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라, 반응하리라.’ ‘놀라움을 누르세요.’
최근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휴대전화가 인기다.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휴대전화의 장점은 사용하기 쉽다는 점이다.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스크린의 아이콘을 누르면 휴대전화의 다양한 기능을 마음껏 조작할 수 있다.
양손으로 휴대전화를 잡고 엄지로 자판을 열심히 눌러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엄지족’은 검지로 휴대전화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는 ‘검지족’에게 디지털 노마드의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휴대전화 하드웨어 경쟁의 종말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가장 친숙한 미디어(매체)로 꼽히는 휴대전화는 그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 단순히 음성신호를 전달하던 송수화기에 불과했던 휴대전화는 ‘컨버전스’(융합)라는 이름 아래 카메라(폰카), 전축(MP3폰), 은행(금융카드), TV(DMB폰), 컴퓨터(스마트폰, PDA폰)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휴대전화시장에서 하드웨어 경쟁은 한계에 도달했다. 다양한 기능만으로는 제품의 우수성을 가늠하기가 어려워진데다, 기능이 많고 복잡해지는 바람에 기기를 조작하기는 오히려 더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돌파구를 유저인터페이스(UI)*에서 찾았다.
휴대전화 UI 혁명의 신호탄은 놀랍게도 업계 후발주자인 애플이 쐈다. 애플은 지난해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UI를 적용한 아이폰으로 일약 휴대전화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아이폰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듯 튕기는 동작(Flick)으로 이미지 목록을 훑어볼 수 있는, 기존 휴대전화 자판의 방향키를 조작하는 것보다 빠르면서도 역동적인 UI를 도입했다. 엄지와 검지를 벌리거나 좁혀서 이미지 크기를 조작하는 기능도 기존 휴대전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전이었다.
새로운 UI를 탑재한 아이폰은 지난해 6월 출시된 이래 지금까지 약 400만대가 팔릴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현재 WCDMA* 방식의 제품도 곧 출시될 예정이라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인터넷업체인 구글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구글은 자사가 주도하는 ‘오픈핸드셋얼라이언스’(OHA)라는 휴대전화 개발기구에 전 세계 34개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들을 참여시킨 가운데 ‘안드로이드’라는 개방형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며 이동통신 시장진입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올 하반기 출시될 ‘구글폰’은 PC인터넷에서의 영향력을 휴대전화 기반 인터넷(모바일인터넷) 시장에서도 이어가려는 구글의 야심작이다.
이처럼 컴퓨터와 인터넷 업체인 애플과 구글이 거대 제조기업들의 격전장인 휴대전화 시장에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은 통신 시장의 경쟁패러다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터치스크린 vs. 햅틱
세계 주요 휴대전화 업체들은 올해 상반기 일제히 전면 터치스크린을 채택한 휴대전화를 출시하면서 UI 차별화에 힘쓰고 있다.
휴대전화 업계 최강자인 노키아는 지난해 10월 런던에서 개최된 ‘심비안 스마트폰 쇼 2007’에서 자사 휴대전화 운영체제인 ‘심비안’의 새 버전부터 터치스크린을 기본 기능으로 탑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올해 초 터치스크린 UI를 탑재한 ‘터치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소니에릭슨도 상반기 전면 터치스크린폰인 ``P5i를 시작으로 터치기능을 적용한 스마트폰을 연이어 출시할 계획이고 모토로라도 올해 전면 터치스크린폰을 출시한다.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도 터치스크린 바람은 거세다.
LG전자는 터치스크린의 선발주자로 꼽힌다. 지난해 명품 휴대전화인 ‘프라다폰’으로 첫 풀터치폰 시대를 연 데 이어 올해는 500만 화소 카메라폰을 탑재한 ‘뷰티’로 풀터치폰 명가(名家) 이미지를 구축했다.
