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라다무스는 인류 최후의 날을 예언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인류 최후의 날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고 마르스(화성)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고 밝혔다. 아주 은유적으로 표현된 그의 예언을 해석하기 위해 많은 제안이 나왔다. 그 중에는 태양계의 천체들이 아주 독특하게 배치돼 이것이 지구의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거대십자가’(Grand Cross)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십자가형으로 배치되는 것을 말한다. 행성들이 이렇게 배치됐을 때 중력과 자기장에 큰 변화가 일어나 지구에 해일이나 화산폭발 같은 큰 재앙이 닥친다는 내용이다. 태양계의 천체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배치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상당한 신비감을 준다. 이런 현상은 매우 드물게 일어날 뿐만 아니라 그 형태가 십자가 모양으로 예수의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십자가 모양은 아니지만 태양계의 천체들이 일직선으로 배치되는 행성직렬 현상도 인류에 대재앙을 몰고 올 것으로 믿어져 상당한 공포감을 줬다. 2000년 5월 5일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우주공간에서 일직선으로 늘어서는 행성직렬 현상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이날이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인류 최후의 날이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행성직렬이 일어나더라도 지구가 받게 될 영향이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일직선으로 배치된 천체들이 지구에 집중적으로 중력을 미칠 것이 우려되지만, 사실상 중력의 변동은 거의 미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번 행성직렬 현상은 2438년 4월에 일어날 예정이다.
행성직렬 현상은 동아시아의 전통천문학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취급됐다. 전통시대에는 이를 ‘오성취합’(五星聚合)이라고 불렀는데, 왕조의 흥망이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징조로 여겼다. 중국에서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설 때, 오성이 28수(하늘 적도에 있는 28개의 동양 별자리) 중 정수(井宿)에 모였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다른 기록에는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설 때 오성이 방(房)수에 모였고, 제나라 환공이 전국을 쟁패하려 할 때는 오성이 기(箕)수에 모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한 조선후기의 유학자 중 일부는 오성이 학문을 관장하는 별자리인 규(奎)수에 모여 송나라에서 주자학이 융성했고, 황제의 자리를 뜻하는 실(室)수에 모여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 오랑캐가 득세했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점성술적 해석에 의지해 유학을 지키면서 청나라를 싫어하는 감정을 합리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점성술적 의미는 한(漢) 이후 성립
조선후기 실학자로 유명한 성호 이익(1629~1690)에 따르면, 오성이 모였다는 기록은 노나라의 역사책인 ‘춘추’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오성취합에 대한 기록과 의미해석이 한나라 이후부터 성립된 것으로 이해했다. 중국 점성술의 고전이라고 할 ‘사기’의 ‘천관서’가 후한 때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성취합에 부여한 점성술적 의미가 한나라 시대(기원전 202~기원후 220) 이후에 성립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오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주기를 알고 이들이 특정한 날짜에 같은 지점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기도 한나라 시대 이후일 것이다.
행성들의 공전주기를 알면 오성취합이 일어나는 시점을 계산할 수 있다. 수년 전에 국내의 한 천문학자가 단군시대의 역사를 기록했다고 알려진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에 있는 “기원전 1733년에 오행성이 루(婁)수에 모였다”는 기록을 검토했다. 그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원전 1734년에 실제로 오성취합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단지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계산 결과로 볼 때, 앞의 기록은 단군시대의 사람들이 실제로 관측한 기록이며, 이 때문에 조작된 역사서로 치부돼온 두 책이 모두 믿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는 여러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이 연구자가 오성취합의 기록이 조작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오성취합의 기록을 적어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오성취합이 언제 일어났다’는 기록이나 ‘언제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은 손쉽게 조작할 수 있다. 현대적인 컴퓨터로 계산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지만 이는 오해다. 옛날 사람들도 오성취합이 일어날 시점을 아주 손쉽게 계산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과거 어느 때 오성취합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왕조가 흥성할 징조였다고 해 왕의 환심을 사는 일이 가능하다. 또한 미래의 어느 때 오성취합이 일어나는데, 이때에 새 세상이 열린다는 예언으로 역성혁명의 추종자를 끌어 모을 수가 있다.
중국의 최호(?~450)라는 학자는 한나라가 흥하려 할 때 오성이 정수(井宿)에 모였다는 기록을 다시 검토해 이 기록은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는 기록보다 3개월 전에 오성취합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최호의 예를 보면 5세기경에 이미 행성들의 운동을 되짚어 계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오성취합을 끌어다가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언의 근거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인종 때(1132) ‘고현유훈’이라는 예언서에는 “천지가 생겨난 지 수만 년이 흐른 뒤에 일월오성이 모두 정북에 모여들 것이다. 성인의 도가 이때부터 행해질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천체가 한곳에 모인 때 쉽게 계산
오성취합의 시점을 계산하는 문제는 중국 역법과 수학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됐고 그 계산법이 널리 알려진 상식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중국수학사에서 유명한 ‘손자의 문제’는 역법 계산의 기산점(역원)을 계산하는 문제이다. 이 방법은 당나라 때부터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송나라 시대에는 거의 수학적으로 완성된 수준에 도달했다. 원나라 때 만들어진 수시력 이전의 중국 역법들에서는 거의 대부분 역원을 수천만 년이 넘는 큰 수치로 표시하고 있다.
역원은 계산의 기산점인데, 많은 역법에서 모든 천체가 한곳에 모인 때를 되짚어 계산해 이를 기준점으로 삼은 것이다. 오행성의 결집은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주기가 공통으로 동일한 위치에서 만나게 되는 시간을 계산하는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5세기경 활동한 중국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조충지는 무려 11개나 되는 서로 다른 주기가 한 점에서 만날 때를 계산하기도 했다.
보통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이 조작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현상의 기록에도 관측자나 기록자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천문학자가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자연현상과 옛날의 천문학자가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믿은 자연현상은 동일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서에 기록된 자연현상은 단지 자연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현상이라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의미 있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서 의미 있는 혹은 의미 있게 해석된 현상만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에 기록된 오성취합 기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오성취합이 사서에 기록됐다는 것은 기록한 사람들이 이 현상의 의미를 알고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현상에 대한 전통시대의 의미는 한나라 시대 이후에야 널리 알려지고 합의됐다. 그러니 이 기록을 써 넣은 사람은 한나라 시대 이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헌데 기원전 1733년 단군시대의 사람들이 오성취합을 중요한 천문현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기록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오성취합에 대한 전통시대 사람들의 이해수준을 감안하면 오성취합을 되짚어 계산하고 이를 책에 적어 조작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왕조의 흥망이나 역성혁명이라는 오성취합이 갖는 점성술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기록을 조작할 이유도 충분하다. 우리는 가끔씩 옛날 사람들의 지혜에 대해 터무니없이 무시한다. 그들이 지녔던 지혜와 기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능력이 없던 그들은 복잡한 계산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전통과학사를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할 때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옛날 사람들은 아주 쉽게 해냈던 예가 많다. 행성직렬 현상의 계산도 그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