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음료, 제로 쿠키, 심지어 제로 초콜릿까지, ‘제로 단맛’ 식음료 전성시대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기존 감미료인 설탕과 액상과당 대신 열량이 거의 없는 대체 감미료를 써서 단맛을 냈다는 점이다. 대체 감미료는 기존의 감미료와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단맛 좋아하기로는 편집부에서 제일 가는 기자가 직접 맛봤다.
이화여대 생활환경관 5층 감각평가실. 기자 앞에 조그만 플라스틱 그릇 8개가 놓였다. 각각의 그릇에는 흰색 가루가 쌓여있었다. 좁쌀만한 크기의 투명한 알갱이부터 입자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세한 분말, 누런색의 가루까지. 생김새는 다양했다. 플라스틱 그릇에는 이 가루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에리스리톨, 알룰로오스, 수크랄로스, 사카린(나트륨), 아스파탐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단맛을 만드는 ‘대체 감미료’다. 이제부터 기자는 이것들의 환상적인 단맛을 직접 체험해볼 계획이다.
“원래 감미료의 단맛을 테스트 할 때는 맨입에 먹지 않습니다. 물에 꼭 희석해서 맛봐야 해요.” 군침을 흘리는(?) 기자를 지켜보던 정서진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경고했다. 그러나 마음이 급했던 기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알룰로오스부터 숟가락에 손톱보다 적은 양을 떠서 입에 넣었다. 단맛이 느껴지지만, 생각보다 달진 않았다. 다음으로 맛본 에리스리톨도 그랬다. “알룰로오스와 에리스리톨은 ‘저감미 감미료’에 속합니다. 설탕보다 단맛이 덜하죠.” 정 교수가 설명했다.
감미료의 단맛을 측정하는 단위는 ‘감미도’다. 음식 업계의 표준 감미료인 설탕의 단맛을 1로 둔 상대적 단위다. 감미도 측정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대개는 질량농도 10%의 설탕 수용액을 만들고, 감미도를 평가하고자 하는 감미료를 물에 여러 농도로 녹인다. 이후 실험 참가자들이 이 용액들을 비교해 맛보면서 동일한 수준의 단맛을 찾아낸다. 감미도가 50이라면, 설탕보다 50배 더 연하게 희석했음에도 설탕과 같은 정도의 단맛을 낸다는 뜻이다. 방금 맛본 알룰로오스는 감미도 0.7, 에리스리톨은 감미도 0.6~0.7로 설탕보다 덜 달다.
세상에 같은 단맛은 없다
다음은 설탕보다 훨씬 단맛이 강한 ‘고감미 감미료’를 맛볼 차례. 감미도가 150~200에 달하는 아스파탐을 찍어먹었다. 바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혀끝부터 목구멍 저 너머까지, 혓바닥 아래부터 입천장까지 가득 찬 단맛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단맛도 너무 강하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미있는 기사가 나올까 감미료를 직접 먹겠다고 우긴 기자의 잘못이었다.
“실제로 단맛을 테스트 할 때는 감미료를 맛본 후 물로 입을 씻어냅니다. 마시지 않고 뱉는 게 더 나을 거예요.” 함께 인터뷰에 참여한 니콜 연구원이 켁켁거리며 괴로워하는 기자에게 입을 씻어낼 물을 가져다 주며 말했다.
이어서 모그로사이드 V(감미도 250~425)와 사카린(감미도 300~500)도 맛봤다. 처음에는 강한 단맛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감미료 각각이 가진 맛의 차이가 천천히 느껴졌다. 모그로사이드 V는 다른 감미료에서 나지 않았던 특유의 향을 풍겼다. 사카린은 혀끝에 닿자마자 강한 단맛과 함께 쓴맛도 났다.
같은 단맛이라도 대체 감미료의 단맛은 설탕의 그것과 분명히 달랐다. 어떤 감미료는 입에 넣자마자 단맛이 확 퍼지는 반면, 어떤 감미료는 단맛이 천천히 전해지지만 입을 헹군 후에도 한참동안 단맛이 느껴졌다. 단맛의 강도, 시간에 따른 단맛의 변화, 쓴맛의 존재 여부감각과학 연구자들은 이를 “맛의 프로필이 다르다”고 표현한다. 독자 여러분들이 제로 콜라를 마시고 일반 콜라와 뭔가 다른 단맛이 난다고 느꼈다면, 실제로 해당 대체 감미료 특유의 단맛을 느낀 것이다.