특히 뷰티는 터치스크린에 일반 디지털카메라에 버금가는 고화소 카메라모듈을 결합했다. 사진을 촬영하고 터치방식으로 수정한 뒤 고속 WCDMA 네트워크로 이를 전송하는 기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LG전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PC의 인터넷화면을 똑같이 구현하는 풀브라우징 지원단말기인 ‘터치웹폰’(LH-2300)을 출시하며 바람몰이에 나섰다. 터치웹폰은 기존 QVGA(해상도 320X240)에 비해 5배 더 선명하고 넓은 화면비율을 제공하는 WVGA(해상도 800X480)를 국내에서 처음 적용했다. 또 바탕화면에서 아이콘을 터치해 자주 연락하는 이들의 번호나 문자메시지를 편집 할 수 있는 ‘헬로UI’를 채택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뒤질세라 ‘햅틱’(Haptic, 촉각)을 마케팅 요소로 내세우며 터치스크린폰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UI를 선보였다. 대표작이 애니콜 ‘햅틱폰’(W420)이다. 햅틱폰은 터치스크린을 누를 때마다 휴대전화가 진동해 반응하는 ‘진동피드백’ 기능을 추가했다. 다른 터치폰보다 피드백을 좀더 세분화하고 사용자의 직관적 경험을 반영한 게 특징이다.
또 햅틱폰은 전화번호 다이얼처럼 터치패드를 돌려 소리크기를 조절할 수 있고 22개의 진동과 110여 가지의 다양한 소리로 사용 환경을 꾸미는 등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재미를 살렸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대기화면 서비스다. 트레이라는 메뉴박스에서 끌어다(드래그) 쓰는 위젯으로 배경화면이나 기념일, 시계, 지하철노선도, 긴급연락처 등을 사용자 입맛대로 설정해 쓸 수 있다. 사진 앨범을 볼 때 휴대전화를 기울이거나 가볍게 흔들면 물 흐르듯 넘어가는 동작감지 기능도 눈에 띈다.
터치웹폰이나 햅틱폰 같은 국내 터치폰은 아이폰과 터치방식에 차이가 있다. 아이폰은 손에 흐르는 전류를 감지해 터치를 인식하는 반면(정전기 방식), LG나 삼성의 터치폰은 손가락으로 누르는 압력(대략 8g)을 감지한다(정전압 방식).
정전압 방식은 압력의 미세한 차이를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주머니에 넣었을 경우 버튼이 잘못 눌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정전압 방식을 택한 국내 터치폰은 측면에 잠금키 기능이 있다.
미래의 휴대전화는 든든한 개인비서
휴대전화는 UI 진화에 힘입어 미래 유비쿼터스 시대의 핵심기기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휴대전화업체 모토로라와 노키아는 컨셉폰(아직 개발되지 않은 가상의 제품)을 만들어 최근 홍보에 나섰다.
모토로라가 구상한 미래의 휴대폰은 개인비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음성으로 길안내를 해주거나 각종 공연관람 티켓을 예매하는 일은 기본이다. 운전 중 문자메시지가 오면 자동으로 읽어주고 음성으로 답장을 보낼 수도 있다.
이 밖에 단말기 옆면에 장착된 3차원 디스플레이로 회사의 영업실적이나 최근 리포트를 볼 수도 있고, 외국인을 만날 때 통역사 역할은 물론, 음성으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수도 있다.
노키아는 지난 2월 자유자재로 휴대전화의 모양을 바꿀 수 있는 미래형 휴대전화 ‘모프’를 공개했다. 모프는 친구와 채팅을 할 때는 휴대전화를 컴퓨터 키보드 모양으로 펼칠 수 있고, 음악 감상을 할 때는 귓바퀴에 쏙 들어가는 이어폰 형태로 변신한다. 평상시에는 휴대전화를 돌돌 말아 시계나 팔찌처럼 차고 다닐 수도 있다. 노키아는 모프에 자동 청소 기능이나 태양열을 이용한 자동 충전 기능을 포함할 것이라며 7년 내에 상용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미래 유비쿼터스 시대의 중추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넘어야할 벽이 아직 많다. 입력장치와 디스플레이가 작아질수록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점이나 휴대전화 배터리 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또 모든 신상정보를 담고있는 휴대전화가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황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휴대전화가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하는 사회적인 문제까지 극복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람에게 다가갈지 기대된다.
유저인터페이스(UI)*
컴퓨터 시스템 또는 프로그램에서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동작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명령어 또는 기법을 말한다. 쉽게 말해 기기를 이용하는 방법이나 환경을 뜻한다.
WCDMA*
멀티미디어 통신을 목적으로 개발된 이동통신 무선접속 규격.
제3세대 통신 방식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