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문학계를 주름잡았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말년에 뇌발작을 일으켜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가 유일하게 했던 한 마디가 최근 밝혀졌다. 그가 내뱉은 단어는 ‘Crenom’이라는 프랑스어 ‘욕’이었다. 연구를 주도한 스위스 인지신경과학연구소 세바스티안 디에구즈 박사는 “보들레르를 돌보던 수녀들은 그의 신경질적인 욕설에 화가난 나머지 신부에게 그를 요양원 밖으로 내쫓자고 주장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연구결과는 ‘최신 신경학과 신경과학저널’ 2007년 11월호에 실렸다.
‘악의 꽃’(Les Fleurs de Mal)의 적나라한 시구를 짓고 냉철하게 당대 문학을 비평했던 보들레르가 욕쟁이로 삶을 마칠 운명이었을까. 보들레르는 사고로 대뇌의 왼쪽 반구에 손상을 입은 뒤부터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디에구즈 박사는 “욕은 후천적으로 학습된다고 알려졌지만, 굳이 학습을 하지 않아도 뇌의 특정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욕 내뱉는 투렛 환자의 치료 실마리
대뇌의 왼쪽 반구는 논리적인 생각과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왼쪽 반구가 손상되면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왼쪽 뇌를 다쳐 말을 못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스러운 입’을 가진 환자가 돼버렸다.
최근 욕이 뇌기능과 관련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 소장은 “욕은 언어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감정표현”이라며 “감성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가 활발히 활동해 피질에서 욕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대 다이애나 시드티스 박사팀은 변연계가 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영상으로 증명했다. 연구팀은 ‘기능성 핵자기공명 단층촬영’(fMRI)장치로 욕을 들은 사람들의 뇌를 찍었다. 그 결과 욕을 들은 실험참가자들은 편도체 근처의 뇌(변연계)가 즉시 부풀어 올랐다. 연구팀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짧은꼬리원숭이의 변연계를 전기신호로 자극했다. 그 결과 원숭이가 아무 이유 없이 으르렁거리고 소리를 ‘꽥’ 질렀다. 마치 욕을 많이 들어 화가 날 때의 모습과 같았다. 시드티스 박사는 “정서 영역이 자극을 받아 원숭이가 소리를 지른 것”이라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같은 실험을 하면 욕을 내뱉는 반응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욕과 뇌의 관련성을 밝히는 연구는 틱 장애의 일종인 투렛증후군을 앓는 환자(이하 투렛 환자)를 치료하는데 유용하다. 투렛 환자는 근육이 끊임없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여 같은 행동을 반복하거나 소리를 낸다. 반복적으로 얼굴을 찡그리거나 발을 구르고 특정한 소리를 지른다. 투렛 환자들은 이 행동을 참으려고 해도 의지만으로는 억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주위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투렛 환자 가운데 30%는 욕을 반복적으로 내뱉는 ‘추어증’(coprolalia) 증상을 보인다. 추어증을 앓으면 상대에게 오해를 살 수 있어 이들의 경우 투렛 장애를 고치는 일이 급선무다.
투렛 환자가 후천적으로 학습한 욕을 자신의 의지로 제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렛 환자는 대화하며 들었던 한두 단어를 머리에 저장한다. 그런데 그 단음절 단어의 발음이 과격하고 충격적이라면 뇌의 변연계가 그 단어를 내뱉도록 충동질한다.
투렛 환자의 뇌를 fMRI로 찍으면 뇌의 표피 부분은 비활성화된 반면 변연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논리적인 언어생활이 불가능하고 과거에 들었던 단어 한두 개를 무의식적으로 내뱉는다. 전문가들은 투렛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약물보다 변연계 수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뇌수술은 아직 일각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욕 속에 녹아있는 ‘분노의 침전물’
투렛 환자는 뇌의 이상으로 욕을 많이 하지만 일반인도 욕을 많이 한다. 사회에서 ‘욕이란 남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나 저주하는 말’을 뜻한다(우리말큰사전, 1995).
서울대 언어학과 이나가와 유우키 씨는 ‘한국어 욕설표현의 사회언어학적 연구’라는 석사학위 논문에서 일상생활에서 욕을 자주 하거나 가끔 욕을 하는 사람은 전체의 50%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 사람은 싸울 때보다는 혼잣말을 하거나 친근감을 나타낼 때 욕을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욕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욕은 오래전부터 쓰였다. 영국 극작가인 윌리엄 세익스피어도 작품에 언어유희를 이용한 욕을 썼다. zounds나 sblood를 예로 들 수 있는데, “God’s wound”는 연음해서 zound처럼 소리가 나고 “God’s blood”는 연음하면 sblood가 된다. 둘 다 순화해서 표현하면 ‘제기랄’이란 뜻이다.
인류가 욕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욕의 순기능 때문이다. 욕은 일반 언어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영국 런던대 존 드웨일 박사는 2004년 욕을 기억하는 것은 보통의 단어를 기억할 때보다 4배 쉽다는 연구결과를 언어심리학 저널인 ‘다언어와 다문화 발달’에 발표했다. 강조하고 싶을 때 ‘꼭 기억해’보단 ‘기억 못 하면 죽어’라고 말하는 것이 효과가 좋듯 말이다.
욕을 하면 속이 시원해진다. 한때 개그맨 김구라의 엽기 욕 뉴스가 인기였다. 그를 지금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것도 시청자들이 그가 내뱉는 욕을 듣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공격성과 잔인성 같은 스티그마(stigma)가 욕의 발생동기일 수 있다. 욕에 ‘바보’ ‘병신’ 등이 많은 데는 상대방의 모자람을 욕거리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인제대 언어학과 김열규 교수는 “한국인이 바보나 병신 같은 단어를 욕거리로 삼았다는 것은 욕을 인간 악덕을 다스리는 몽둥이 찜질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욕이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왔음을 암시한다.
그래도 욕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욕을 들으면 농담으로 넘기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는 욕은 금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대 심리학과 엘마 게이츠 교수는 욕이 사람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를 실험으로 증명해 그의 저서인 ‘마음의 기술’에 실었다. 그는 사람들이 말할 때 나오는 미세한 침 파편을 모아 침전물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침전물의 색깔이 달랐다. 침전물은 평상시에는 무색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땐 분홍색이었다. 그런데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 욕을 할 때의 침전물은 짙은 갈색이었다. 갈색 침전물을 모아 흰쥐에게 주사했더니 쥐가 몇 분 만에 죽었다. 한 시간 내내 화를 내며 욕을 내뱉는 사람에게는 실험용 쥐를 죽일 수 있는 독이 있음을 밝힌 그는 이를 ‘분노의 침전물’이라고 이름붙였다.
화를 내는 말, 짜증내는 말, 욕을 내뱉는다는 것은 그때마다 상대방에게 독을 내뿜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을 흠집 내고 헐뜯는 말을 일컬어 ‘독설’(毒舌)이라고 부른다. 일찍이 다윈이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이라는 책에서 “인간과 동물이 나타내는 주요한 표현행위는 타고난 것이고 고유한 것”이라고 말했듯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드러내는 것은 고유본능이다. 그런데 고유본능이 타인에게 모욕을 주는 행동으로 변한다면 사회는 그것을 ‘금기’로 삼는다. 욕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내 몸에 ‘독’을 심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