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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공학자가 전기회로를 설계하며 전기의 흐름을 쫓는다면 금융공학자는 금융상품을 설계하고 가치를 평가하며 돈의 흐름을 쫓습니다. 대상을 관찰해 수학적 모형을 만들고 결과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둘은 크게 다르지 않지요.”

한국채권평가의 한국채권공학연구소에서 다양한 금융파생상품의 가치평가 모형을 개발하는 임명임씨는 금융공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5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위상기하학을 연구하던 그가 금융시장의 흐름을 쫓는 공학자로 변신한 계기는 뭘까.
 

임명임



금융상품 가치 평가하는 ‘감정사’

지난 8월 16일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부실해진 여파로 국내주식시장은 사상 두 번째로 서킷브레이크(거래 일시중단)를 발동하며 휘청거렸다.

미국의 금융사들이 신용이 낮은 시민에게 높은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해 주고 그 채권을 이용해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유통시켰는데, 자금 회수가 잘 안돼 여기에 투자한 세계 금융사들이 재빨리 자금을 회수했고 이 여파가 도미노처럼 우리나라까지 이어진 것.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다양한 신용 파생상품의 가치와 위험요소를 정확히 파악하는 금융전문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특히 세계 금융시장에서 ‘금융상품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금융전문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T)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금융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금융권에 종사하거나 진출하고 싶은 여성을 대상으로 ‘금융공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공계 대학을 졸업했거나 현재 과학기술분야에 재직하고 있는 여성에게는 약 2개월의 교육기간 동안 교육비 200만원 중 125만원을, 이공계 대학원생에게는 150만원을 지원한다.

임 씨도 이런 혜택을 받고 2005년 이 교육과정 1기로 등록해 금융계에 첫 발을 들여놨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금융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는 순수수학을 전공했어요. 대학원에서 위상기하학을 연구할 때까지 지금처럼 금융계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회의가 들기 시작하더군요. 뭔가 실용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화여대 수학과에서 위상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난 뒤 KAIST에서 강의를 하면서 수학을 현실세계에 응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생명공학에 기하학을 응용하는 분야를 추천해주기도 했지만 그에게 생명공학은 너무 생소했다.

그런 가운데 눈에 들어온 분야가 사회현상에서 뽑아낸 여러 통계 데이터를 기하학적으로 분석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정보기하학이었다. 특히 금융공학과 관련된 논문을 찾아 읽으면서 수학을 이용해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내친김에 실무까지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 때마침 WIST에서 처음 개설한 금융공학 교육과정에 등록했다.

과정을 함께한 사람들은 은행이나 보험사 같은 금융업계 종사자부터 평가사까지 다양했다. 금융 실무에 대해서는 초보나 다름없던 임 박사는 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실전감각’을 익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10주 동안 배운 내용이 금융대학원의 한 학기 강의 분량이더군요. 짧은 시간에 다루기엔 벅찬 분량이었는데 강의가 알차게 준비돼 있는데다 실습도 함께 해 내용을 따라가기 쉬웠습니다.”

교육과정을 마친 뒤 그는 KAIST 금융공학연구센터에 박사후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다양한 신용파생상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과제에 참여하며 금융공학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지난해 한국채권평가에 입사하며 금융업계에 데뷔했다.

그는 “아직 금융공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손해 보지 않는 거래를 하려면 뛰어난 금융공학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맞는 선진 금융환경을 만드는데 일조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임명임

200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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