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의 명단에 스티브 스팽글러라는 과학교사 이름을 올렸다. ‘타임 100’은 대중의 투표로 순위를 매기는데, 투표 결과 놀랍게도 스팽글러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브래드 피트(19위)와 올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20위)를 제치고 18위를 차지했다.
물론 스팽글러는 평범한 과학교사가 아니다. 그는 탐구중심 학습을 지향하면서 15년 동안 TV에 출연해 흥미로운 과학실험을 선보였다. 또 그는 과학실험 제조 회사를 설립했고, 과학실험책을 써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한 번도 ‘타임’ 표지를 장식한 적도, ‘타임 100’의 후보에 오른 적도 없는 그가 지난해 갑자기 유명세를 탄 이유는 뭘까. 이는 스팽글러가 선보인 하나의 실험 덕분이었다.
기네스 기록은 콜라 분수 1911개
2002년 스팽글러는 한 TV 방송에서 다이어트 콜라에 멘토스 사탕을 넣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멘토스 사탕만 넣으면 다이어트 콜라가 분수처럼 무려 10m나 솟아올랐다. 이후 이 실험은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미국의 유명한 만화인 ‘심슨’(The Simpsons)에서 심슨의 아들 바트가 이 실험을 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인기였다. 또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 이 실험을 찍은 동영상이 여럿 올랐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실험 동영상은 약 2년 전에 올랐는데, 지금까지 조회수가 무려 약 673만 번이나 된다. 2L짜리 다이어트 콜라 101개와 멘토스 사탕 523개로 약 2분간 ‘분수 쇼’를 보여주는 이 동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동영상이 워낙 유명해 제작자가 미국의 유명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편 다이어트 콜라와 멘토스 사탕 실험은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다이어트 콜라와 멘토스로 동시에 얼마나 많은 분수를 보여줄 수 있을까. 2007년 5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시(市)는 다이어트 콜라와 멘토스 사탕으로 분수 504개를 만들어 기네스북에 최초로 올랐다. 그 뒤 이 기록은 계속 깨져 현재 기네스북에는 지난 6월 19일 라트비아에 있는 한 비즈니스대학 학생들이 선보인 콜라 분수 1911개가 올라 있다.
실험이 유명세를 타면서 어떻게 이런 강력한 분수가 만들어지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늘었다. 일부 블로거는 콜라가 산성이기 때문에 다이어트 콜라와 멘토스 사탕 사이에 산과 염기의 화학반응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추측했다. 산성인 식초에 염기인 탄화수소나트륨(베이킹소다)을 넣으면 식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 디스커버리채널의 유명 프로그램인 ‘미스버스터즈’(Mythbusters)는 2006년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직접 실험했다. 당시 미스버스터즈는 다이어트 콜라에 들어있는 카페인, 벤조산칼륨, 단 맛을 내는 아스파탐, 그리고 멘토스 사탕의 바깥 부분에 있는 껌 성분과 안쪽의 젤라틴이 서로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멘토스 사탕의 물리적인 특성 자체가 분수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멘토스 사탕을 부드러운 물질로 코팅했더니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다이어트 콜라와 멘토스 사탕의 반응은 화학반응이라기보다는 물리반응이라는 것. 과연 그럴까?
멘토스 사탕이 ‘씨앗’ 역할 해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아팔라치안주립대 물리학자인 토냐 코피 교수는 이 문제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기에 딱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직접 실험했다. 그 결과는 ‘미국물리학저널’ 6월호에 실렸다.
코피 교수는 제자들과 함께 다양한 실험을 했다. 과일맛 멘토스 사탕, 민트맛 멘토스 사탕은 물론 다른 종류의 사탕, 식기세정기 전용 세제, 가는 소금, 그리고 모래 등을 다이어트 콜라에 넣었다. 또 무(無)카페인 콜라와 일반 콜라, 그리고 소다수와 토닉 워터 같은 여러 종류의 탄산수를 이용해 다이어트 콜라의 반응과도 비교했다.
이들 조합 중 가장 강력한 폭발이 일어난 것은 역시 다이어트 콜라에 멘토스 사탕을 넣은 경우였다. 병을 10° 기울였을 때 콜라 줄기가 뻗어나간 수평거리만 5m가 넘었다. 멘토스 사탕 맛은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다.
‘미스버스터즈’의 실험과 달리 카페인은 반응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카페인이 없는 다이어트 콜라를 사용한 실험에서도 반응이 아주 잘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블로거들의 추측대로 산과 염기 간의 화학반응이었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실험 전과 후 콜라의 산성도를 측정했지만 산성도는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다이어트 콜라와 멘토스 사탕 사이의 반응에 영향을 준 요인은 화학반응이 아니라 이산화탄소 기포가 만들어지는 속도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인들이었다.
먼저 멘토스 사탕의 거칠거칠한 표면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멘토스 사탕의 표면은 기포가 형성되는 데 일종의 ‘씨앗(핵)’ 역할을 했다. 마치 요오드화은이나 드라이아이스가 인공강우의 구름핵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포가 형성되려면 작은 기포들이 달라붙을 수 있는 씨앗이 필요하다. 멘토스 사탕의 거친 표면은 공기 방울이 숨을 수 있는 틈을 만들고, 멘토스 사탕을 다이어트 콜라에 넣으면 이 공기 방울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이산화탄소가 달라붙을 수 있는 씨앗 역할을 한다.
