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군.”
지난 5월 19일 ‘2007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Blizard Worldwide Invitational)이 개최된 서울 올림픽공원. 해병대 병사의 중후한 음성이 울려 퍼지자 6만여 명이 상기된 얼굴로 일제히 무대 중앙을 향했다. 세계 최초로 스타크래프트2의 예고편 동영상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고무 질감과 폭발 잔해 입체적으로 구현
미국의 블리자드가 개발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 처음 등장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는 ‘국민 게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인기를 끌었다. PC방에서는 스타크래프트를 잘하는 사람 뒤에 여러 명이 둘러서서 게임 장면을 구경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는 국내의 게임 지형도를 바꿔 놓았다.
따라서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에 대한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모습을 보여줄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10년 가까이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워크래프트3이 나올 것이라든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새로운 확장판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스타크래프트2는 철저한 보안 속에 3년 동안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스타크래프트2는 그래픽이 기대 이상으로 화려하고 완성도가 높아 유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무엇보다 기존의 스타크래프트가 2차원 그래픽을 채택했던 것과 달리 스타크래프트2는 3차원 그래픽을 채택한 점이 눈에 띈다. 여기에는 픽셀 쉐이더(Pixel Shader 2.0)와 하복 물리엔진(Havok Physical Engine 4.0) 같은 최신 그래픽 기술이 사용됐다.
픽셀 쉐이더는 물체의 이동에 따라 실시간으로 음영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광원의 위치에 따라 물체의 음영을 나타내고 고무 질감, 합판 질감, 딱딱한 금속 질감처럼 물체의 표면을 사실적으로 처리한다. 스타크래프트2에 사용된 버전 2.0은 이전 버전에 비해 이런 음영을 더욱 정밀하게 처리해 입체적인 사물을 한층 실감나게 나타냈다.
하복 물리엔진은 물체가 폭발한 뒤 잔해가 떨어지는 현상이나 충격을 받아서 튕겨나가는 모습, 높이에 따라 떨어졌다가 다시 튀는 모습처럼 물체의 물리적인 작용과 반작용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스타크래프트2는 이들 기술을 사용해 전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웅장하며 세밀한 전투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밖에 스타크래프트2는 3D 환경을 구현하면서도 게임 속도를 즐길 수 있도록 한 화면에 최대 300개 이상의 유닛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2는 전작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제 막 데모 버전과 시범 동영상이 공개됐을 뿐이다. 블리자드의 게임부분 부사장인 롭 팔도에 따르면 스타크래프트2의 개발 진척률은 60%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로서는 스타크래프트2라는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 셈이다.
블리자드가 월드오드워크래프트를 출시할 때도 여러 차례 프로젝트를 뒤엎고 다시 제작한 사례를 보면 스타크래프트2의 완성판이 공식적으로 출시되기까지는 앞으로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대략 2009년쯤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전작인 스타크래프트가 성공한 이유는 ‘우연’적인 요인들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크래프트 게임 자체가 훌륭하기도 했지만 여기에 국내의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우선 당시 PC방 문화가 확산된 점을 들 수 있다. 게임 속도가 빠르고 전략적인스타크래프트는 전국 각지에 생겨난 PC방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여기에 정부는 인터넷 인프라 구축 정책의 일환으로 ADSL을 급속히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스타크래프트 유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또 당시 비디오게임 시장이 자리 잡지 못하고 실패하면서 갈 곳 잃은 게이머들이 PC방으로 모여든 현상도 스타크래프트 열풍을 일으킨 요인이 됐다. 스타크래프트2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런 ‘행운’을 거머쥘지는 지켜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2를 전작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온라인 게임이 아닌 PC용 타이틀로 보급하고 배틀넷을 통한 대전, 3종족(저그, 프로토스, 테란)의 싸움 등 기존 방식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역시 스타크래프트2가 전작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한다. 워크래프트3의 경우에도 전작인 워크래프트2에 3차원 그래픽을 추가하고 종족과 유닛을 보강했지만 많은 유저를 불러내는 데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그동안 다양한 국내 블록버스터급 온라인 게임을 접한 한국 유저들의 눈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후폭풍 얼마나 거셀까?
스타크래프트는 이미 게임이 아닌 스포츠가 돼버렸다. PC방에서 삼삼오오 게임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라는 e스포츠의 팬이 됐다. 실제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게이머보다 스타크래프트를 스포츠의 하나로 즐기고 관람하는 사람이 훨씬 많고, 이들 관중 중 다수가 여성 팬이다. 뿐만 아니라 스타크래프트는 리그와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하나의 산업이 됐다.
지금까지 스타크래프트와 개발사인 블리자드가 한국의 게임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했다. 2004년 워오브워크래프트의 오픈베타 테스트 당시 국내 온라인 게임의 동시 접속자가 10%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2가 또다시 국내 게임산업의 판도를 바꿔 놓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스타크래프트2가 국내 게임업계에 영향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스타크래프트2의 예고편 동영상이 개봉되자 벌써부터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기업들도 있다.
이는 블리자드의 기획력과 자본력, 탄탄한 스토리 라인의 흡인력에서 비롯된 우려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온라인 게임시장은 게임 하나에 좌우될 만큼 작은 규모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 온라인 게임시장은 약 4000억원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 MMORPG(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나 FPS(1인칭 슈팅게임), 캐주얼 게임(간단한 규칙을 지닌 게임), 모바일 및 포터블 게임(휴대전화, PDA에서 배우기 쉽고 조작하기 쉬운 게임)이 나와 게임의 장르도 다양해졌다.
물론 온라인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스타크래프트2의 영향력이 매우 클 것이다. 이를 통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온라인 게임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기폭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스타크래프트2의 후폭풍이 궁금한 한편, 한국 게임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완성작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실제로 완성작이 어떤 형태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스타크래프트2의 공개를 한국의 온라인 게임 산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가늠해보는 좋은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스타크래프트2란?
1998년 등장한 온라인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이다. 미국의 블리자드가 개발했다. 현재 완성작이 출시되지 않았고 예고편 동영상만 공개된 상태다. 3차원 그래픽이 강화되고 입체감과 스케일이 커져 전작에 비해 기술적으로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완성작은 2009년에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