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집으로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다. 회사원 A씨는 툴툴대며 출근 준비를 한다. 신문배달원이 실수로 우리 집을 빠뜨렸나. 오전 10시, 거래처 담당자와 계약을 해야 하는데 계약서가 없다. 이런. 점심시간, 밥을 먹고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지만 영수증을 받을 수 없다. A씨는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든다. 오후 1시, 은행에서 새로운 계좌를 개설하려는데 신청서가 없다. 오후 3시, 임차인에게 임대차계약 만료를 통보하는 내용증명을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우편에 뭘 넣지? 일진이 나쁘다고 해버리기엔 분위기가 심상찮다. 오후 7시, 치과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약국에서 약을 받을 처방전이 없다. 병원 한쪽 TV에선 “지구에서 종이가 사라졌다”며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종이 없이 인간은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0과 1로 이뤄진 전자문서
머지않아 정말 종이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전자문서가 차지할 수도 있다. 이미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은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유엔 190여개 회원국 중 한국의 전자정부 준비 지수는 세계 5위로 평가받는다. 최근 의료 분야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전자의무기록시스템을 도입하는 병원이 늘면서 의사는 전자 차트에서 환자의 모든 진료 노트와 검사 결과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전자문서는 전자적인 형태, 즉 0과 1로 이뤄진 정보가 컴퓨터에서 작성되고 저장되며 유통되는 정보를 말한다. 문자로만 구성된 텍스트 문서뿐만 아니라 그림, 음악, 동영상 같은 디지털콘텐츠도 넓게는 전자문서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의사 표시를 담고 있는 문서는 대부분 전자문서로 인정한다.
전자문서는 처음 작성한 문서를 편집하거나 수정하더라도 그 흔적이 남지 않아 위조와 변조를 할 수 있는 위험이 크고 복제로 무한히 재생산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종이에 비해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장점도 되지만 오히려 이것이 전자문서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전자문서의 약점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회사원 A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해답을 찾아보자.
전자서명으로 위·변조 막아라
오전 7시, 신문을 보고 싶다. 인터넷에서 신문을 검색해 관심 가는 기사를 온라인으로 읽을 수는 있다. 휴대전화나 PDA 같은 모바일기기에서 무선인터넷에 접속해 뉴스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출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간편하게 신문을 읽고 싶다면?
‘e-페이퍼’로 불리는 전자종이가 답이다. 전자종이는 종이처럼 얇고 잘 휘어지는 장점을 살려 LCD로 개발돼 현재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꼭 컴퓨터 모양의 전자기기가 아니더라도 전자문서를 담아 보여주는 일이 가능한 셈이다.
오전 10시, 종이계약서를 대신할 전자문서계약서가 가능할까? 이미 많은 곳에서 전자문서만으로 계약서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쇼핑몰이다. 쇼핑몰에서 어떤 상품을 살 때 ‘구매’ 버튼을 마우스로 클릭하는 순간 이는 쇼핑몰과 상품을 사는 사람 사이에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계약에 관한 일반적인 조건은 쇼핑몰에 가입하면서 ‘동의’를 클릭했을 때 이미 정해졌다.
그런데 A씨는 워드프로세서로 전자계약서를 작성하고 싶다. 이것도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문제는 위조나 변조를 어떻게 방지하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는 언제 어디서든 변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으로 계약서를 작성한다면 위조나 변조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기술은 해시함수(Hash Function), 워터마킹, 그리고 전자서명 3가지다. 우선 해시함수는 전자문서에 임의의 함수를 대입해 일정한 값(해시값)을 구하고 이를 별도로 보관한다. 만약 그 문서가 1바이트라도 변조되면 해시값은 달라지며 이 값과 원래 값을 대조하면 전자문서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해시값을 구하는 해시함수는 역함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역함수가 없기 때문에 해시값으로 원래 전자문서를 복제할 수 없다. 따라서 만에 하나 해시값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용해 원래 전자문서를 위조하거나 변조할 수 없다.
워터마킹은 전자문서 중에서도 그림의 위·변조 여부를 판별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가령 그림 어딘가에 미리 지정한 문자(워터마크)를 저장한 뒤 특정한 소프트웨어로 검증 과정에서 이를 검출하도록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원래 그림에서 변경된 부분이 있으면 그 문자는 검출되지 않아 그림이 원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전자서명은 공개키기반(PKI) 방식으로도 불린다. 공개키기반 방식은 개인키(비밀키)와 공개키가 한 쌍을 이뤄 개인키로 서명한 내용을 공개키로 검증하게 해 서명한 뒤 변조되지 않았음을 검증한다. 이 방식은 현재 기술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인터넷뱅킹 같은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공개키기반 방식은 전자서명법에서 규정하는 유일한 기술이다.