탄산음료의 병을 흔들지 않고 가만히 따면 기포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이 꽤 지나도 탄산의 맛이 남아있다. 이는 탄산의 핵 역할을 해주는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멘토스 사탕이 바로 이런 역할을 맡는다. 이를 가리켜 물리적으로는 ‘핵화’(nucleation)라고 한다.
핵화 현상은 멘토스만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다. 표면이 거친 물질이면 된다. 컵에 탄산음료를 따른 뒤 손가락만 집어넣어도 기포가 잘 형성된다. 지문 때문에 손가락 표면이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코피 교수 역시 표면이 거친 사탕이나 모래를 넣었을 때도 기포가 솟아오르는 현상을 확인했다. 하지만 멘토스 사탕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코피 교수는 전자현미경으로 표면의 거친 정도를 관찰했다. 거칠다는 말은 단위 부피당 표면적이 크다는 의미다. 코피 교수에 따르면 멘토스 사탕의 거친 정도는 굵은 소금의 약 2.5배였다.
아스파탐과 표면장력
한편 다이어트 콜라의 성분도 기포 형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어트 콜라에는 아스파탐이라는 인공감미료와 벤조산칼륨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이 두 성분이 다이어트 콜라의 표면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표면장력이 크면 액체 방울 모양이 더 둥글다. 코피 교수는 둥근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콜라 방울이 바닥과 이루는 각도즉 접촉각을 측정했다.
그 결과 보통 물은 85°였고, 설탕물은 80°, 아스파탐이 든 물은 77°, 벤조산칼륨은 75°였다. 즉 설탕물이 들어간 일반 콜라보다 아스파탐과 벤조산칼륨이 포함된 다이어트 콜라가 표면장력이 더 낮다는 얘기이다.
표면장력은 기포가 형성되는데 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표면장력이 클수록 기포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음료의 표면장력이 낮아졌다는 말은 벽이 덜 단단해지면서 기포가 잘 생긴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함께 껌 성분이 든 멘토스 사탕의 바깥 코팅면 역시 표면장력을 떨어뜨렸다. 이 코팅 성분은 계면활성제로 다이어트 콜라의 표면장력을 더욱 떨어뜨렸다. 표면은 거칠지만 이 코팅 성분이 없는 사탕의 경우 다이어트 콜라와 멘토스 사탕처럼 폭발적으로 기포가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멘토스 사탕이 밀도가 높아 콜라 속에 빠르게 가라앉으면서 이산화탄소가 멘토스 사탕 표면에 닿는 것도 기포가 폭발적으로 솟아오르는 데 기여했다. 멘토스 사탕을 잘게 부숴 넣었을 때는 분수가 수평으로 30cm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코피 교수는 논문에서 “다이어트 콜라와 멘토스 사탕의 반응이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주제”라며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해볼 것”을 제안했다.
실험 팁
1. 다이어트 콜라만 된다?
탄산음료 중 콜라 외에 다른 다이어트 음료로는 안될까? 물론 가능하다. 그런데도 다이어트 콜라가 이 실험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덜 끈적거리기 때문. 실험 뒤처리를 하기에는 다이어트 콜라가 좋다.
2. 멘토스 한번에 쏙~ 들어가야
다이어트 콜라에 멘토스 사탕을 넣을 때 유념할 점이 있다. 멘토스 사탕이 한꺼번에 콜라 병 속으로 쏙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생각보단 쉽지 않다. 스티브 스팽글러는 다이어트 콜라에 멘토스 사탕을 넣기 쉽도록 특별한 관을 제작했다. 이 관이 없는 사람은 종이를 활용해보자. 종이를 말아 콜라 병에 꽂고 그 안으로 멘토스 사탕을 넣으면 된다.
핵화의 비밀
물은 0℃에서 얼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순수한 물은 0℃에서 자동으로 얼지는 않는다. 순수한 물을 얼리려면 영하 40℃까지 떨어뜨려야 한다. 그런데 왜 보통 물은 0℃에서 얼까? 또 순수한 물을 매끈한 용기 속에 넣고 끓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폭발적으로 기포가 생겨난다. 왜 그럴까?
이 두 가지 현상은 같은 이유에서 일어난다. 핵이 되는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액체에서 고체, 또는 기체로 바뀌는 상태 변화가 잘 일어나려면 핵화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핵화 현상은 핵이 되는 물질이 있고 그 주변으로 물질이 모이는 것을 말한다.
순수한 물이 얼 경우 핵은 물 분자다. 물이 충분히 열을 빼앗기면 물분자 자체가 얼면서 그 주변으로 물이 얼기 시작한다. 대신 온도가 영하 40℃까지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먼지나 박테리아 같은 불순물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불순물 자제가 핵이 되기 때문이다. 0℃가 되면 핵이 되는 불순물로 물 분자가 모여들면서 얼음이 형성된다.
액체가 기체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이다. 충분히 열을 받아 온도가 올라가면 물 분자 자체가 표면장력을 뚫고 나온다. 그러면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끓는다. 하지만 이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기포가 성장하지 못한다. 반면 물에 불순물이 있으면 온도가 낮을 때부터 천천히 끓어오른다.
이런 이유로 액체를 끓일 때 갑자기 끓어오르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실험 용기 안에 작은 조각들을 집어넣는다. 하지만 작은 조각들을 거의 다 끓어가는 액체에 넣으면 절대 안 된다. 그랬다간 다이어트 콜라에 멘토스 사탕을 넣은 것처럼 갑자기 기포가 솟아올라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