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만 선수요? 말단 비대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희의료원 내분비내과 김성운 교수의 말이다. 최근 최홍만 선수에게는 ‘거인증’이라 부르는 말단 비대증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최 선수 측은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의학계에서는 거의 확신하는 추세다.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박철영 교수도 “최 선수의 얼굴을 보면 이마가 튀어나오고 코와 턱이 발달했다”며 “말단 비대증 환자의 전형적인 얼굴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말단 비대증은 성장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분비돼 코, 턱, 손가락, 발가락 같은 신체의 끝부분이 커지는 증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발이 작게 느껴지거나 반지를 낄 수 없어지면 말단 비대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말단 비대증은 왜 생길까. 성장호르몬은 신체적 사춘기가 끝나면 분비량이 줄어들어야 한다. 사춘기가 끝나면 성장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성장호르몬은 체내 지방을 태우고 근육을 만들기 위한 소량만 필요하다. 그러나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는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기면 분비량을 줄이지 못해 말단 비대증이 생긴다.
뇌하수체 종양이 어릴 때 생기더라도 말단 비대증은 사춘기가 지나야 시작된다. 사춘기가 끝나기 전에는 성장호르몬의 대부분이 키가 자라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량으로 분비된 성장호르몬은 성장속도를 매년 8~9cm로 만든다. 정상적인 성장속도인 4~5cm와 비교하면 매우 빠른 속도다. 그러나 사춘기가 끝나고 성장판이 닫히면 성장호르몬은 더 이상 뼈를 자라게 할 수 없어 신체의 말단을 서서히 크게 만든다.
성장판이 닫히면 왜 뼈가 자라지 않을까. 성장판의 정식명칭은 ‘골단연골’로 뼈의 끝 부분인 ‘골단’과 뼈의 줄기부분인 ‘골간’을 잇는다. 관절의 연골과는 다르다. 어린이의 성장판 X선 사진을 보면 마치 골간과 골단이 끊어진 듯 검게 나타난다. 뼈가 자랄수록 검은 부위는 점점 얇아지며 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면 성장판은 금새 얇은 막으로 변한다. X선 사진에 성장판이 흔적으로만 나타나면 성장판이 닫혔다고 말한다. 성장판이 닫히면 뼈를 만들어 낼 곳이 없어 더 이상 뼈가 자라지 않는다.
성호르몬은 성장판을 빨리 닫히게 만들지만, 대신 성장속도를 빠르게 한다. 성호르몬이 분비되면 매년 4~5cm씩 자라던 키가 매년 7~10cm의 속도로 자란다. 그래서 사춘기가 시작되면 키가 급격히 자라고 1~2년 뒤에는 성장판이 닫혀 성장이 멈춘다.
최근 영양상태가 좋아지며 2차 성징이 10~12세부터 시작될 정도로 신체적 사춘기가 빨라지고 있다. 흔히 성조숙증이란 말을 쓰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성조숙증은 여자는 8세 이전, 남자는 10세 이전에 2차 성징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며 병의 일종이다. 성조숙증의 경우 이른 시기에 성호르몬이 분비돼 미처 키가 다 자라기 전에 성장판이 닫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성호르몬 분비 억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주사를 맞으면 2차 성징이 늦어지고, 성장판이 닫히는 속도가 지연돼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
성조숙증은 성장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만 신체적 사춘기가 빨라지는 경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박 교수는 “영양상태는 성장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성장기간이 짧아지는 만큼 성장속도가 매년 5cm 이상 빨라져 성인이 됐을 때의 키에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는 선천적 요소와 후천적 요소로 결정된다. 선천적 요소는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의 형질이고, 후천적 요소는 영양상태나 생활습관 같은 환경적 요소다. 키는 대개 유전적 영향을 많이 받지만, 자신의 호르몬 타입을 파악해 키가 자라도록 노력한다면 5~10cm 정도는 더 클 수 있다. ‘호르몬을 아는 것이 힘’이다.
호르몬에 따른‘키 크는 유형’4가지
내 키는 얼마나 클까? 자신의 성장 곡선을 알면 호르몬이 언제, 얼마나 분비되는지 알 수 있다.그리고 호르몬을 알면 자신의 키가 얼마나 될지, 키를 더 자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자신의 키 크는 경향을 보고‘내 키’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상형
특징 : 매년 4~5cm씩 꾸준히 성장한다. 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성장할 수 있다. 뇌하수체에 종양이 있는 거인형을 제외하면 키가 가장 많이 자랄 수있는 유형이다.
진단 : 대개 부모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키가 결정된다. 성인 예상키를 계산하려면 부모 키의 평균에 남자는 7~10cm를 더하고 여자는 7~10cm를 뺀다. 아버지가 180cm, 어머니가 160cm라면 아들의 예상키는 177~180cm다.
처방 : 부모의 키가 작아 예상키가 작더라도 식사를 거르지 않고,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밤
(12~2시)에 잠을 충분히 잔다면 예상키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거인형
특징 : 매년 8~9cm씩 자란다. 성호르몬이 분비된 뒤에도 꾸준히 자라다가 성장판이 완전히 닫히면 멈춘다.
진단 : 또래보다 키가 크고 2차 성징이 시작된 뒤에도 성장속도가 줄지 않는다면 뇌하수체에 종양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거인형은 키가 2m넘게 자라기도 한다. 성장판이 닫히면 점점 코와 턱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말단 비대증 환자의 얼굴이 된다.
처방 : 뇌하수체 검사를 받아 보는 편이 좋다. 뇌하수체에 종양이 있으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은 두개골을 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다른 뇌수술보다 쉽다. 레이저로 종양을 제거할 수도 있고, 코로 의료기구를 삽입해 종양만 끄집어낼 수도 있다.
반짝형
특징 : 성호르몬의 분비시기가 이상형보다 2~4년 정도 빠르다.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이 함께 분비돼 1~2년 동안 매년 7~10cm 정도 급격히 자란 뒤 성장이 멈춘다.
진단 : 음모가 나는 사춘기의 징후가 또래보다 일찍 나타난다. 사춘기가 지난 뒤 이 유형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상형과 비교해 사춘기 이전에는 키가 작지만사춘기가 지나면 더 커진다. 사춘기 직후에는 또래보다 키가 크지만, 금방 성장이 멈춰 해가 지날수록 상대적으로 키가 작아져 성인의 키는 이상형보다 작다.
처방 : 질병이 아니므로 성호르몬 분비 억제제는 사용할 필요가 없다. 사춘기가 시작됐을 때 운동을 하고 균형잡힌 식사를 하면 성장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의사들은 공통적으로 농구, 달리기, 스트레칭 같은 운동과 우유, 멸치 같은 고칼슘 식단을 추천했다.
왜소형
특징 : 성장호르몬이 적게 분비돼 2세 이후부터 사춘기 전까지 매년 4cm미만씩 성장한다.
진단 : 같은 연령의 평균키보다 10cm 이상 작다면 이 유형일 수 있다.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징후인 음모가 나기 전에 성장호르몬 검사나 골연령 측정 같은 정밀 검진을 받아야 한다.
처방 :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키가 커질 수 있다. 성장판이 닫혀있거나 닫히기 직전이라면 큰 효력이 없지만 성장판이 닫혀있지 않다면 1년에 7~8cm씩 자랄 수 있다. 청소년기 이전에 맞는 성장호르몬 주사는 성인일 때보다 안전하다. 어릴 때는 호르몬 분비가 많아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도 전체 호르몬의 양에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호르몬 분비가 적은 성인은 몸이 붓고 혈압이 올라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