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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보호지구에 남은 시간의 기록

고정촬영법으로 별빛의 궤적 담기

별빛보호지구에 남은 시간의 기록


“별빛이 흐르는 곳에 청정한 삶이 있습니다. 별빛의 낭만과 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두어 달도 별도 쉬어가는 아름다운 산하 강림면 월현리 지역을 별빛보호지구로 선포합니다.”
1999년 5월 1일 별빛보호지구 선포문

주말이다. 카메라와 여러 가지 장비를 차에 싣고 천문인마을로 촬영을 떠난다. 아름다운 6번 국도를 따라 강변을 달리다 보면 맑은 밤하늘에 대한 기대감에 한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서울에서 두어 시간을 달려 이곳에 도착하면 ‘별빛보호지구 선포문’이 적힌 팻말이 반긴다.

강원도 횡성 치악산의 끝자락 해발 650m에 자리잡은 천문인마을. 높은 하늘과 맑은 공기,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밤하늘에 흐르는 수많은 별을 볼 수 있어 우주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낯섦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천체사진

천체사진은 과학사진이다. 과학사진은 일종의 기록사진이고 탐구 목적의 사진이다. 현미경사진, 의학사진, 초고속사진이 과학사진의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언뜻 무미건조해 보이는 대상일지라도 피사체를 사진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아름다움은 주로 ‘낯섦’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마치 외국의 어느 낯선 장소에 가면 느껴지는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비슷하다. 먼 우주의 은하나 성운, 그리고 별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낯섦을 강조하기 위해 평소에 보기 힘든 천체를 사진에 담아보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은 천체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피사체를 뒤쫓다 보면 사진 속에 촬영한 사람의 느낌은 사라지고 소재만 덩그러니 남기 쉽다.

고가의 장비를 이용해 성운과 은하의 으리으리한 모습을 찍은 사진도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이런 사진은 누군가가 동일한 대상을 찍은 사진을 내놓는 순간 낯설음이 주는 아름다움은 점차 희미해진다. 그리고 단지 정교하게 찍은 사진이라는 느낌만 남는다.

낯섦이 주는 아름다움과 사진을 찍은 이의 체온이 함께 묻어나는 천체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까. 천문인마을에서 카메라와 삼각대, 릴리즈 그리고 별에 애정만 갖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데 도전해봤다.

먼저 낯섦의 아름다움을 그리기 위해 별빛의 궤적을 길게 담는 고정촬영법을 사용했다. 고정촬영법이란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카메라 셔터를 긴 시간동안 열고 촬영하는 촬영법이다. 주로 별이 움직인 자국(궤적)을 담아 독특한 느낌이 드는 사진을 찍을 때 이 기법을 사용한다.

고정촬영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별의 궤적을 어떤 모습으로 담을지 정하는 일이다. 사진에서는 균형 속의 비균형, 즉 흐트러져 있지만 질서가 있는 느낌을 담기 위해 별의 궤적이 화면 가운데를 대각선으로 지나면서 가장자리부분은 별의 궤적이 약간 휘도록 구도를 잡았다. 별의 궤적이 직선으로 나타나려면 천구의 적도 부근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향하게 해야 하므로 오리온자리를 길잡이 별자리로 잡았다.

여기에 천문인마을의 돔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아래쪽에 ‘살짝’ 보이게 해 필자의 이곳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천문인마을을 자주 찾는 이들이라면 사진 속의 장소가 어디인지 금새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옛 사진 같은 느낌이 나게 흑백으로 처리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추억같이 흐르는 그날의 별을 떠올릴 수 있도록.
 

TIP


북쪽하늘 찍을 때는 노출을 길게

사진은 찰나의 모습을 남기는 ‘순간의 예술’이며 실제 모습을 담는 ‘현실의 예술’이다. 하지만 인간의 시각으로 볼 수 없는 긴 시간을 담는 ‘축적된 시간의 예술’도 될 수 있고 평소에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초현실의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촬영법이 바로 고정촬영법이다. 별빛이 남긴 시간의 흔적을 담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의외로 간단하다. 카메라와 삼각대, 릴리즈만 있으면 그만이다. 카메라는 오랜 시간 노출했을 때 노이즈가 적게 나타나는 제품이 좋고 삼각대는 흔들림을 막아 매끈한 궤적을 남길 수 있도록 무겁고 튼튼한 제품이 적당하다.