이토록 다양한 단맛을 왜 기계가 아니라 굳이 사람이 맛을 봐 가며 시험해야 할까. 그 이유는 감각과학의 대상이 기계가 아닌 인간이라는 데 있다. 감각과학자들은 식품의 맛은 물론 색, 외관, 냄새 등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서 음식을 평가하고 더 나은 음식을 만드는 전략을 개발한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선 인간의 감각이 필요하다. “결국 만들어진 식음료를 먹는 주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잖아요.” 정 교수의 대답이다.
순수해서 가장 이상적인 단맛, 설탕
인간의 혀 표면에 나 있는 작은 돌기인 유두에는 미각을 느끼는 미각수용체 세포가 모여있다. 이 세포 표면의 미각수용체에 어떤 물질이 결합하느냐에 따라 맛이 느껴진다. 다양한 미각수용체 중에서도 단맛을 느끼는 것은 T1R2와 T1R3라는 단백질로 구성된 수용체다. 이 단백질에 감미료 물질이 결합해 대뇌로 신호를 보내면 단맛으로 인식하게 된다.
단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감미료는 탄수화물 기반의 당 분자들이다. 포도당, 과당, 설탕, 젖당 등이 그 예인데, 이들은 몸에서 분해돼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인간이 단맛을 좋아하는 성향을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좇기 위한 진화적 적응으로 보기도 한다.
이중에서도 현재 식음료 업계에서 단맛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감미료는 설탕이다. 그 이유는 정제된 백설탕이 가장 깔끔한 단맛을 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설탕은 잡맛이나 잡향이 없는 이상적인 단맛을 낸다”며 “순도 100%의 결정으로 만들 수 있고 유통과 보관도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식음료 업계가 설탕을 단맛의 ‘이데아’로 떠받드는 이유다.
하지만 설탕이라 해서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설탕의 단점은 가격이었다. 예전에는 단맛을 내는 물질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고 설탕은 비쌌다. 대체 감미료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됐다. 그래서 사카린처럼 감미도가 설탕보다 훨씬 높은 고감미 감미료가 각광받았다.
아이러니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설탕의 단점도 가격에서 비롯됐다.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설탕을 과잉섭취하는 인구가 늘었고, 이것이 비만과 치아우식증(충치) 등의 건강 문제를 낳았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열량이 적거나 없으면서 단맛을 내는 대체 감미료가 떠오르게 됐다.
천연물 추출 대체 감미료가 트렌드
그렇다면 대체 감미료는 어떻게 개발할까. 예전에는 화학 연구실에서 실수로 발견되는 대체 감미료가 많았다. 실험을 마치고 식사를 하다가 손에 남은 화학물질에서 우연히 단맛을 느끼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체 감미료를 개발할 때 더 이상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 기반 대체 감미료를 만들 때의 목표는 ‘다른 당처럼 단맛은 내지만 체내에서 소화, 흡수되지 않아 열량은 적은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 단당류에 효소 처리를 해서 새로운 화학물질을 만든다. 단당류에 붙은 작용기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 이성질체를 만들어 보면서 체내에서 소화되지 않는 ‘가짜 당’을 찾는 것이다.
앞서 맛봤던 알룰로오스가 한 예다. 알룰로오스는 탄수화물의 한 종류인 과당의 이성질체다. 3번 탄소에 붙은 수산기(OH)의 위치가 다른 것을 빼고는 과당과 분자 구조가 동일하다. 그러나 그 미세한 차이로 인해 몸에서 분해되지 않으며, 열량을 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저열량 감미료로 쓰이기 적합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탄수화물 기반 감미료는 쓴맛이 없고 설탕과 비슷한 맛을 낸다는 장점이 있다.
