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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여름철새들은 우리나라를 떠나고 겨울철새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특히 ‘V’자를 그리며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의 모습은 한마리 거대한 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왜 기러기들은 자유롭게 날지 않고 이처럼 대열을 이뤄 수천km를 이동할까. 연구자들은 이런 형태로 비행할 때 좌우에 따라가는 기러기들이 가장 힘이 덜 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러기는 본능적으로 공기의 흐름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러기가 비행할 때 주위 공기의 흐름을 수치적으로 정확히 분석하지는 못한다. 공기나 물처럼 형상이 자유롭게 변하는 유체(流體)의 움직임은 워낙 복잡한 현상이어서 여러개의 난해한 방정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 식은 풀리지 않고 있다. 식을 만들어봤자 답을 구할 수 없으니 무용지물인 셈이다. 따라서 유체인 공기가 흘러다니는 하늘을 이동하는 비행체를 연구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권오준 교수(왼쪽에서 네번째) 가 이끄는 전산공력시스템연 구실에서는 이상적인 비행체 구조를 찾는 시뮬레이션 연구를 수행한다.


유체 방정식 풀리지 않아

이처럼 이론적인 연구가 어렵다보니 하늘에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는 최적의 비행체를 설계하려면 풍동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 풍동실험은 조그만 비행 모형체를 만들어 여기에 인위적으로 바람을 일으켰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하는 기법이다. 풍속, 압력, 온도 등 비행조건을 바꿔가면서 얻은 비행자료를 모아 실제 비행체 설계에 반영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실험할 수 있는 비행 조건도 다양하지 못해 변화무쌍한 실제 하늘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KAIST 기계공학과(항공우주공학전공) 권오준 교수의 전산공력시스템연구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방법으로 가장 이상적인 비행체의 구조를 찾고 있다. 바로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연구다. 지난 수십년 간 컴퓨터 성능이 눈부시게 향상됨에 따라 비행 환경을 수치화해 현상을 관찰하는 가상풍동실험이 가능해졌다. 이런 새로운 분야를 ‘전산유체역학’ 또는 ‘전산공기역학’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연구가 전통적인 실험적 연구를 거의 대신하고 있다.

물론 컴퓨터도 실제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한다.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방정식은 컴퓨터를 쓰더라도 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실제 상황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으면서도 답을 구할 수 있는 근사식을 만든다. 이때 고려하는 변수를 늘릴수록 근사식이 보여주는 상황은 실제와 좀더 가까워진다.

그러나 공기의 움직임을 최대한 반영한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경우 슈퍼컴퓨터를 쓰더라도 결과를 얻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권 교수 연구실은 ‘계산격자’개념을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계산격자란 가상공간을 일정한 크기로 나눴을 때 각각의 단위다. 이렇게 공간을 나눈 개별 계산격자의 수식은 원래의 식보다 훨씬 간단해진다.

병렬 컴퓨팅으로 데이터 해석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비행 체의 최적 구조를 찾고 있다.


연구자들은 계산격자에서 얻어진 자료를 1백여대의 PC에 나눠 보내 분석한다. 이렇게 얻은 개별 자료를 한데 모아 가상공간에서 벌어진 풍동실험을 해석한다. 권 교수는 “이런 해석 방법을 병렬 컴퓨팅이라고 부르는데, 기존의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며 “계산격자로 나누고 분석한 결과를 다시 합치는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짜느냐가 시뮬레이션의 수준을 가늠한다”고 말한다.

권 교수 연구실은 이런 막강한 분석법을 써서 항공기, 미사일, 헬리콥터 등 각종 비행체의 모양에 따른 공기역학적 성능을 예측한다. 또 특정한 비행조건에서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비행체의 형태를 설계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전투기나 미사일처럼 속도가 음속에 가깝거나 능가할 때는 ‘충격파’(shock wave) 등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시뮬레이션 연구가 필수적이다.

연구팀은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 같이 매우 높은 고도에서 공기가 희박한 공간을 이동하는 비행체들의 공기역학적 성능을 예측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지상으로부터 20km 위인 성층권을 탐사할 비행선 개발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다.

권 교수는 “전세계에서 운항되고 있는 항공기의 공기저항을 2%만 낮춰도 연간 수조원의 연료비를 줄일 수 있다”며 “이를 실현시키려면 수많은 풍동실험이 필요한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비행체 연구결과는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 공기의 흐름과 연관된 각종 제품에도 활용될 수 있다. 또 같은 유체인 물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선박이나 잠수함에도 응용된다.

권 교수의 연구실에는 7명의 박사과정, 3명의 석사과정 학생들이 미래의 첨단 비행체 개발을 꿈꾸며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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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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