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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지폐에 담긴 물리학

빛의 간섭 이용한 위조방지기술

만원지폐에 담긴 물리학


“날 잡아봐, 그럴 수 있다면!”

21년 경력의 FBI 최고요원 칼과 호텔방에서 맞닥뜨렸지만 정부 비밀요원 행세를 하고는 증거물을 챙긴다는 구실로 위조수표까지 챙겨 달아나는 프랭크. 영화‘캐치 미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은 1960년대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아비그네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정교한 기술로 미국 전역에서 140만달러(약 13억원)를 위조했던 위조지폐범의 전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쫓고 쫓기는 지폐위조범과 방지기술의 승부는 이제 위조방지 기술이 위조지폐범에게‘따라 올 수 있으면 따라 와~’를 외치는 수준이 됐다. 그만큼 위조지폐를 막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월 22일 발행되기 시작한 새 만원권에도 열 가지가 넘는 위조방지기술이 숨어있다. 프랭크도 울고 갈 만원권 지폐에 담긴 위조방지장치의 비밀을 살펴보자.

볼록하게 찍어내고 앞뒤판 맞추고

새 만원권은 감촉부터 일반적인 종이와 다르다. 앞면 세종대왕 초상과‘만원’을 표시한 문자와 숫자는 만져보면 오톨도톨한 촉감을 느낄 수 있다. 특수 조각기법으로 만든 오목하게 들어간 인쇄판에 잉크를 채워 글자나 무늬 등을 볼록하게 인쇄했다. 평평한 판에 잉크를 묻혀 찍는 보통 인쇄기로는 이런 볼록한 촉감을 낼 수 없다.

앞면 왼쪽(또는 뒷면 오른쪽)의 그림이 없는 부분을 빛에 비춰 보면 나타나는 세종대왕 초상은 지폐의 재질과 관련이 있다. 사실 지폐는 종이라기보다는 섬유질로 이뤄진 천에 가까운데 섬유질이 많은 부분은 어둡게, 적은 부분은 밝게 나타난다. 따라서 제지 과정에서 섬유질의 농도를 조절하면 숨은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종이의 특수한 재질을 이용해 위조를 막는 방법 중에는 종이 안에 금속이나 플라스틱 실을 집어넣는 방법도 있다. 이전 만원권에는 바느질 한 것처럼 금속선이 앞 뒤 면을 번갈아 나타나게 만들었지만 새 만원권에는 플라스틱 필름을 종이 속으로 감췄다. 또 지폐를 만드는 종이 전체에는 자외선을 쪼이면 빛을 내는 가느다란 특수 섬유 조각을 지폐에 고루 섞어 넣었다.

고가의 인쇄 장비를 쓰거나 흉내내기 어려운 인쇄기술로 위조를 막는 방법도 있다.‘무지개 인쇄법’이라 부르는 특수 인쇄법이 대표적인 예다. 지폐 한 장에는 여러 가지 색을 쓰는데 색마다 원판을 따로 찍지 않는다. 대신 원판 하나에 여러 가지 색깔의잉크를 묻혀놓고 쓰기 때문에 무지개처럼 색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앞면과 뒷면의 같은 위치에 다른 그림을 넣고 빛에 비춰 보면 두 모양이 합쳐져서 새로운 모양이 나타나게 하는‘앞뒤판맞춤’도 어려운 인쇄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고가의 인쇄장비로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인쇄해야 앞뒤가 정확히 일치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앞면과 뒷면을 따로 인쇄하는 보통 인쇄기로는 앞뒤가 어긋나기 쉽다.

이밖에 일반 복사기는 표현하기 어려운 색깔을 사용하거나 해상도가 낮은 복사기나 스캐너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아주 작은 글씨를 집어넣기도 했다.

만원에 숨겨진 미세문자^새 만원권은 위조를 막기 위해 미세문자를 곳곳에 숨겨 놨 다. 눈으로 겨우 식별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미세문자는 복사나 스캔을 할 경우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색변환잉크의 원리^색변환잉크에는 크롬, 불화마그 네슘, 알루미늄 층으로 이뤄진 얇 은 조각이 들어있어 간섭현상을 일으킨다. 빛이 잉크에 수직에 가 까운 각도로 들어오면(01) 알 루미늄 층과 불화마그네슘 층에 서 반사돼 노란색 파장 영역은 보 강간섭이, 초록색 파장 영역은 상 쇄간섭이 일어나 노란 빛만 반사 돼 나온다(02). 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면(03) 간섭이 일어나는 영 역이 달라져 초록색 빛만 반사된 다(04).