중요한 전자문서 대신 보관해드려요~
오후 1시,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종이신청서 없이 무사히 할 수 있을까? 계좌를 신청할 때 필요한 도장은 어디에 찍을까? 서명은 어디에 하지?
실제로 ‘종이 없는 은행’은 지난해 국민은행이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은행 창구에는 종이 대신 고객의 전자단말기 구실을 하는 15인치 소형 노트북이 있다. 노트북은 양면이라 은행 창구 직원은 고객과 동일한 화면을 보면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고객이 단말기에 전자펜으로 자신의 개인정보와 금융 업무를 입력하면 전자 서식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고객은 서명란에 자신의 서명까지 할 수 있다.
이때 서명은 전자잉크 기술을 이용해 서명의 필순이나 서명 과정의 압력, 속도 같은 주요 사항을 모두 기록한다. 나중에 분쟁이 생길 경우 서명 기록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종이 없는 은행’은 전표처럼 종이에 사용되는 연간 수십억 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경제성도 뛰어나다.
오후 3시, 임차인에게 보낼 내용증명을 종이 없이 어떻게 처리할까? 내용증명을 발송한 날짜는 또 어떻게 증명하나. 방법은 두 가지다. 우정사업본부가 서비스할 예정인 내용증명 전자우편을 사용하면 된다.
또는 공인전자문서보관소를 통해 내용증명 메일을 보낼 수 있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는 지난 2005년 3월 정부가 세계 최초로 설립한 것으로 쉽게 말해 전자문서를 대신 보관, 관리한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전자문서를 보관할 수 없을 때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는 중요한 전자문서를 보관하고 공증하는 일을 대신한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에 보관되는 문서들은 원본을 보호하기 위해 CAS(Content Addressed Storage)라는 특수 저장 장비에 보관된다.
그런데 전자문서를 오늘 보냈다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할까? 여기에는 시점인증(time-stamp) 기술이 사용된다. 전자문서가 언제 작성되고 언제 발송됐는지 증명하기 위해 일종의 시각 스탬프를 찍는 셈이다.
저녁 7시,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어떻게 약을 받을까? 최근 국내에서도 많은 병원이 진료기록과 처방기록을 실시간으로 전자문서에 저장한 뒤 전자의무기록시스템을 통해 약국과 공유한다. 약국에서는 이 시스템에 저장된 전자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한다.
현재 미국, 일본을 비롯해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전자문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법과 제도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종이문서를 요구하는 법제도를 고치고 종이만 요구하는 관행을 바꾸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종이 없는 지구’로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종이통장 대신 IC칩에 계좌정보를 내장해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전자통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음식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산 뒤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 대신 결제단말기에 서명을 하는 일은 흔해졌다. 종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에겐 전자문서라는 든든한 ‘백업’이 있다. 문제는 종이만 고집하지 않는 우리의 자세다.
am 07
지하철 출퇴근길 휴대전화로 신문기사를 읽기는 다소 불편하다. e-페이퍼만 있으면 지하철 출퇴근길이 즐겁다.
am 10
인터넷쇼핑몰에서 회원가입 ‘동의’를 누르는 순간 쇼핑몰과 본인 사이의 계약이 자동으로 성립한다.
pm 01
‘종이 없는 은행’에서 노트북 화면을 보며 금융 업무를 본다. 도장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pm 03
법적효력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는 내용증명 e메일은 공인전자문서보관소를 통해 보낸다.
pm 07
전자의무기록시스템에 저장된 전자처방전에 따라 조제한 약을 받는다.
전자문서,
원본과 사본 구분할 수 있나
지난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유출’ 의혹이 불거지며 논란이 됐다.
대통령기록물을 둘러싼 공방거리 중 하나는 전자문서인 대통령기록물이 원본이냐 사본이냐는 점이었다. 현재 검찰의 대통령기록물 유출 의혹 수사가 막바지로 접으들면서 사본 유출에 대한 법리해석을 놓고 논쟁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전자문서에도 원본과 사본이 있을까. 덕성여대 문헌정보학과 이소연 교수는 “종이문서와 달리 전자문서에서는 원본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 정설”이라고 말했다.
가령 문서를 하나 작성해 e메일로 여러 사람에게 문서를 보냈다고 하자. 그 중 누가 가진 문서가 원본일까?
전자문서에서 원본이란 처음으로 작성한 아주 잠깐 동안만 존재할 수 있을 뿐 이를 저장해 복사하거나 외부에 전송하는 순간 사라진다. 전자문서에서는 원본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하다.
이 교수는 “전자문서에서 중요한 개념은 진본(眞本)성”이라며 “원본이나 진본이 아니라 진본사본을 관리하는 일이 전자문서 관리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논란도 이 개념의 혼란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다. 이 교수는 “대통령기록물을 컴퓨터로 열람할 때 모니터에 보이는 전자문서는 원본이 아니라 국가기록원이 인증하는 진본사본”이라고 밝혔다.
