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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금빛 모래톱 되살리려면?

물과 모래 자유롭게 얽혀 흘러야


하회마을을 휘감는 낙동강변에 펼쳐진 금빛 모래톱. 하회마을의 대표 명소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은 옛 한강 모습을 ‘금성평사’(錦城平沙)라는 진경산수화에 고스란히 담았다. 난지도 근처 수면 위를 유유자적 떠가는 쌍돛배와 그 옆으로 드러난 거대한 모래톱은 바닷물이 드나들고 모래톱의 변화가 왕성했던 당시 한강의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모래톱하면 빠지지 않는 곳이 낙동강변 하회마을이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하회마을을 두고 행주형(行舟形, 물 위에서 유유히 나아가는 배의 형국)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이라 일컬었다.

더욱이 근처 병산서원 앞 금빛 모래톱은 드나드는 모래의 양과 질이 같아 쌓이거나 깎이지 않는다. 그래서 병산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이 청빈(淸貧)과 무소유(無所有)를 배우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역사와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던 이런 모래톱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음을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김용택 시인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배경인 경남 하동군 악양평사리의 옛 섬진강변 모래톱이 그리워 “달빛 아래 눈부시던 섬진강 백사장이 서서히 사라지고 물고기들마저 떠나 강물이 죽어간다”며 탄식했다.

물 따라 흐르는 모래의 역사


최근 하회마을 모래톱이 강풀에 뒤덮이며 옛 모습을 잃고 있다.


하회마을 사람들의 상심은 더 애절하다. 유성룡이 옥연서당(玉淵書堂, 낙동강이 이곳에 이르러 옥같이 맑은 못을 이루었다는 뜻)에서 찬탄했다던 하회마을 금빛 모래톱은 이제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강풀이 우거지고 있다. 개울에서 버들치를 잡다가 모래톱에 젖은 옷을 벗어놓고 말렸다는 어른들의 추억담이 이젠 낯설기만 하다. 모래톱에 살아 숨 쉬는 과학을 넣어 그리운 옛 강 풍경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모래톱을 만드는 ‘물 따라 흐르는 모래’는 산이나 지표면에서 깎여 나온 돌과 흙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하류로 내려오며 거치는 장소와 그때 모래의 흐름을 지배하는 힘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돌의 무게 때문에 중력의 지배를 당하면 ‘토석류’(土石流), 물살에 잘 휩쓸리면 ‘유사’(流砂), 바다와 만나 조류나 파랑에 끌려다니면 ‘표사’(漂砂)라 부른다.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가 일어나면 볼 수 있는 토석류는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덩치가 큰 흙과 돌이 작은 토석보다 산 아래로 더 멀리 이동한다. 그래서 하천 유사의 주요 공급원이 된다. 토석류가 강으로 들어와 유사가 되면 모래는 크기에 따라 제각기 살 곳을 찾아간다. 유사의 경우 토석류와는 반대로 굵은 자갈은 강 상류, 모래는 중하류, 펄(미세한 모래 입자)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하구에 둥지를 튼다.

그러면서 유사는 ‘사주’(砂州)라는 다양한 모래톱을 만들며 물길에 변화무쌍한 굴곡을 만든다. 모래톱이 물살이 빠른 여울과 잔잔한 소를 만들며 강 양쪽에 번갈아 나타나면 ‘교호사주’(交互砂州), 나란히 두 열을 이루면 ‘이열사주’(二列砂州), 강 가운데를 비늘모양으로 장식하면 ‘비늘사주’라 한다. 강물이 굽이치고 샛강이 흘러드는 곳에는 움직이지 않는 모래톱 ‘정지사주’(停止砂州)도 있다.

비가 많이 내려 물살이 세지면 강바닥 모래가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한다. 잔 물결모양의 ‘사련’(砂漣)을 이루던 강바닥은 야트막한 모래 둔덕 ‘사퇴’(砂堆)가 된다. 또 어느 순간 납작 엎드려 ‘평탄하상’(平坦河床)이 됐다가 큰 모래언덕인 ‘역사퇴’(逆砂堆)를 쌓기도 한다.