정 교수는 “최근 트렌드는 천연 감미료”라며, “천연 감미료는 합성 감미료보다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훨씬 쉽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대표적인 천연 대체 감미료가 ‘스테비아’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스테비오사이드(감미도 100~300)다. 남아메리카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스테비아에서 추출한 감미료다. 모그로사이드 V가 들어있는 중국의 약재 나한과도 비슷하게 주목받는 식물이다. 대신 식물 유래 고감미 감미료는 쓴맛이 함께 나는 경우가 많다.
대체 감미료는 종류에 따라 여러 용도로 쓰인다. 수크랄로스(감미도 400~600)는 열에 강해 빵이나 쿠키를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다. 반면 아스파탐(감미도 150~200)은 열에 약하지만 산성 환경에서 안정적이라 탄산음료에 들어간다.
이렇게 다양한 면면에도, 대체 감미료 개발에는 공통된 궁극의 목표가 있다. 대체 감미료를 연구하는 니콜 연구원은 그 목표가 “대체 감미료 고유의 장점은 살린 채, 설탕과 비슷한 맛을 내는 감미료를 만드는 것”이라 설명했다. 사람들은 설탕의 단맛에 익숙하기 때문에, 대체 감미료의 단맛을 부자연스럽게 느낀다. 그는 “그래서 여러 대체 감미료를 다양한 비율로 섞어 쓴맛을 줄이고, 단맛이 느껴지는 시간이 설탕과 비슷하도록 조절해 설탕의 맛 프로필을 따라가는 감미료를 개발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체 감미료, 정말 건강에 나쁠까
지난 5월 1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대체 감미료 섭취를 자제하라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WHO는 200여 건의 연구를 검토한 결과, 감미료를 사용한 식품을 장기간 섭취할 경우 체지방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제2형 당뇨와 심혈관 질환, 성인 사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박정환 한양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5월 30일 과학동아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현재 대체 감미료와 관련한 건강 이슈를 크게 대체 감미료 자체의 유해성과, 대체 감미료 섭취로 인한 단맛 중독의 두 가지로 구분했다.
대체 감미료의 유해성은 대체 감미료가 체내 대사 과정을 거치며 기존에 발견되지 않은 기작으로 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대체 감미료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체 감미료 섭취로 인한 유해성 분석을 하려면 많은 실험자를 장기 추적해야 하는데, 이런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7월 14일,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아스파탐을 ‘발암가능물질’인 ‘발암 위험도 2B군’으로 분류한 것이 이 부류의 이슈다. WHO는 아스파탐과 간암의 연관성 등을 밝힌 연구를 통해 과다 섭취가 건강에 해롭다고 봤다. 그러나 직접적인 발암 여부에 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밝혔다. 애초에 동물이나 사람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충분치 않은 물질을 2B군으로 분류한다.
유해성을 가리는 데 또 고려할 사항은 섭취량이다. 아스파탐이 2B군으로 분류된 당일,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아스파탐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아스파탐을 섭취해도 영향이 나타나지 않는 한계량인 ‘일일 섭취 허용량’에 비해 국내 평균 섭취량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스파탐 일일 섭취 허용량은 체중 1kg 당 40mg이다. 체중이 64kg인 기자가 250mL 제로 콜라를 59캔 마셔야 하는 양이다.
WHO가 5월에 발표한 권고안은 대체 감미료의 유해성보다는 감미료가 일으킬 수 있는 단맛 중독을 우려한다. 대체 감미료가 아니라 단맛에 적응한 식단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권고안의 핵심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체 감미료가 비만 문제에 큰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맛 중심의 식단은 체지방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고, 대체 감미료는 단맛 중심의 식단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안된다. 박 교수는 “WHO의 이번 권고안은 결국 단 음식을 즐기지 않는, 더 건강한 식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제로 음료수, 교수님은 드실 건가요, 안 드실 건가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박 교수의 답변은 명확했다. “마신다”였다.
“탄산음료를 가급적이면 마시지 않으려 하지만, 만약 모임이 있어 마신다면 제로 음료를 조금만 마시겠습니다. 기존 탄산음료에 든 감미료의 해악은 명확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