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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계 스타, 북쪽으로 가는 이유

나비, 지구온난화 지표로 날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조지훈의 시 ‘승무’를 보면 한국인들이 날개를 접고 있는 나비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의 상징을 찾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나비가 꽃을 희롱한다’는 말도 있고, 꽃 위에서 어른대는 두 마리의 나비를 보면서 남녀 간의 사랑 놀음을 상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결혼식에 신부가 입던 활옷의 소매에는 꽃 위를 노니는 한 쌍의 나비가 수놓아졌다. 신부가 나비처럼 사랑하며 행복하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또 ‘봄에 호랑나비를 처음 보면 그 해에 운이 튼다’‘봄에 처음 본 나비가 흰나비면 상주가 된다’란 속담도 있다. 호랑나비는 행운을, 흰나비는 불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긴 탓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나비를 문화적 상징이나 길흉의 잣대로 사용해왔다.

최근에는 나비가 또 다른 지표로 쓰이기 시작했다. 자연의 변화나 환경의 미세한 변화를 알려주는 잣대로 말이다. 특정 나비의 존재 여부 또는 한곳에 살던 나비무리의 변화를 갖고 그곳의 환경이 건강한지 판단한다. 즉 나비를 통해 자연환경의 질을 평가하고, 환경변화의 증거로 이용한다. 한발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의 정도를 알려주는 데도 나비가 사용되고 있다. 어떻게 나비로 환경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까.
 

큰주홍부전나비 (Lycaena dispar)^논둑, 하천제방, 밭가에서 소리쟁이 같은 여러해살이풀을 먹고산다. 유럽에서부터 우리나라 중부지방까지 널리 분포한다.


영국, 58종뿐인 나비로 환경감시

우리나라에는 남북한 모두 합쳐 265종의 나비가 사는데, 남한 땅에만 212종이 알려져 있다. 거의 대부분은 우리 땅에서 깨어나 생애를 마치는 토종나비다. 하지만 여름철에만 어른 나비가 중국 남부와 타이완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에서 날아드는 종류도 10여 종이 있다. 철새처럼 외국에서 태어나 우리나라로 날아들지만, 이들이 우리 땅에서 자신의 삶을 다할 뿐 다음 세대로 이어가지 못한다는 점은 철새와 다르다. 그래서 이런 나비들을 ‘길 잃은 나비’란 뜻으로 미접(迷蝶)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사는 나비는 종류만큼 생태도 다양하다. 호랑나비와 배추흰나비는 마을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유리창나비는 계곡 숲을 좋아하고, 풀흰나비는 강가의 풀밭을 좋아하며,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는 햇볕이 잘 드는 벌채지역이나 절벽 같은 곳을 좋아한다. 또 애호랑나비는 이른 봄에만 나오고, 금빛어리표범나비는 봄볕이 익어갈 때 날개돋이를 하며, 꼬리명주나비는 초여름이 되서야 하늘거리듯 춤추고, 줄점팔랑나비는 가을이 익어 갈수록 수가 늘어난다.

나비를 환경지표로 많이 이용하는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에는 58종의 나비만 산다. 우리나라에 사는 나비 종류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영국에서 나비는 곤충을 포함한 무리인 절지동물을 대표한다. 왜 그럴까.

나비는 삶터와 기후의 미묘한 변화에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활사도 짧아 배추흰나비 같은 종은 1년에 4~5세대가 돌아가고, 길다고 해도 1년에 한 세대는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한 지역에서 일시적인 환경변화로 먹이식물에 문제가 생기면 애벌레가 충분히 자라지 못하고 그 결과 한두 달 뒤에는 그 지역에 나타나던 나비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다.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나비를 주기적으로 조사하면 환경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같은 환경변화가 우리 삶의 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사실 나비는 곤충의 여러 무리 중에서 연구된 자료가 가장 풍부하다. 종류뿐 아니라 애벌레와 먹이식물의 정보도 풍부해 나비의 전체적인 생태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비를 조사한 자료를 환경과 관련지어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다.

또 나비는 곤충 중에서 ‘스타급’이다. 곤충 연구가 상당히 부족한 우리나라에서조차 나비 전체를 다룬 도감만 해도 1980년대 이후에 6종류나 나와 있지만, 나비만큼 대중적인 잠자리는 최근에야 3권의 도감만 출간됐다. 나비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는 곤충과 그 친척인 거미를 비롯한 절지동물의 이야기를 덮을 정도로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나비를 채집하거나 죽이지 않고도 조사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장점이다. 영국에서 1970년대에 시작된 ‘국가나비모니터링계획’에서는 일정 구간을 정해진 속도로 걸어가며 사방 10m 안에서 나비를 조사하는데, 다양한 환경을 구간으로 나누고 매주 반복 조사해 촘촘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나비를 비롯한 곤충은 온도 변화에 민감하다. 1999년 나비가 지구온난화에 대응해 서식지를 옮기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네이처’에 발표됐다. 유럽에 사는 35종의 나비를 조사했더니 65%에 해당하는 종이 지난 세기 동안 35~240km 북으로 이동했다는 내용이다.

