv.2017.02.176). 발암물질인 6가 크롬은 도금 공정에서 주로 발생한다. 실험결과 이런 6가 크롬을 1시간 동안 얼리면 인체 유해성이 낮은 3가 크롬으로 환원시킬 수 있었다. 김 선임연구원은 “유사액체층에 6가 크롬과 수소 이온 등이 모이면서 크롬의 농도가 수십만 배까지 높아지고 pH가 낮아져 크롬의 환원반응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것을 활용하면 두 가지 독성물질을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가 비소가 녹아있는 오염물질은 독성이 강해 5가 비소로 산화시켜 내보내야 한다. 3가 비소를 6가 크롬과 섞어 얼리면 비소는 산화되고, 이때 나온 전자가 크롬에 전달되면서 환원된다. 용매독를 얼려서 독성물질이 유사액체층으로 더 잘 모여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연구팀은 같은 원리로 저위도에서 생성된 중금속과 유기오염물질이 극지방의 얼음 속에 갇히면 독성이 빠르게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극지 생태계·기후 바꾼다
크릴이나 바다표범 같은 극지 생물에게 빙산의 주변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미국 몬테레이만 해양연구소 연구팀이 2007년 남극해의 빙산 주변을 배로 따라다니며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빙산 주변에는 생물의 개체수가 많고 바다의 1차 생산력이 높다. 이유는 빙산이 바다에 철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철분은 남극해를 포함한 몇몇 바다의 생산력을 좌우한다. 철분이 많아야 플랑크톤이 증가하고, 이것들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때 철분이 이용 가능한 형태로 바닷물에 녹아 나오려면 얼음의 화학적 풍화작용이 필수다.

얼음의 독특한 화학 반응은 극지방 대기의 조성도 변화시킨다. 요즘 같은 봄철 남극 해빙 지역에서는 얼음에서 아이오딘이 나와 대기 중 아이오딘 농도가 높아진다. 얼음이 물에 있는 아이오딘 성분을 얼려 활성이온으로 변환시킨 뒤, 녹을 때 대기로 방출하기 때문이다. 극지방의 대기 중 아이오딘 성분은 오존을 감소시킨다. 또 구름 생성을 촉진하는 미세입자로도 쓰인다. 김 선임연구원은 “매년 계절에 따라 미국 면적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의 해빙이 얼었다 녹는다”며 “해빙의 화학 반응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더 읽을거리
EUROPA LANDER SCIENCE DEFINITION TEAM REPORT (2016)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특집] Part 1 ‘세 과학자의 이상한 물’ (2015.4.)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504N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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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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