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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박석재 지음|동아사이언스|182쪽|1만3000원

PROLOGUE

“우리의 민족정신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미국 유학시절 한국인의 민족정신이 무엇인지 묻는 외국인의 질문에 무척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3 · 1정신, 새마을정신, 홍익인간정신, 충무정신, 어느 것 하나 나의 가슴을 진정으로 채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대답한다. 우리는 하늘의 자손, 즉 ‘천손’이고 공통된 민족정신은 우주와 하늘의 섭리에 따르는 ‘천손정신’인 것이다”

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백성들이 왕조의 교체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그러던 중 고구려의 성좌도 탁본을 발견하고는 이를 돌에 새기라고 명한다. 1000년 전에 만들어진 고구려 탁본이었기에 별자리의 모양을 당시에 맞게 보정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들의 노력 덕분에 조선의 밤하늘을 담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완성됐다.

2007년 발행된 새 만 원짜리 지폐의 뒷면을 자세히 보면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국보 제230호인 혼천시계 위에 있던 혼천의와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천문대의 광학망원경도 그려져 있다. 한국천문학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새 지폐의 등장을 그 누구보다 반긴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 원장이다. ‘블랙홀 박사’라는 별명으로 더 친근한 박 원장은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노래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만 원 지폐 앞면에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봉도 병풍이 보인다. 저자는 “일월오봉도에서 해와 달의 크기가 같다”면서 “두 천체가 태양과 태음으로서 동등한 역할을 하고, 눈에 보이는 해와 달의 겉보기 크기가 같기 때문에 그렇게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해는 달보다 지름이 400배 큰 대신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약 400배 더 멀기 때문에 지구에서 본 ‘겉보기’ 크기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 지갑 속에서 전통천문학의 유산과 음양오행의 우주관을 찾아내는 그의 시각이 예리하다.

천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저자에게 김장을 언제 해야 할지, 점도 보는지 묻곤 한단다. 천문학을 기상학으로 오인하고 때로는 한국천문연구원을 점치는 곳으로 오해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 원장은 되묻는다. 천문대 망원경 부품은 주로 어디서 구하는지, 우리나라 과학위성에 탑재되는 관측위성은 누가 주로 만드는지, 우리나라의 GPS(국제위성항법시스템) 기준점은 어디에 있는지, 음력 생일의 양력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말이다. 네 가지 질문의 답은 모두 한국천문연구원이다.

천문학이란 세상과 동떨어진 하늘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박 원장은 1975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열렸던 천체관측회를 대한민국 별축제로 확대해 이어오고 있다. 2001년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대전시민천문대가 개관했을 때 가족들이 함께 찾아와 별 헤는 모습을 보며 저자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천문대는 산꼭대기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시내 한복판에 세워 누구나 부담 없이 별 보러 오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잘못된 일본식 표현인 혹성 대신 행성이란 단어를 쓰자고 열심히 캠페인을 벌었지만 ‘혹성탈출’이란 영화가 유행하며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에피소드처럼 이 책에서는 한 천문학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별에 대한 상식을 전해주는 것은 물론 가까운 천문대로 달려가고 싶다는 욕망을 불끈 솟아오르게 만드는 초봄의 비타민 같은 책이다.

박석재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에서 블랙홀 천체물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시민천문대 건립을 제안하며 천문학의 대중화에 헌신했고,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를 창립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이며 대전시민천문대 명예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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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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