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소퍼즐(jigsaw puzzle)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조각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테두리를 만드는 조각만 따로 모아서 맞추거나, 모양과 색깔에 따라 조각의 묶음을 만들어 퍼즐을 맞추면 전체 그림 중 일부를 맞출 수 있다.
퍼즐조각이 제자리를 하나씩 찾아 들어갈 때마다 속도가 붙고 어느덧 그림 전체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지막 조각을 빈자리에 맞추는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처럼 직소퍼즐은 퍼즐조각을 어떤 규칙에 따라 묶음을 만들어 시작하느냐가 해결의 실마리다.
109개 퍼즐 조각을 맞춰라!
109개로 이뤄진 원소세계에도 직소퍼즐이 있다. 원자오비탈의 형태와 최외각전자의 개수를 사용하면(원자오비탈과 최외각전자는 2007년 5월호 참고) 화학적 성질에 따라 원소들의 묶음을 만들 수 있고 이 묶음을 잘 배치하면 원자 세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기율표다.
오비탈 개념이 없었던 시대의 화학자들은 원소세계의 퍼즐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원소의 끓는점이나 원자량 같은 간단한 정보를 퍼즐풀이의 열쇠로 사용했는데, 원자량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퍼즐 조각에 해당하는 원소가 모두 발견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즉 부족한 퍼즐 조각을 가지고 퍼즐을 맞추려는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화학 퍼즐에 처음 도전한 사람은 프랑스의 화학자 안톤 라부아지에다. 그는 18세기말 당시에 알려진 모든 물질을 산을 만드는 물질, 염기를 만드는 물질, 염을 만드는 물질로 분류해 이들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려 했다.
그 뒤 다양한 원자의 질량을 알게 된 화학자들은 원자량에 숨어있는 재미난 규칙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리튬(Li, 원자량 7), 나트륨(Na, 원자량 23), 칼륨(K, 원자량 39)을 보자. 7, 23, 39라는 숫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frac{7+39}{2}$=23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첫번째 숫자와 세번째 숫자를 더해서 2로 나누면 가운데 숫자가 된다. 탄소(C, 원자량 12), 질소(N, 원자량 14), 산소(O, 원자량 16)의 원자량도 같은 관계식을 만족한다($\frac{12+16}{2}$=14 ).
당시 화학자들은 원소의 세계에 수학적인 규칙이 숨어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독일의 화학자인 요한 되베라이너는 1829년 3개의 원소에 대해 원자량의 상대적 관계와 화학적 성질을 연관시켰다. 원자량이 수열관계를 보였던 리튬, 나트륨, 칼륨은 모두 물과 폭발적으로 반응한다.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염소(Cl, 원자량 35.5), 브롬(Br, 원자량80), 요오드(I, 원자량 127)도 원자량의 수열관계가 대략 맞다($\frac{35.5+127}{2}$=81.25 ).
되베라이너는 부족한 정보로‘원소 퍼즐’을 맞추고자 노력한 화학자였다. 그가 찾은‘원소 3개의 묶음’은 퍼즐 전체 그림의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원소 전체 조각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전체 퍼즐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었다. 원소 퍼즐 속에 숨어있는 규칙을 찾으려는 화학자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1862년 당시 알려진 원소 24개를 화학적 성질에 따라 원통에 나선형으로 배치하면 주기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년 뒤인 1864년 영국의 화학자인 존 뉴랜즈는 35개의 원소를 원자량의 크기에 따라 나열하니 8번째 원소마다 비슷한 성질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뉴랜즈는‘도레미파솔라시도’음계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옥타브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비활성기체가 발견되지 않았던 시대라 원소를 7개 족으로 나눴다는 점이 지금과 다르지만(현재 주기율표는 8족으로 나눈다) 원소 퍼즐의 전체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주기율표로 새 원소발견 예측도
원소 퍼즐에서 부분적인 묶음이 아닌 퍼즐 전체 그림을 완성한 사람은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다. 멘델레예프는 이 퍼즐을 풀기 위해 카드를 사용했다. 앞면에는 원소 이름을, 뒷면에는 원자량과 성질을 적은 카드를 책상 위에서 이리저리 배치해가면서 원소 사이의 관계를 찾았다. 이는 실제로 직소퍼즐을 푸는 과정과 비슷하다.
멘델레예프는 자신이 가진 퍼즐 조각이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는 대담한 생각을 했다. 가지고 있는 퍼즐 조각만으로 그림을 짜 맞추려 하지 않고, 퍼즐의 전체 그림을 먼저 상상한 뒤 조각을 배치해 어느 부분에 조각이 모자라는지 알아냈다.
멘델레예프는 되베라이너, 뉴랜즈 같은 화학자들이 발견한 퍼즐 조각 묶음을 원자량과 화학적 성질에 따라 다시 짜 맞춰 몇 군데가 비어있는 원소 퍼즐의 전체 그림을 만들었다. 1869년에 완성한 원소 퍼즐 그림(원소의 주기율표)을 보면 원소의 원자량에 어떤 규칙이 있으며 원소의 성질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멘델레예프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화학자가 또 있었다. 뉴랜즈가 옥타브의 법칙을 발표한 1864년 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오들링은 완벽한 퍼즐 그림은 아니지만 여러 군데 빈칸이 있는 원소 퍼즐을 발표했다.
같은 해 독일의 화학자 율리우스 마이어도 원소의 반응성이 원자부피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발표한 1년 뒤인 1870년에 주기율표를 독자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마이어는 주기율표를 좀더 설득력있게 설명한 멘델레예프의 빛에 가려졌다.
멘델레예프 이름 딴 101번째 원소
멘델레예프는 자신의 주기율표에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의 성질을 예측하는 통찰력을 보였다. 그는 주기율표에서 알루미늄(Al)과 규소(Si) 바로 아래 들어갈 원소가 곧 발견될 것으로 보고 각각‘에카알루미늄’과‘에카규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특히 그는 에카알루미늄의 밀도를 5.9~6.0으로 예상했는데, 1875년 발견된 이 원소의 밀도는 5.96이었다. 현재 에카알루미늄과 에카규소는 각각 갈륨(Ga)과 게르마늄(Ge)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화학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주기율표를 발견한 멘델레예프의 이름은 1955년에 발견된 101번째 원소 멘델레븀(Md, mendelevium)의 이름속에 남아 있다.
원소 퍼즐을 좀더 완벽하게 맞추려는 화학자들의 노력은 멘델레예프 이후에도 계속됐다. 새로운 원소를 계속해서 발견하고 원자를 이루는 구성요소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밝히면서 퍼즐의 그림을 매끈하게 다듬어 갔다. 현재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의 차례는 멘델레예프가 사용했던 원자량 대신 양성자의 수를 따르며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원소의 성질은 최외각 전자의 수로 설명된다.
원소의 주기율표는 완성하는데 100년이 넘게 걸릴 정도로 맞추기 어려운 퍼즐이었다. 어렵게 완성한 화학 퍼즐이 보여주는 그림은 그 어떤 직소퍼즐 그림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