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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앗아가는 판데믹 바이러스 인베이전

영화 줄거리
귀환 중인 우주왕복선이 지구에 불시착한다.
그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가 발견되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정신과 의사인 캐럴 주변도 예외는 아니다.
이혼한 뒤로 연락을 끊고 지내던 전남편이 갑자기 아들이 보고 싶다며 전화를 하고,
정신과 면담을 예약했던 환자들이 무더기로 약속을 취소한다.
캐럴의 평소 소원대로 가족이 화목해지고 우울한 환자의 걱정이 줄어든 걸까.
그러나 막상 그가 꿈꿔오던 ‘완벽한 평화’가 현실로 다가오자
캐럴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데….

 

인베이전



인베이전은 ‘인간의 두뇌를 지배한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정복한다’는 내용의 미스터리-액션 영화다. 잭 피니의 SF소설 ‘신체강탈자’(The Body Snatchers)를 원작으로 1956년 미국에서 영화로 처음 만들어진 뒤 세 번째로 리메이크됐다. 영화에서 인간은 외계생명체에 감염된 뒤 감정의 기복이 없는 냉혈한으로 변신한다. 감염된 인간은 상대방에게 타액을 뿜어 외계생명체를 퍼뜨리는데, 마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전세계로 독감이 퍼지듯 빠른 속도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

세계적으로 유행한 강력한 전염병을 질병역학에서는 ‘범유행’(판데믹, pandemic)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1918~1919년 스페인독감의 범유행으로 5천만명이 사망했다. 당시 전세계 인구는 20억명으로 이 가운데 2.5%가 스페인독감으로 죽었으니 그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7년 아시아독감으로 약 600만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외계생명체의 두뇌 침입

다른 생명체가 인간의 뇌를 정복하는 방법은 크게 정신적인 경로와 물리적인 경로로 나눌 수 있다. 정신적 방법으로는 최면술이나 무속신앙에 나오는 신내림과 빙의가 있고, 물리적 방법으로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감염 정도가 아닐까. 전자는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고 논란이 많으므로 여기서는 물리적 방법에 대해서만 언급하자.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뇌에 침입하는 경로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첫째, 혈액의 흐름을 통해 침입하는 방식이다. 다른 장기와 달리 피가 뇌로 공급될 때는 혈관과 뇌 사이에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하는 장벽이 존재한다. 이를 뇌혈류장벽이라고 부른다. 뇌혈류장벽은 환자의 면역이 떨어질 때 허술해지는데, 이때를 틈타 혈관을 떠돌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뇌에 침입해 뇌염이나 뇌수막염을 일으킨다. 둘째, 두개골이 부서지는 외상을 당했거나 뇌수술을 받던 도중 뇌가 외부 환경에 직접 노출되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될 수 있다.

뇌는 여러 겹의 얇은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를 뇌수막이라고 한다. 뇌수막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뇌수막염이 생긴다. 뇌 자체가 감염되는 뇌염보다는 그 증세가 경미하지만 뇌수막염만으로도 간질 같은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간혹 뇌염이나 뇌수막염의 후유증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질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영화 인베이전은 인간 본질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도시에는 외계생명체에 두뇌를 잠식당해 감정을 상실한 신인류 무리가 득실댄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억지로 무표정한 얼굴을 지으며 숨죽이고 있다. 바로 그때 삶을 비관한 한 쌍의 연인이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리자 이를 목격한 여인이 참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순식간에 그는 주변을 에워싼 신인류에 의해 외계생명체의 ‘제물’로 바쳐진다.

상상만 해도 섬뜩한 이 장면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점은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며 이성을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속성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치로 감정은 인간과 기계를 구별할 수 있는 속성이 아닐까.

사실 인베이전에서 신인류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결여’는 정신분열병과 닮아있다. 정신분열병은 인격이 와해되고 현실감을 상실하는 정신질환의 일종인데, 감정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때문에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격리치료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가 약을 복용하면서 사회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외계생명체에 감염된 캐럴 (니콜 키드먼 분)은 졸음을 쫓는 신경흥분제를 먹으며 잠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항원 끈질기게 뒤쫓는 항체

영화에서 캐럴의 아들은 어릴 적 앓은 뇌척수염(급성 파종성 뇌척수염)의 후유증으로 외계생명체에 감염되지 않는다. 면역 항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뇌를 잠식당하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과학자들은 캐럴의 아들을 이용해 외계생명체를 방어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려 하고, 이미 감염된 신인류는 이를 막기 위해 캐럴의 아들을 필사적으로 제거하려 한다.

항체란 몸속에 새로 들어온 외부물질(항원)을 파괴하기 위해 면역세포가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항체는 항원을 모두 파괴한 뒤 서서히 소멸한다. 항원이 생존해있다면 항체도 몸속에 계속 존재한다.

수두 같은 질병은 한번 걸리면 수두 바이러스가 몸속 신경세포뭉치인 신경절 속에 평생 숨어있다. 이 경우 항체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수두에 다시 걸릴 일은 없지만 수십년 뒤 신경을 타고 수두 바이러스가 전염되면 피부에 대상포진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모든 항체가 감염을 예방하는 것은 아니다.

B형간염에 걸린 사람은 HBeAb(e항체)나 HBcAb(c항체), HBsAB(s항체)를 만들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면역항체는 s항체뿐이다. 신생아의 B형간염 감염률이 성인보다 높은 까닭은 s항체를 잘 만들지 못해서다.

백신은 바로 몸의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해 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미생물을 약화시키거나 죽여 인간의 몸에 투여하면 그 미생물에 저항하는 항체가 만들어져 나중에 같은 미생물에 감염돼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 1798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소에게 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이하 종두 바이러스)가 사람이 천연두에 걸리는 것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직접 종두 바이러스를 접종한 것이 그 시초다.

백신은 주로 주사나 경구투여로 접종하는데, 접종 부위나 투여방법이 잘못된 경우에는 충분한 질병 예방효과가 생기지 않거나 이상반응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백신을 헬기에서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공기흡입 백신도 만들 수 있겠지만, 이 경우 1회 투여 용량이 정확하지 않으므로 충분한 예방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인베이전



절대 잠들지 마라?

영화에서 외계생명체에 감염된 인간은 렘(REM)수면기에 징그러운 번데기처럼 변한다. 잠시 후 겉모습은 다시 멀쩡한 채로 감정이 없는 신인류로 태어나는데, 렘수면기 동안 핏속에 잠복한 외계생명체가 증식하는 것. 공교롭게도 캐럴 역시 외계생명체에 감염된 상태라 잠시라도 잠들면 렘수면을 거치며 신인류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렘수면이란 ‘Rapid Eye Movement’, 즉 자는 동안에도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수면기를 의미한다. 보통의 잠은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데, 렘수면기에는 척수와 운동신경이 억제돼 몸은 거의 마비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혈압, 체온, 호흡수가 증가하고 뇌의 활동은 활발하기 때문에 이때 꿈을 꾼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 몸은 죽은 듯 잠들지만 뇌는 깨어나는 렘수면기를 바이러스의 증식기로 설정한 까닭은 바로 인간의 정신, 즉 감정을 앗아가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거머리처럼 끈덕지게 쫓아오는 신인류들과 시시각각으로 찾아오는 렘수면의 유혹 속에 캐럴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다.
아들을 살리겠다는 뜨거운 모성애 하나로 졸음을 쫓는 신경흥분제를 씹으며 순간순간을 버티는 캐럴. 과연 그는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아들과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신인류는 외계생명체에 대한 항체를 지니고 있는 캐럴의 아들을 제거하기 위해 끈질기게 그를 추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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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훈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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