이중구 책임연구원 >;
한양대 법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지적재산권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2005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전자상거래워킹그룹 한국측 협상대표를 맡았고, 2006~2007년 한미FTA 전자상거래분과 한국측 협상대표를 맡았다. 현재 한국전자거래진흥원에서 공인전자문서보관소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0과 1로 이뤄진 전자문서
머지않아 정말 종이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전자문서가 차지할 수도 있다. 이미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은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유엔 190여개 회원국 중 한국의 전자정부 준비 지수는 세계 5위로 평가받는다. 최근 의료 분야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전자의무기록시스템을 도입하는 병원이 늘면서 의사는 전자 차트에서 환자의 모든 진료 노트와 검사 결과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전자문서는 전자적인 형태, 즉 0과 1로 이뤄진 정보가 컴퓨터에서 작성되고 저장되며 유통되는 정보를 말한다. 문자로만 구성된 텍스트 문서뿐만 아니라 그림, 음악, 동영상 같은 디지털콘텐츠도 넓게는 전자문서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의사 표시를 담고 있는 문서는 대부분 전자문서로 인정한다.
전자문서는 처음 작성한 문서를 편집하거나 수정하더라도 그 흔적이 남지 않아 위조와 변조를 할 수 있는 위험이 크고 복제로 무한히 재생산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종이에 비해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장점도 되지만 오히려 이것이 전자문서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전자문서의 약점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회사원 A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해답을 찾아보자.
전자서명으로 위·변조 막아라
오전 7시, 신문을 보고 싶다. 인터넷에서 신문을 검색해 관심 가는 기사를 온라인으로 읽을 수는 있다. 휴대전화나 PDA 같은 모바일기기에서 무선인터넷에 접속해 뉴스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출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간편하게 신문을 읽고 싶다면?
‘e-페이퍼’로 불리는 전자종이가 답이다. 전자종이는 종이처럼 얇고 잘 휘어지는 장점을 살려 LCD로 개발돼 현재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꼭 컴퓨터 모양의 전자기기가 아니더라도 전자문서를 담아 보여주는 일이 가능한 셈이다.
오전 10시, 종이계약서를 대신할 전자문서계약서가 가능할까? 이미 많은 곳에서 전자문서만으로 계약서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쇼핑몰이다. 쇼핑몰에서 어떤 상품을 살 때 ‘구매’ 버튼을 마우스로 클릭하는 순간 이는 쇼핑몰과 상품을 사는 사람 사이에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계약에 관한 일반적인 조건은 쇼핑몰에 가입하면서 ‘동의’를 클릭했을 때 이미 정해졌다.
그런데 A씨는 워드프로세서로 전자계약서를 작성하고 싶다. 이것도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문제는 위조나 변조를 어떻게 방지하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는 언제 어디서든 변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으로 계약서를 작성한다면 위조나 변조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기술은 해시함수(Hash Function), 워터마킹, 그리고 전자서명 3가지다. 우선 해시함수는 전자문서에 임의의 함수를 대입해 일정한 값(해시값)을 구하고 이를 별도로 보관한다. 만약 그 문서가 1바이트라도 변조되면 해시값은 달라지며 이 값과 원래 값을 대조하면 전자문서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해시값을 구하는 해시함수는 역함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역함수가 없기 때문에 해시값으로 원래 전자문서를 복제할 수 없다. 따라서 만에 하나 해시값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용해 원래 전자문서를 위조하거나 변조할 수 없다.
워터마킹은 전자문서 중에서도 그림의 위·변조 여부를 판별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가령 그림 어딘가에 미리 지정한 문자(워터마크)를 저장한 뒤 특정한 소프트웨어로 검증 과정에서 이를 검출하도록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원래 그림에서 변경된 부분이 있으면 그 문자는 검출되지 않아 그림이 원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전자서명은 공개키기반(PKI) 방식으로도 불린다. 공개키기반 방식은 개인키(비밀키)와 공개키가 한 쌍을 이뤄 개인키로 서명한 내용을 공개키로 검증하게 해 서명한 뒤 변조되지 않았음을 검증한다. 이 방식은 현재 기술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인터넷뱅킹 같은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공개키기반 방식은 전자서명법에서 규정하는 유일한 기술이다.
중요한 전자문서 대신 보관해드려요~
오후 1시,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종이신청서 없이 무사히 할 수 있을까? 계좌를 신청할 때 필요한 도장은 어디에 찍을까? 서명은 어디에 하지?
실제로 ‘종이 없는 은행’은 지난해 국민은행이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은행 창구에는 종이 대신 고객의 전자단말기 구실을 하는 15인치 소형 노트북이 있다. 노트북은 양면이라 은행 창구 직원은 고객과 동일한 화면을 보면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고객이 단말기에 전자펜으로 자신의 개인정보와 금융 업무를 입력하면 전자 서식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고객은 서명란에 자신의 서명까지 할 수 있다.