변화무쌍한 ‘몰포’ 나비 날개의 비밀

여러 가지 위조지폐를 막는 장치 중 가장 강력한 방법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색변환잉크’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새 만원권의 뒷면 오른쪽 아랫부분에는‘10000’이라고 찍힌 부분이 있는데 위에서 보면 황금색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초록색으로 보인다. 복사기로는 단지 한 방향에서 나오는 색깔만 복사할 수 있으므로 보는 각도를 다르게 할 때 나타나는 색깔의 변화는 복사할 수 없다.

색변환잉크는 지폐위조를 막는 최신 기술이지만 자연계에서는 훨씬 오래전부터‘복사할 수 없는’오묘한 색이 사용돼 왔다. 대표적인 예가‘몰포’(Morpho)라는 나비의 날개다. 이 나비의 날개는 아랫부분은 갈색이지만 윗부분은 밝은 파란색으로 보인다.

나비의 날개와 색변환잉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두 현상은 모두 빛의 간섭현상 때문에 나타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간섭현상은 2개 이상의 파동이 동시에 한 점에 도달할 때 위상이 같은 파가 겹치면 그 세기는 더욱 강해지고(보강간섭), 위상이 어긋나는 파가 겹치면 그 세기가 약해지는(상쇄간섭) 현상을 말한다.

몰포 나비의 날개에는 파란색을 내는 색소성분이 전혀 없는데도 푸른빛이 난다. 푸른빛의 비밀은 날개의 표면구조에 있다. 몰포 나비의 날개를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나노미터(nm, 1nm=${10}^{-9}$ m) 크기의 기와지붕 같은 단백질 구조가 층층이 쌓여 있다.

나비의 날개에 빛을 쏘여주면 반사된 빛은 층의 두께에 따라 간섭현상을 일으킨다. 파랑과 연두색 파장 사이에 있는 빛은 보강간섭을 일으키는 반면 노란색이나 붉은색 파장의 빛은 상쇄간섭을 일으킨다. 따라서 날개에 반사된 여러 파장의 빛 중 푸른빛만 보이는 것이다.

날개를 옆에서 보면 기울어진 정도에 따라서 빛의 경로가 달라지기 때문에 보강간섭을 일으키는 빛의 파장 영역이 약간씩 달라진다. 따라서 날개가 움직이면 색깔이 묘하게 변하는 환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폐에 사용하는 색변환잉크는 몰포 나비의 날개와 비슷한 원리로 다양한 색을 만든다. 색변환잉크는 잉크 안에 떠있는 여러 층의 얇은 조각이 나비 날개의 간섭현상을 일으키는 단백질 구조 역할을 한다. 이 조각은 크롬(Cr), 불화마그네슘(${MGF}_{2}$), 알루미늄(Al) 층으로 이뤄졌는데 층마다 빛을 반사하는 정도가 다르다.

잉크를 통과해 조각에 도달한 빛은 여러 개의 얇은 층을 지나며 각각의 경계면에서 반사된다. 반사된 빛은 다시 잉크를 통과해 나가는데 이때 간섭현상이 일어난다. 보강간섭과 상쇄간섭이 일어나는 파장 영역은 불화마그네슘의 두께에 따라 결정된다.

새 만원권 지폐에 사용한 색변환잉크는 위에서 똑바로 내려다봤을 때 노란색 파장이 보강간섭을 가장 크게 일으키고, 옆에서 볼 때에는 초록색 파장 영역이 강한 보강간섭을 일으키도록 불화마그네슘의 두께를 정했다. 지폐에 색변환잉크를 사용하는 나라는 얇은 조각의 구조를 달리해 나라마다 다른 색깔을 띠게 한다.

빛의 간섭효과를 이용한 또 다른 위조방지 장치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양과 색깔을 보여주는 홀로그램이 있다. 만원권 앞면에 붙은 은박지 모양의 홀로그램은 보는 방향에 따라 숫자 10000, 우리나라지도, 그리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의 모양이 나타난다.

새 만원권 지폐 뒷장에는 국보 230호 혼천시계의 일부인 혼천의와 조선시대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보현산 천문대 천체망원경 도안이 담겨있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와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만원권 지폐 한 장에는 도안이 보여주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상징적 의미 이상의 첨단 기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만원권 지폐가 갖는 과학기술의 가치는 지폐에 적혀있는‘만원’이라는 교환가치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큰 셈이다.

몰포 나비 날개색깔의 비밀^몰포 나비의 날개에는 파란색을 내는 색소가 없다. 하지 만 층층이 쌓여 있는 날개의 미세한 단백질 구조에서 빛 이 간섭을 일으켜 푸른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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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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