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전공이 아닌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제2분야에서 영예를 차지한 김정상군은 개념정리와 정리의 유도과정을 강조한다.
현대과학에 있어서 수학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무척 크다. 물리학은 거의 수학으로 기술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화학과 천문학을 할 때에도 수학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하지만 의사가 될 사람이나 철학을 공부할 사람, 또 이 사회의 건실한 일꾼으로 생산직에 복무하게 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있어서 미분과 적분, 그리고 2차방정식의 이론들은 대부분의 경우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비실용적인 것들을 배워야 하는가.
이 해답은 수학의 내용이 담고 있는 실용적 중요성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수학자체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논리적 성격에서 구해져야 할 것이다. 알다시피 수학은 개념을 정의하고 그 개념들에서 필요한 성질들을 연역적으로 도출해낸다. 개념을 정의할 때는 그 개념의 필요성이 검토된다.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정의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개념이 필요한 성질을 갖도록 정의되는 것이다.
●-방법론과 과정이 중시돼야
엄밀한 분석을 통해 정의된 개념들은 논리적인 연결 관계 속에서 일정한 정리들로 도출된다. 정리들을 끌어내고 증명하는 과정은 엄밀한 연역적 과정이며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정리들은 구체적인 문제에 응용되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리의 내용과 그것이 해결한 문제들의 답을 아는 데 있지 않다. 그것 보다는 어떤 필요성에 의해 어떤 개념들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정의된 개념들로부터 정리들을 도출하는 과정은 어떻게 논리적으로 이루어지는가, 도출된 정리들을 활용해 어떻게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가 하는 과정과 논리적 사고에 있다.
따라서 수학은(적어도 중·고등학교에서 행해지는 수학교육에 있어서는) 내용보다는 방법론이,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시되어야 한다. 수학적 정리의 내용이나 구체적인 결과는 몇가지만 이해하고 있어도 되지만 그 논리적 방법론과 개념전개과정은 반드시 체득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수학과목의 중요성은 논리성의 교육이라는 측면보다는 학력고사에서 차지하는 점수비중에 따라 평가되고 있다. 수학공부도 개념 정의와 논리적 전개를 이해하는 것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법을 써서라도 해답만 내면 된다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런 교육은 논리적 방법론을 배워야 할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한 무관심과 일종의 두려움을 자아내게 한다.
중·고등학교의 수학교육은 모든 학생들에게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실시돼야 한다. 동시에 과학을 계속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학생들에게 진정한 수학적 능력을 키워주는 역할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제는 예전처럼 우열반을 편성해서 차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해결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고등학교 수학과정의 자율성 확보에 있으며, 학력고사 중심의 '획일적 교육'의 철회를 그 전제 조건으로 한다.
지금은 자신의 재능을 살리는 교육이 아니라 '수학은 잘하니까 영어공부에 더 치중하는' 식의 교육이다.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을 올리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공부하는 것 보다는 재능을 죽이고 이것 저것을 조금씩만 '기억하는'-아는 것이 아니라 외워서 기억하는-바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공부를 열심히 한 기억이 별로 없다. 1학년 2학기와 겨울방학에 이르는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때 고등학교 학력고사 수준의 수학을 거의 소화했고 나머지 2년은 내가 좋아하는 물리와 수학에 할애하기 보다는 부진했던 국어와 암기과목들에 투자(?)해야 했다. 그 대부분의 내용들이 지금 머리 속에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끝으로 후배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수학공부'를 적어 본다. 수학을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 그리고 수학과 무관(?)한 학문을 지망하는 학생들은 먼저수학이 어렵다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바란다.
문제를 보고 답을 내는 것이 수학의 핵심은 아니다. 이미 배운 개념들을 문제의 해결에 어떻게 적용시키는지 그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떤 특정한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출제되는 문제의 유형들을 암기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리들 속에 숨어 있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들을 잘 살피라는 말이다.
개념의 정의와 정리들이 담고 있는 내용을 무작정 외우지 말고 잘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또 주어진 대전제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 의미들을 되새겨 보면 어떻게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수학에 취미가 있어 수학과를 지원하거나 자연과학·공학 등 수학과 깊이 연관된 학문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수학을 공부할 때 먼저 자신에게 엄격해져야 한다. 적어도 개념정의와 거기에서 도출되는 정리의 유도과정과 내용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계산능력도 갖춰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수학은 깊이는 비록 없지만 그 기초개념들은 거의 모든 전문분야의 수학을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을 확실하게 공부해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느 정도 이론과 문제해결에 자신이 있는 학생은 과감하게 고교과정에서 벗어나는 '용기'도 필요하다. 틈나는대로 관심있는 공부를 미리 해 두는 것이 대학에 들어와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을 전공할 학생들에게는 수학이 곧 언어다. 한글을 모르면 한글로 쓰여진 모든 학문을 공부할 수 없듯이 수학을 모르면 자연과학의 정상에 다가서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흔히 한 사람의 언어능력은 그 언어의 개념화의 능력에 따라 평가된다고 한다. 이 평가기준은 현대의 과학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 된다. 하고 싶은 말을 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 상관관계를 어떻게 수학적 논리로 전개하는가가 그 학자의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예비과학자들은 수학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를 잘 살펴 둘 필요가 있다. 수학적 정리들을 많이 아는 것이 곧 '단어실력'이고 수학적 논리전개에 능숙한 것이 '문장력'이 되기 때문이다.
수학을 아는 과정이 '지겨운' 일이 되서는 안된다. 수학에 재능이 없는 학생도 '부담'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수학을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 수단으로 삼아 흥미있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