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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인공태양'이 뜬다

12년 진화한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KSTAR


KSTAR의 진공용기 내부. 도넛 모양이다. 진공용기 안에 플라스마를 가둔다.


그 해 8월, 사람들은 윈도95를 구매하기 위해 수십 블록씩 줄을 서서 기다리며 ‘컴맹’ 탈출을 꿈꿨고, 9월, 프랑스는 남태평양 무루로아 환초섬에서 네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하며 세계 평화의 꿈을 산산조각 냈고, 12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쏘아올린 목성탐사선 갈릴레오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목성의 대기권 자료를 수집하는데 성공하며 우주를 향한 인류의 오랜 꿈을 이뤘다. 그리고 같은 시기 한국은 ‘인공태양’을 향해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새로운 한 해를 기다리며, 1995년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탄생기 _ 천덕꾸러기에서 세계의 기대를 한 몸에!


01초전도 자석과 진공용기가 들어 있는 KSTAR 주장치. 외장덮개를 씌우기 전 위에서 내려다봤다.


“3개월 앞도 예측 못하는 마당에 30년 뒤에 일어날 일에 투자하라니요.” ‘인공태양’은 시작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태양의 중심처럼 1억℃가 넘는 초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가벼운 수소(H) 원자핵들이 융합해 무거운 헬륨(He) 원자핵으로 변하면서 만드는 엄청난 양의 핵융합에너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 지구상에서 아직 어느 누구도 얻지 못한 ‘꿈의 에너지’.

이런 핵융합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태양처럼 핵융합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초고온, 초고압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 소위 한국산 ‘인공태양’은 사업비만 총 3090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1997년 IMF가 닥치자 사업비의 규모부터 도마에 올랐다. 당시 핵융합 기술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정도만 확인된 상태였다. 한국은 핵융합 연구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일각에서는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기술에 대한 확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KSTAR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핵융합연구센터 이경수 선임부장은 “KSTAR를 통해 세계에서 핵융합 연구의 선두 그룹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설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이 선임부장은 만장일치로 국제핵융합평의회 16대 의장에 선출됐다. 이에 대해 그는 “KSTAR에 거는 세계의 기대를 반영한 결과”라며 뿌듯해했다.

성장기 _ 가장 차가운 그릇에 가장 뜨거운 물질을 담는다


02지난 1월 외장덮개에 해당하는 대형 저온용기를 조립하는 상량식에 참석한 핵융합연구센터 연구원과 기술진.


KSTAR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계 최초로 초전도 자석만을 사용해 만든 핵융합 장치이기 때문이다. 초전도 자석은 전류가 통과할 때 저항이 0이다. 플라스마를 가두는데 초전도 자석을 사용하지 않으면 1억℃나 되는 고온을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초전도 자석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400가닥의 초전도 선을 꼬아 엄지손가락 두께의 케이블을 만들고, 다시 이 케이블을 감아 자석을 만든다.

게다가 초전도 자석은 극저온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400가닥의 초전도 선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틈을 만들어 이 속으로 영하 268.5℃의 액체 헬륨을 주입해야 한다. 박주식 KSTAR 사업단장은 KSTAR를 “가장 차가운 그릇에 가장 뜨거운 물질을 담는다”고 표현했다.

특히 액체 헬륨이 새지 않으려면 초전도 자석이 진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KSTAR에 쓰이는 초전도자석은 모두 30개. 그 중 길이가 긴 것은 1700m나 된다. 이들이 진공 상태를 유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처음에는 값비싼 기기를 썼다. 하지만 기기의 감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은 지름 4m, 높이 4m의 팔각기둥 모양의 큰 수조에 자석을 담군 뒤 물에서 기포가 올라오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빵빵하게 집어넣은 뒤 물을 채운 세숫대야에 넣으면 타이어에 균열이 있는 경우 기포가 생기는 원리를 이용했다.

초전도 자석끼리 연결되는 지점에 생기는 저항을 줄이는 방법은 반도체 기판에 얇은 금속막을 입히는 데에서 힌트를 따왔다. 자석의 연결 부위를 은으로 얇게 코팅해 저항을 1나노옴(nΩ, 1nΩ=10-9Ω) 수준으로 낮췄다. 대개 저항이 10nΩ이면 작동할 때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


핵융합발전 과정


발전기 _ 300초 운전의 꿈


03KSTAR는 10개월간 시운전을 마친 뒤 2008년 6월부터 핵융합발전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죠.” 핵융합연구센터 권면 연구개발부장은 오는 9월 시운전을 앞두고 있는 KSTAR에 대한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장치를 만들었을 뿐 본격적인 핵융합 연구는 지금부터라는 것. 10개월간 시운전을 마치고 나면 2008년 6월부터 핵융합발전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시작한다.

우선 KSTAR의 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한다. 이때 핵융합 발전에 필수인 이론적, 기술적 문제를 검증한다. 제일 중요한 과제는‘300초 운전’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

기존에 전자석으로 만든 핵융합장치는 구리선의 전기저항으로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었다. 냉각수를 흘려 넣어주면서 열을 식혀야 하므로 대개 20~30초 가동하고 20~30분 쉬었다가 다시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권 부장은“KSTAR는 저항이 구리선의 수백분의 1에 불과한 초전도 자석을 쓰기 때문에 300초 동안 지속적으로 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운전시간이 300초로 정해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수소 원자핵들이 핵융합하면서 중성자를 대량 방출하기 때문에 300초 이상 운전할 경우 주변 물질들의 방사화가 일어난다. 무엇보다도 핵융합 기초 연구가 목적인 KSTAR로서는 300초로 충분하다. 2015년 프랑스 키다라쉬에 실제 핵융합발전로를 건설할 계획인 국제핵융합로(ITER)가 목표로 하는 운전 지속 시간도 500초다.

현재 KSTAR는 ITER의 테스트 베드로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ITER 연구팀은 건설비를 줄이기 위해 핵융합로를 재설계하면서 KSTAR와 비슷한 방식으로 초전도 자석의 형태를 바꾸기도 했다. 이 때문에 KSTAR는 ITER의 축소판이자 파일럿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영하 268.5℃의 초전도 자석에 1억℃의 뜨거운 플라스마를 가둬놓는 상극의 기술이 만나 빚어낼 새로운 핵융합에너지. KSTAR는 벌써부터 세계를 설레게 한다.


KSTAR 사업을 이끌고 있는 박주식 단장.


KSTAR 기네스

1. 초전도 자석에 들어간 초전도 선을 모두 이으면 길이가 약 1만2000km다. 지구의 지름과 거의 비슷한 길이. 이 정도면 서울과 부산을 약 27번 왕복할 수 있다.

2. 초전도 선 안에는 초전도 심이 3000가닥 이상 들어 있다. 이 초전도 심을 꺼내 한 줄로 이으면 길이가 약 3600만km다. 지구 둘레를 약 1000번 감을 수 있고, 지구와 달 사이(38만km)를 약 50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다.

3. KSTAR가 들어선 실험동 건물의 벽면 두께는 1.5m. 이런 특수 실험동을 짓는데 들어간 총 시멘트 양은 5만1263m3. 이 정도 양이면 아파트 1000세대를 지을 수 있다.


01KSTAR 내부 구조물은 1mm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과정을 꼼꼼히 체크하는 일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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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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