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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
극락도란 섬에는 모두 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제약회사의 신약개발 연구원인 주인공 우성(박해일 분)은 마을 이장과 짜고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지급되는 설탕에 정체불명의 신경 조절제를 섞어 임상시험을 한다. 그러던 중 환각 증세를 보인 몇 사람의 우발적인 살인으로 마을 주민은 모두 죽거나 실종된다.

 

극락도 살인사건


‘극락도 살인사건’은 1980년대 남해의 작은 섬에서 발생한 대량 살인, 실종 사건을 밀실살인 추리극의 형태로 재구성한 공포-추리 영화다.

제약회사가 동물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신약 임상시험을 한다는 설정은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도망자’(1993년)와 비슷하다.

하지만 ‘도망자’가 살인 누명을 쓴 주인공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면 ‘극락도 살인사건’은 잘 꾸며진 캐릭터의 힘보다 복잡 미묘한 플롯의 묘미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얄궂은 날씨에 육지와의 교통은 두절되고 무전기는 고장 난 상황,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의 존재는 시종일관 관객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특히 슈렉과 콰지모토(‘노틀담의 꼽추’에 나오는 꼽추)를 합성한 듯한 외모의 한씨(성지루 분)가 보여준 포악스런 연기와 그의 환각에 등장하는 처녀귀신은 보는 이의 심장박동수를 최대로 높이기에 충분하다. 한씨가 먹던 신경 조절제가 섞인 설탕이라도 얻어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도대체 이 설탕에는 무슨 약이 섞여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임상시험은 과연 합당한 것이었을까?

똑똑해지는 신경 조절제?

극락도의 주민들은 설탕 속에 섞인 정체불명의 신경 조절제를 먹으면서 점점 똑똑해진다. 가장 괄목 할 만한 발전을 보인 사람은 저능아였던 한씨. 한씨는 마을사람들 중 가장 많은 양의 신경 조절제를 먹은 덕분에 숨은그림찾기의 오답을 찾을 정도로 똑똑해지고 사람들을 충동질하며 살인마저 서슴지 않는 냉혈한으로 변한다.

여기에는 환각증상(Hallucination, 실제로는 자극이나 대상이 없는데도 있는 것으로 느끼는 증상)이 한 몫 톡톡히 한다. 환각증상은 약의 이상반응(adverse rea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부작용(side effect)이란 말은 약물의 부가적인 작용을 일컫는데, 한자권인 우리나라에서는 ‘부’가 ‘不’로 인식돼 이상반응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약은 각성작용을 주된 효능으로 하되, 부작용 혹은 이상반응으로 환각작용을 나타내는 신경 조절제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을 가진 약으로는 우선 아리셉트(Aricept)나 엑셀론(Exelon), 레미닐(Reminyl)과 같은 치매 조절제가 있다. 이들 약은 아직 치매를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준은 못되지만 진행을 늦추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근 각광받고 있다.

사실 1990년대 이전에는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를 위한 약은 전무했고, 치매는 죽음에의 징검다리 정도로 여겨진 홀대받는 병이었다. 이런 치매가 제약회사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995년 로널드 레이건 연구소가 설립되면서부터다. 미국의 전(前)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의 치매를 안타깝게 생각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폭주하면서 치매 치료제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최근 세계적으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치매 조절제의 판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니 미국 제약회사들은 노망한 전직 대통령에게 큰절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울증 환자는 판단력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아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면 환자의 인지능력이 회복된다. 따라서 우울증 치료제의 하나인 세로토닌제는 각성 효과를 보일 수 있어 두 번째 후보가 될 수 있다. 프로작(Prozac)이나 졸로프트(Zoloft), 파로섹틴(paroxetin)이 대표적인 세로토닌제다.

다만 영화의 설정과 달리 이들은 아직 환각증상은 없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하지만 최근 세로토닌제를 복용하는 사람 수가 급증하면서 정신 착란, 초조감, 심박 증가, 구토 등을 주된 증상으로 하는 세로토닌 신드롬(serotonine syndrome)의 발생이 늘고 있어 세로토닌제의 복용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주의환기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시중에 유통되는 일부 비만 치료제 중에는 세로토닌제가 포함돼있기 때문에 복용 전에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

한편 각성작용을 부가작용, 환각증상을 주된 효과로 본다면 신경자극제인 암페타민(amphetamine)도 유력한 후보가 된다. ‘히로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암페타민은 강력한 환각제인 동시에 마약으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가제 폭격기를 몰았던 비행사들이 출격 직전 히로뽕을 차에 타 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물론 이런 마약류는 중독성과 의존성, 금단증상이 심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소량씩 복용하며 멋모르고 빠져들지만 나중에는 같은 용량의 마약으로는 도저히 환각증상을 얻을 수 없어 점점 많은 양의 마약을 찾게 되고 급기야 인격이 말살되며 마약 공급자에게 꼼짝없이 조종당하게 된다.
 

극락도 주민들이 먹은 흰 설탕의 정체는 뭘까. 아리셉트나 엑셀론, 레미닐 같은 치매 치료제는 각성 효과가 있어 제1 후보가 될 수 있다.
 

임상시험은 합당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임상시험관리기준에 대해 1998년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시를 따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약을 개발할 때 첫 단계로 신물질을 탐색해 신약을 만들고, 두 번째로 동물실험을 통해 약품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전임상시험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한다.

언뜻 보면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세계적으로 신약을 개발한 성공 사례를 보면 평균 개발기간만 약 14년에 비용은 약 8억달러(약 7450억원)가 들고, 성공 확률은 1만분의 1 정도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우성은 마을 주민 15명을 대상으로 신약을 투여한 뒤 반응을 관찰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약품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고 있으니 이는 분명 임상시험에 속하는데, 이 경우는 제1상 임상시험에 해당된다.

임상시험은 참여하는 사람의 수와 시험의 주목적, 방법에 따라 1상부터 4상까지 나뉘는데, 수백~수천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3상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경우에만 약의 시판이 허용된다. 약이 판매된 뒤에도 의사나 환자의 약물 부작용 사례 보고에 의한 4상 임상시험이 남아 있다.

영화 초반 우성이 주민들에게 설탕을 나눠주며 피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1상 임상시험에서는 체내 약물 동태를 검사하기 위해 피검사가 필요하다. 1상 임상시험은 통상 20~80명의 환자에게 신약을 투여하고 그 약물의 체내 동태, 약리 작용, 부작용, 안전하게 투여할 수 있는 약의 용량 등을 결정하는 것이 목표다. 영화의 경우 인원이 약간 모자라지만 전형적인 1상 임상시험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장면에서 피를 뽑아놓은 주사기를 그대로 방치한 점은 옥에 티다. 피는 몸 밖으로 나오면 적혈구가 깨져 화학성분이 변하고 응고가 일어나 굳으므로 적절한 검사 용기에 담아야 한다.

끝으로 영화가 던져주는 또 다른 교훈이 있다. 바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실험은 반드시 윤리적인 요소를 충족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비록 영화의 주인공이 행한 1상 임상시험이 과학적인 방법에서는 오류가 없었다고 하나 윤리적인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당연히 피험자의 승낙과 엄격한 시험통제가 있어야 한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첫 단계는 신물질을 찾는 일이다. 이 단계부터 임상시험을 거쳐 실제로 신약을 개발하기까지는 평균 14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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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훈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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