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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할 때나 누드일 때나 조각상은 우파

오른쪽 선호는 태아시절부터 형성돼

키스(1886), 87×51×55㎝ , 프랑스 파리 로댕박물관 소장


“Always I’ve wondered where the noses would go.”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게리 쿠퍼와 영화 사상 길이 남은 키스를 하기 전 한 말입니다. 지난 발렌타인데이에 용기를 내 사랑고백을 한 분들은 과연 무슨 말을 하셨나요. 설마 “전 언제나 코를 어디다 둬야 하는지 궁금했어요”라고는 안했겠지요.

그런데 발렌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13일 발행된 ‘네이처’에서도 키스가 단연 화제였습니다. 과학전문지와 사뭇 동떨어져 보이는 로댕의 조각 ‘키스’ 사진과 함께 게재된 한쪽 짜리 논문이 바로 키스를 할 때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느냐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키스를 할 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사람보다는 오른쪽으로 돌리는 사람이 두배나 많다고 합니다. 또 이 습관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갖고 나와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 한 방향으로만, 그것도 오른쪽으로만 키스를 하게 됐을까요.

독일 보쿰-루르대학의 오누르 귄튀르퀸 교수는 수년 전 미국 시카고에 4시간 동안 머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시카고 공항에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연인들의 키스를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지에 대해 궁금해진 것입니다.

귄튀르퀸 교수는 그 후 2년 반 동안 미국과 독일, 터키의 공공장소에서 입술을 갖다대고 얼굴을 마주본 상태에서 이뤄지는 키스를 면밀히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13-70세 사이의 연인들이 한 1백24번의 키스 가운데 80번(64.5%)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거의 2:1의 비율입니다.

키스 외에도 사람들은 발이나 귀, 눈을 쓸 때도 오른쪽을 2:1로 선호한다고 합니다. 귄튀르퀸 교수는 이를 “태아는 임신 마지막 수주부터 태어난지 6개월까지 주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데 이에 따라 시각방향이 오른쪽으로 치중되면서 다른 지각 및 운동방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도 부화하기 전 알 속에서 고개를 주로 오른쪽으로 돌린다고 합니다. 나중에 자라서도 운동, 시각, 인지에서 오른쪽을 선호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다만 손의 경우 오른손잡이가 8:1로 많았는데, 이 경우엔 아마도 왼쪽이나 왼손을 터부시하는 문화적 영향이 생물학적 원인을 압도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어쨌든 로댕의 조각상에서도 남녀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열정적인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예술이 과학에 앞서 자연의 법칙을 파악한 셈이죠.

조각상을 앞세워 인체의 비대칭성을 연구한 논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76년 2월 5일자 ‘네이처’에는 영국 퀸엘리자베스 병원 신경외과의 맥마누스 박사의 한쪽 짜리 논문이 실렸는데, 논문 제목이 고약하게도 ‘고대 남성 조각상과 실제 남성에게서 보이는 음낭의 비대칭성’이었습니다. 과연 어느 쪽으로 기울었을까요.

1960년 창이라는 과학자는 시신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른쪽 음낭이 왼쪽보다 위에 있고 크기나 부피도 더 크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반면 1764년 빙켈만이라는 고고학자는 ‘고대 미술의 역사’란 책에서 “(조각상의) 은밀한 부분에서도 적절한 아름다움이 있다. 왼쪽 음낭은 항상 큰데, 이는 자연에서도 그렇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맥마누스 박사는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참에 빙켈만의 말이 옳은 것인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죠.

그는 이탈리아의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고대 조각상 및 르네상스기에 이를 복제한 조각상 1백7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고대 조각가들은 대부분 오른쪽 음낭을 왼쪽보다 ‘높게’ 만든 점에서는 해부학 연구와 일치했지만, 왼쪽 음낭을 ‘크게’ 만든 점에서 사실과 달랐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면 이 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빙켈만이 조각상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사람들의 몸을 관찰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맥마누스 박사는 아마도 고대 예술가들은 두 물체 중 아래에 있는 것은 무겁다는 상식 때문에 왼쪽 음낭을 크게 조각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맥마누스 박사의 연구는 지난해 미국 과학기술계의 딴지일보격인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가 ‘다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될’ 기발한 연구나 업적에 주는 Ig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한편 미국 방송에 따르면 일반인들과 달리 정치인들은 키스를 할 때 주로 왼쪽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도 그렇다고 하네요. 정말 별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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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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