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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밑에서 잠 못 드는 닭

오늘밤도 양계장의 닭들은 LED 전구 밑에서 잠 못 이루고 있다.




올해부터 국내에서도 백열전구 판매가 금지됐다. 동네 전파상부터 대형마트까지 백열전구가 자취를 감췄고, 대체용으로 1만 원 이하의 LED 전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LED 전구 열풍이 양계 농가에서는 훨씬 전부터 불었다.

LED 전구가 양계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0년 즈음이다. 당시 양계장은 백열전구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손님이었다. 국내에서 팔린 백열전구 약 3개 중 하나가 양계장에 설치됐다(정확히 29%).

하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백열전구 생산을 중단하는 추세였다. 유럽은 2012년, 우리나라는 2013년, 호주는 올해부터 백열전구 생산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도 백열전구 퇴출 정책을 추진했다. 이유는 에너지 효율이다. 백열전구는 사용 에너지의 95%를 열로 내보내기 때문에 효율이 매우 낮다. LED는 에너지 효율이 최고 90%에 이르고, 수명도 백열전구보다 15배나 길다. 이런 이유로 2010년부터 정부에서 양계 농가의 LED 전구 교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26~27쪽 참조).


닭에게는 너무 밝은 LED

양계장 조명을 LED 전구로 교체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단편적인 예가 LED 전구의 물고임 현상이다. 양계장의 잦은 소독과 물청소로 전구 안에 물이 고인 것이다. 화재나 누전 사고 발생의 위험이 있어 2012년부터는 방수 LED 전구를 보급했다.

더 큰 문제는 닭들의 반응이었다. 가장 먼저 닭들이 LED 전구 밑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닭이 밝은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백열전구는 빛이 사방으로 퍼져서 적당히 띄어서 설치하면 양계장이 고루고루 밝았다. 그런데 LED 전구는 빛이 아래 방향으로만 강하게 나간다. LED 전구에서 빛을 내는 반도체 소자가 한 방향으로 발광하기 때문이다. 그 빛을 퍼지게 하려고 반사판 등을 쓰지만, 백열전구만큼 고루고루 밝히지는 못한다. 그래서 전구와 전구 사이에 어두운 부분이 생겼고, 닭들은 그곳을 피했다.

밤에도 LED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닭은 잠자리에서 빛에 매우 예민하다. 저녁노을이 지면 자연스럽게 잠들고, 새벽에 동이트면 굳이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깬다. 새벽에 “꼬끼오”하며 우는 수탉을 생각해 보자. 따라서 양계장은 인공조명이라도 태양이 뜨고 지듯이 조명이 서서히 변해야 한다. 백열전구는 괜찮았다. 밝기를 조절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은은한 분위기를 내야하는 카페에서 백열전구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열전구와 달리 LED 전구는 기본적으로 켜거나 끄거나 둘 중 하나다. 반도체 특성상 특정 전압 이상에서 불이 들어오는데 그 이하에서는 전혀 켜지지 않는다. 불이 켜지는 전압은 LED의 색에 따라 다르다. 밝기를 높이기 위해 전압을 무한정 올렸다가는 회로가 쉽게 망가진다. 그래서 LED 전구는 밝기 조절이 쉽지 않다. 밝기 조절 기능이 있는 제품은 몇 배 비싸다.

닭들은 양계장 조명이 바뀐 것을 눈치챘다. LED 전구로 교체 후 불을 툭 껐더니, 닭들은 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해가 지듯이 고개를 숙이며 스르르 졸아야 하는데, 깜깜한 방에서 눈만 껌벅였다. 결국에는 잠들었지만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다. 이런 진통은 아침에도 일어났다. 불을 켰더니 닭들이 다 같이 놀랐다. 갑자기 밝아진 조명은 닭에게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었다. 어색한 잠자리가 닭에게는 스트레스가 됐다.

양계장 주인들도 당황했다. 달걀은 주로 닭이 잘 때 수거한다. 이 작업을 위해서 사람은 볼 수 있지만 닭은 깨우지 않는 빛이 필요했다. ‘달빛’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 그런데 정부 지원 사업 초반에 보급했던 LED 전구는 이런 기능이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드문드문 불을 켰다. 그랬더니 불 바로 밑에 있던 닭들은 작업자와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달걀 수거 작업도 어려웠고, 어떤 닭들은 며칠씩 잠을 자지 못했다.


닭의 생태를 배려하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초반에 보급된 LED 전구가 양계장에서 조도 불균형을 일으키는 것을 확인했다. 초반의 LED 전구는 빛이 퍼지는 각도가 120°이상이었다. 연구팀은 닭이 생리적으로 안정되려면 균일하게 빛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고 빔각이 140°이상인 전구를 사용하도록 권했다. 또한 밝기 조절 기능을 의무 조항으로 추가했다.

국립축산과학원의 제안대로 2012년에 보급되는 LED 전구의 규격이 개정됐다(산업통상자원부 지원 LED 전구 규격 개정). LED전구의 빔각은 140° 이상, 밝기 조절 기능이 필수 사양으로 추가됐다. 또한 빛의 파장 범위를 전구색인 색온도 2600K~3150K로 제한하던 항목은 폐지했다(146쪽 inside 참조). 국내의 ‘젬’사 등은 지난해 양계장 전용 LED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LED 파장과 조도 등을 양계 농가에 최적화했다고 한다. 반응이 좋아 일본으로 수출도 한다. 이제는 닭들이 LED 전구 밑에서도 편안히 잠들기를기대해본다.



빨간 빛에서 달걀 낳고, 노란 빛에서 살 찐다.

백열전구를 LED 전구로 교체하는 것은 전기료 절감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는 3종류의 광수용체를 갖고 있어 사람보다 더 넓은 파장 영역(색깔)을 인식하고 파장마다 민감한 정도가 다르다. 국립축산과학원은 빛의 파장별로 닭의 산란 수와 살이 찌는 정도를 비교했다.

먼저 빛이 닭의 산란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했다. 닭이 백열전구, 백색 LED 전구, 적색 LED 전구 등에서 생활할 때 59주 동안 몇 개의 달걀을 낳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백열전구에서는 251개인데 비해 적색 LED 전구에서는 271개로 7.8% 정도 알을 많이 낳았다. 한편 닭의 체중은 황색 LED 전구에서 5주 동안 2.8% 정도 살이 더 쪘다. 백열전구에서 2.48kg, 황색 LED 전구에서는 2.55kg 증가했다. 이는 달걀을 걷는 산란계 농가와 닭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육계 농가에게 적합한 조명이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김민지 연구사는 “육계 3만 마리를 사육하는 농가는 황색 LED 전구로 교체하면 전기에너지는 80% 절감하고, 소득은 연간 1800만 원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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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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