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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일지 모르겠다. 그럼 ‘과학’이란 무엇일까. 과학과 비과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또 현대의 눈부신 인류 문명을 이룬 과학의 독특한 학문적 특징은 무엇일까. 무엇이 과학을 다른 학문에 비해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했을까. 20세기 최고의 과학철학자 중 한 사람인 칼 포퍼와 그의 저서를 통해 과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자.


틀릴 수 있기에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

190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던 포퍼(K. Popper)는 유태인 출신으로서 1·2차 세계대전 사이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청년 시절 그는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사회민주당 당원으로도 활동했다. 1936년 나치의 폭압을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한 그는 전체주의의 폭력을 체험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념비적 도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펴낸다. 그는 이 책에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철학적·사상사적 배경을 철저히 파헤쳤다.

한때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그가 나치즘과 파시즘, 러시아 혁명 등을 목격한 뒤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비인간성을 느끼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대변자로 변화한 것이다. 그는 자유와 비판을 통한 점진적 개혁을 강조한 ‘열린 사회’를 주장해 사상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닫힌사회에 대한 경계와 비판을 통한 점진적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 포퍼의 사회론은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철학적 관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포퍼는 1930년대 유럽 사상계의 중심에 서있던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에 맞서, 과학은 스스로가 틀리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발전한다는 반증주의(反證主義, falsificationism)적 과학철학론을 주창했다.

20세기 과학철학의 가장 중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그의 반증주의 철학은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통해 펼쳐진다. 이 책은 본래 1934년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라는 제목으로 독일어로 출판됐는데, 영어판(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1959)이 나오면서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다름 아닌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떤 주장이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주장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이 다른 어떤 학문에 비해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의 주장과 이론이 옳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주장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만이 발전할 수 있다는, 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과학 발전의 핵심은 반증과 비판

포퍼가 비판했던 귀납주의(inductivism)와 실증주의(positivism)의 중심적 아이디어는 어떤 과학적 주장의 타당성이 그것을 지지하는 관찰과 경험의 정도에 있다는 것이었다. 과학 이론은 다양한 종류의 경험적 사실에 기초하며, 그런 경험적 사실의 정도가 많을수록 그 이론의 정당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포퍼는 기존 이론에 합치되는 아무리 많은 수의 지지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이런 증거가 이론의 진리성을 확립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은 기존 이론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경험적 사실이 관찰됨으로써, 그 이론이 반증되는 과정을 통해서 달성된다고 했다. 따라서 과학자의 역할은 기존 이론을 부정할 수 있는 관찰 사실을 이끄는 것이며, 자신이 새로운 주장을 제안할 때는 가능한한 그것이 논리적으로 반증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봤다.

이런 입장에서 포퍼는 귀납적 철학을 바탕으로 반복적 활동을 강조하는 교육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과학이란 새로운 발견을 이뤄감에 따라 발전하게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새로운 발견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다.

과학 이론은 그것이 반드시 맞는 것이라고, 즉 ‘참’이라고 보장받을 수 없으며, 오직 반증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기본 이론의 수용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에 기반한 이론의 반증을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귀납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반복적 활동을 강조하는 과학교육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포퍼에게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실수와 착오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추측과 반박이라는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과학교육에서 잘 계획된 관찰과 실험, 그리고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처럼 과학(지식)은 합리적인 가설을 제기하고, 그것을 반증(비판)하는 과정을 통해서 시행착오적으로 성장한다는 그의 관점을 ‘비판적 합리주의’라 부를 수 있다.

사실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는 철학과 논리의 문제를 수열과 확률, 그리고 양자역학의 개념을 동원해 전개하고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책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철학의 분수령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더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포퍼의 생각을 염두에 두고 우리 사회를 한번 둘러보자.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남들이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엉뚱한 발상과 틀릴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 현장과 사회 속에서 포퍼가 말하는 열린사회라는 무지개는 얼마나 가까이, 또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
 

칼 포퍼 1902-1994


칼 포퍼(Karl Riamund Popper; 1902­1994)는 190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다. 빈대학과 빈교육연구소에서 수학, 물리학, 심리학, 교육학, 음악사, 철학 등을 폭넓게 공부했으며, 1928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4년 독일어로 출간된 ‘탐구의 논리’로 상당한 명성을 얻었으나 나치 독일의 유태인 탄압을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오랜 뉴질랜드 생활(1936­1945)을 청산하고, 1946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경제대학(LSE)에 교수로 부임했다. 이 시기에 저술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945)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61)은 사회철학 분야의 명저로 손꼽힌다.

시카고, 옥스퍼드, 프랑크푸르트 등의 대학에서 14개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고, 각국의 학술원 회원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1965년에는 자유주의의 열렬한 대변자로서 전체주의와 사상적 투쟁에 동참했던 지성사적 공헌을 인정받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과학적 발견의 논리’외에도‘추측과 반박’(Conjecture and Refutation, 1963), ‘객관적 지식’(Objective Knowledge, 1972), ‘자아와 두뇌’(The Self and It’s Brain, 1977),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the Aim of Science, 1983)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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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송진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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