이제 본격적인 촬영이다. 조리개는 f/4 또는 f/5.6으로 설정한다. 광해가 심한 장소에서는 f/8 정도로 조리개를 조이면 사진이 뿌옇게 나오는 일을 막을 수 있지만, 사진에 찍히는 별의 수도 그만큼 줄어든다. 감도(ISO)는 200에서 400정도로 설정하면 무난하다.

노출시간은 궤적을 길게 표현할 건지 아니면 짧게 할 건지에 따라 달라진다. 노출을 긴 시간 줄수록 궤적이 길어지기 때문에 노출시간은 말 그대로 ‘원하는 만큼’이다. 하지만 별의 일주 운동이 천구의 북극을 기준으로 한 시간에 약 15°씩 움직이기 때문에 천구의 북극에 가까울수록 별빛의 궤적이 짧아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노출시간을 결정했으면 구도를 잡고 촬영을 시작한다. 필름 카메라의 경우 셔터를 열고 몇 시간이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노출시간이 늘어날수록, 또 감도가 높아질수록 사진에 나타나는 입자가 거칠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막으려면 같은 구도에서 사진을 여러 장 촬영한 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합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2시간 동안 움직인 별의 궤적을 담은 사진을 얻으려면 15분 노출을 한 사진을 연속해서 8장 촬영한 뒤 합성하는 식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른 뒤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월척을 기다리는 강태공 마냥 별빛이 렌즈에 고스란히 담겨지기를 기다리면 된다.

필자는 돌아오는 주말에도 천문인마을로 촬영을 떠날 예정이다. 이번에는 어떤 천체사진을 찍어 볼까. 성운? 은하? 예쁘고 화려한 천체를 찍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남들이 많이 찍는 사진은 그리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날씨가 흐리면? 그래도 괜찮다. ‘성우’(星友)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그만이니까.
 

2월 2일 오전 7시 해뜨기 직전 동남쪽 하늘. 태양부터 목성까지 하늘에서 가장 밝은 천체 4개가 모두 모인다. 박성래 씨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디지털 과학사진을 전공하 고 예술학 석사를 취득한 뒤 현재 캐논코리아 컨슈머 이미징에서 일하고 있다. 틈틈이 찍은 별 사진을 모아 전시한 개인홈페이지 (www.starlit. pe.kr)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달 수상작, 박종선 씨의‘초승달’. 초저녁 어둑어둑한 파란하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초승달이 쓸쓸해 보인다.


이달의 천문현상

● 2월 초 밝기 ‘넘버 1~4’ 모두 모여


2월 초 새벽하늘에는 지구에서 볼 때 가장 밝은 천체 4개가 모두 모인다. 태양과 달 그리고 금성과 목성이 주인공이다. 2일에는 ‘넘버3’ 금성과 ‘넘버4’ 목성이 궁수자리를 배경으로 가장 가까이 접근한다. 두 행성 사이의 겉보기 거리는 45′로 보름달이 1개 반 정도 들어갈 거리다. 이날 ‘넘버2’ 그믐달은 바로 옆 전갈자리에서 두 천체를 내려다보듯 떠 있다. 그믐달은 날마다 고도가 낮아져 4일이 되면 새벽하늘 궁수자리에 모두 모인다. 3개 천체가 한자리에 모이면 곧이어 밝기 ‘넘버1’ 태양이 아침을 알리며 떠오른다.

● 2월 14일 반달과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만남

맨눈으로도 자잘한 별이 모여 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어 ‘좀생이별’이라는 별명이 붙은 황소자리 플레이아데스 성단에 반달이 접근한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밤하늘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이날 밤, 달 바로 옆 소곤거리듯 붙어 있는 별무리를 확인해 보자.


독자사진
 

지난 달 수상작, 박종선 씨의‘초승달’. 초저녁 어둑어둑한 파란하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초승달이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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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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