이때 서명은 전자잉크 기술을 이용해 서명의 필순이나 서명 과정의 압력, 속도 같은 주요 사항을 모두 기록한다. 나중에 분쟁이 생길 경우 서명 기록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종이 없는 은행’은 전표처럼 종이에 사용되는 연간 수십억 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경제성도 뛰어나다.
오후 3시, 임차인에게 보낼 내용증명을 종이 없이 어떻게 처리할까? 내용증명을 발송한 날짜는 또 어떻게 증명하나. 방법은 두 가지다. 우정사업본부가 서비스할 예정인 내용증명 전자우편을 사용하면 된다.
또는 공인전자문서보관소를 통해 내용증명 메일을 보낼 수 있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는 지난 2005년 3월 정부가 세계 최초로 설립한 것으로 쉽게 말해 전자문서를 대신 보관, 관리한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전자문서를 보관할 수 없을 때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는 중요한 전자문서를 보관하고 공증하는 일을 대신한다. 공인전자문서보관소에 보관되는 문서들은 원본을 보호하기 위해 CAS(Content Addressed Storage)라는 특수 저장 장비에 보관된다.
그런데 전자문서를 오늘 보냈다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할까? 여기에는 시점인증(time-stamp) 기술이 사용된다. 전자문서가 언제 작성되고 언제 발송됐는지 증명하기 위해 일종의 시각 스탬프를 찍는 셈이다.
저녁 7시,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어떻게 약을 받을까? 최근 국내에서도 많은 병원이 진료기록과 처방기록을 실시간으로 전자문서에 저장한 뒤 전자의무기록시스템을 통해 약국과 공유한다. 약국에서는 이 시스템에 저장된 전자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한다.
현재 미국, 일본을 비롯해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전자문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법과 제도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종이문서를 요구하는 법제도를 고치고 종이만 요구하는 관행을 바꾸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종이 없는 지구’로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종이통장 대신 IC칩에 계좌정보를 내장해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전자통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음식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산 뒤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 대신 결제단말기에 서명을 하는 일은 흔해졌다. 종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에겐 전자문서라는 든든한 ‘백업’이 있다. 문제는 종이만 고집하지 않는 우리의 자세다.
am 07
지하철 출퇴근길 휴대전화로 신문기사를 읽기는 다소 불편하다. e-페이퍼만 있으면 지하철 출퇴근길이 즐겁다.
am 10
인터넷쇼핑몰에서 회원가입 ‘동의’를 누르는 순간 쇼핑몰과 본인 사이의 계약이 자동으로 성립한다.
pm 01
‘종이 없는 은행’에서 노트북 화면을 보며 금융 업무를 본다. 도장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pm 03
법적효력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는 내용증명 e메일은 공인전자문서보관소를 통해 보낸다.
pm 07
전자의무기록시스템에 저장된 전자처방전에 따라 조제한 약을 받는다.
전자문서,
원본과 사본 구분할 수 있나
지난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유출’ 의혹이 불거지며 논란이 됐다.
대통령기록물을 둘러싼 공방거리 중 하나는 전자문서인 대통령기록물이 원본이냐 사본이냐는 점이었다. 현재 검찰의 대통령기록물 유출 의혹 수사가 막바지로 접으들면서 사본 유출에 대한 법리해석을 놓고 논쟁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전자문서에도 원본과 사본이 있을까. 덕성여대 문헌정보학과 이소연 교수는 “종이문서와 달리 전자문서에서는 원본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 정설”이라고 말했다.
가령 문서를 하나 작성해 e메일로 여러 사람에게 문서를 보냈다고 하자. 그 중 누가 가진 문서가 원본일까?
전자문서에서 원본이란 처음으로 작성한 아주 잠깐 동안만 존재할 수 있을 뿐 이를 저장해 복사하거나 외부에 전송하는 순간 사라진다. 전자문서에서는 원본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하다.
이 교수는 “전자문서에서 중요한 개념은 진본(眞本)성”이라며 “원본이나 진본이 아니라 진본사본을 관리하는 일이 전자문서 관리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논란도 이 개념의 혼란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다. 이 교수는 “대통령기록물을 컴퓨터로 열람할 때 모니터에 보이는 전자문서는 원본이 아니라 국가기록원이 인증하는 진본사본”이라고 밝혔다.
이중구 책임연구원 >;
한양대 법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지적재산권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2005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전자상거래워킹그룹 한국측 협상대표를 맡았고, 2006~2007년 한미FTA 전자상거래분과 한국측 협상대표를 맡았다. 현재 한국전자거래진흥원에서 공인전자문서보관소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