2000년에는 영국 국가나비모니터링계획의 조사자료를 이용해 나비의 활동기간, 그 해 처음 어른나비가 돼 나타나는 최초발생일, 어른나비가 가장 많이 보이는 최고발생일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 20년간 대부분의 영국 나비들은 최초발생일과 최고발생일이 앞당겨졌다. 구체적으로 평균기온 1℃가 상승하면 영국 나비들 대부분의 경우 최초 및 최고발생일이 2~10일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증거는 영국처럼 고위도가 아닌 중위도에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에서도 확인됐다. 2003년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31년간 이곳에 사는 23종의 나비를 분석한 결과 봄에 나비가 처음 나오는 날(최초 출현일)이 점차 앞당겨졌다. 이들 가운데 평균 24일이나 앞당겨진 종도 있었다. 특히 그동안 최초출현일이 앞당겨진 종들과 기후 변화의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과거에 비해 겨울이 따뜻해지고 건조해지면서 나비들의 최초출현일이 더 빨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북미왕나비 이동경로^보통 북미왕나비는 9월에서 11월까지 미국 북동부와 캐나다에서 멕시코로 이동해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 오면 3월~6월에 걸쳐 캐나다로 되돌아간다. 이 나비들은 알을 낳고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킨다. 어른나비가 된 다음 세대는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 멕시코로 떠난다. 이런 이주행동이 반복된다.
 

기후 변화에 따라 몸무게 늘리고 먹이도 바꿔

기후 변화 때문에 변신하는 특정 종도 있다. 2001년 ‘뉴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영국에 사는 뒷날개눈많은그늘나비(Pararge aegeria)와 유럽꽃팔랑나비(Hesperia comma)는 삶터가 확장되는 종인데, 이들이 분포하는 지역 가장자리에 사는 개체들을 조사해 나비의 몸무게가 10~20%까지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개체들은 더 멀리 날 수 있도록 강력한 날개를 지녀야 하기 때문에 가슴이 커졌다는 뜻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큰 날개를 가진 나비들은 좀 더 시원한 곳으로 이주하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거리를 주기적으로 오가는 북미왕나비(monarch butterfly)를 보면 지구온난화는 나비에게 치명적이다. 우리나라 제주왕나비와 비슷한 종인 이 나비는 미국의 로키산맥 동부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살다가 12월이면 멕시코에 있는 오야멜전나무 숲으로 4000km나 먼 거리를 이동해 겨울을 난다. 바로 이 나비가 50년 안에 절멸위기에 빠질 전망이다. 2003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비가 많이 내려 북미왕나비의 겨울 은신처인 오야멜전나무숲이 매우 습하고 추워질 것이다. 이 나비는 건조해야 겨울에 살아남을 수 있는데 말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면 나비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2003년 스위스 연구진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온실을 만들고 유럽처녀나비(Coenonympha pamphilus)와 그 애벌레의 먹이식물인 포아풀 4종류를 기르면서 실험했다. 그 결과 애벌레가 나비로 성장하는 기간은 보통 때에 비해 평균 2일이 길어졌고, 먹이식물의 종류에 따라 0.7일에서 5.3일까지 늘어났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된 뒤 몸무게는 약간 줄었다. 유럽처녀나비의 애벌레는 알에서 깨어난 지 36시간 정도가 지나면 먹이식물을 분명히 가려 먹는데, 재미있게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기존 먹이식물을 다른 식물로 바꿨다.

대개 초본식물의 경우 이산화탄소 양이 늘면 잎 면적이 줄고 이파리에서는 수분과 질소 농도가 떨어지나 전분 농도는 는다. 결국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먹이식물이 질적으로 달라져 애벌레는 먹이식물을 바꾸고 더디게 성장하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먹이식물의 진화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향제비나비(Atrophaneura alcinous)^산기슭 주변에서 천천히 날면서 여러 꽃에서 꿀을 빤다. 수컷나비가 사향의 향기를 내기 때문에 사향제비나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 나비도 북쪽으로 이동

우리나라 나비는 253종이 토착종인데, 이들의 출신을 따져보면 대륙에서 내려온 종류(구북계)가 238종이고 남쪽 해양을 통해 들어온 종류(동양구계)가 15종 정도다. 즉 15.9:1의 비율로 대륙의 한지성 나비가 해양의 난지성 나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히 많다. 그러니 온도가 높아지면 한지성 나비가 북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국립산림과학원 권태성 박사와 나비학자 김성수 선생은 과거 자료가 있는 광릉(1950년대)과 파주 고령산(1970년대)의 나비를 조사해 이런 경향을 확인했다. 즉 과거에 비해 종별 밀도가 가장 많이 증가한 5종 가운데 남방계는 3종이 포함된 반면 북방계 종은 없었고, 가장 많이 감소한 8종 중에는 북방계가 6종이었지만 남방계는 1종도 없었다. 이는 과거에 비해 온난화 때문에 우리 나비들이 원래 서식처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 2000년 이후 해외에서 제주도나 남해안에 날아드는 미접들이 점점 늘고 있다. 돌담무늬나비, 대만왕나비, 뾰족부전나비, 검은테노랑나비 등 10여 종의 나비들이다. 미접 중에서 먹이식물이 주변에 있어 알을 낳거나 애벌레가 자라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미접의 정착 가능성을 모니터링한다면 우리의 기후변화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실 1990년대에 들어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거나 분포 장소가 현격히 줄어든 종이 많다. 예를 들어 멸종위기종의 하나인 붉은점모시나비는 과거에 부산 근처에서 북쪽까지 여러 곳에 살았지만 지금은 강원도 북부지역에서만 큰 집단으로 확인될 뿐이다. 이와 같은 종을 일정한 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조사한다면 우리 나비들도 기후변화의 지표종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미묘한 계절의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 비록 알아챘다 하더라도 그 변화가 우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환경지표종을 마치 척후병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살던 나비들이 사라지고 귀해진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우리 인간도 살기 힘든 환경이 될지 모른다는 경고다. 사람들은 “예전에 우리 동네에 나비가 참 많았는데”라고 입을 모은다. 그것이 불과 20~30년 전의 일이다. 이제라도 나비를 늘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우리들이 살아가기에 괜찮은 환경이란 위안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돌담무늬나비 (Cyrestis thyodamas mabella)^아열대성 또는 열대성 나비로 제주도에 날아 들어온다. 2000년 초 미접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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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박해철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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