다양한 모래톱의 형태


홍수 다스리고 물고기 품어주고


경북 영주, 예천 지방을 흐르는 내성천. 건강한 모래톱이 펼쳐진 이곳은 다양한 생물종의‘보고’다.


강마다 물 흐름뿐만 아니라 모래의 양과 질도 다르니 모래톱 모양도,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생명도 각양각색이다.

백사장에는 꼬마물떼새가 알을 낳고 철새가 날아들며, 여울은 공기가 물속으로 스며들어 어린 물고기가 좋아한다. 축축하게 물이 배인 배후습지는 민물게의 천국이다.

변화무쌍한 물의 흐름과 구불구불한 하천과 움직이는 모래톱은 하천 생태계가 건강함을 뜻한다. 강을 두고 다양한 생물종의 ‘보고’라고 하는 까닭이다. 경북 영주, 예천 지방을 흐르는 내성천이 바로 그런 하천이기에 사진작가들은 내성천의 모래톱을 가장 좋아하는 하천 풍광으로 꼽는다.

모래톱이 발달한 하천이 건강한 이유는 모래가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특히 강풀이 없는 모래톱은 모래가 물속을 쉽게 흘러 다닐 수 있어 여과 효과가 크다.

또 모래톱은 홍수가 일어나면 강한 물살에 이리저리 몸을 맡겨 사나운 에너지를 다스린다. 모래톱이 곱게 엎드려 있는 하천은 홍수에도 강하다. 게다가 물과 모래가 힘을 겨루는 처절한 ‘결투’가 만드는 다양한 물속 지형덕분에 홍수 때 물고기는 피난처를 얻는다.

하지만 급작스런 환경 변화로 모래톱의 균형이 무너지면 하천의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진다. 마구잡이식 개발과 산불로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가 발생하면 토석류가 자기 자리를 떠나 하천으로 흘러든다. 난데없이 등장한 토석류는 모래톱을 뿔뿔이 흩뜨린다. 또 댐과 둑이 분별없이 들어서 물길을 막고, 공사에 쓸 자갈과 모래를 계속 퍼 가면 모래톱은 강에서 누울 자리를 잃는다.

도시 하천을 보기 좋게 개발한다고 물길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강풀과 나무를 억지로 심는 일도 하천생태계에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하천은 수풀과 나무로 우거지면서 육지화가 빨리 진행돼 오히려 홍수범람의 위험이 커진다.

움직이는 모래톱이나 여울이 사라지고 흐르는 물만 남으면 강바닥은 녹조로 오염되고 악취를 풍긴다. 또 하천 바닥이 콘크리트로 돼 있으면 홍수 때 물고기들이 숨을 장소가 없어 위험하다. 모래톱을 좋아하던 새와 물고기가 떠나는 일은 자명한 이치다.

하회마을의 사라져 가는 모래톱을 애달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필자는 모래톱이 사라지는 까닭을 밝히는 연구를 수행했다. 하회마을 사람들의 주장대로 강풀과 갯버들이 모래톱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 후덕했던 하회마을 모래톱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떻게 하회마을을 되살릴 수 있을까.

낙동강을 통째로 실험실에


하회마을 주변 낙동강 일부를 축소해 실험실에 그대로 만들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모래톱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해 하회마을을 휘감는 낙동강 일대를 통째로 실험실에 옮겼다. 하회마을 주변 낙동강 5.8km 물길을 수평으로 110분의 1, 수직으로 50분의 1로 축소해 만들고, ‘안트라사이트’라는 석탄분을 사용해 모래를 대신했다. 이같은 실험방법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모래톱의 변화를 사실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다.

물의 양과 모래톱 모양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실험한 결과 상류에서 모래를 적게 공급했을 때 모래톱이 사라지고 강풀 같은 식물이 자라기 좋은 토양 환경이 만들어졌다. 수십 차례의 실험과 현장조사 그리고 문헌조사를 바탕으로 하회마을의 모래톱이 줄어들고 대신 강풀로 덮여간 댐이나 둑 건설, 골재채취로 상류의 모래가 아래로 이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모래톱은 건강한 하천생태계의 표지다. 모래톱이 사라져 선조들이 강변 정자에서 느꼈던 자연에 대한 감성과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걱정은 그나마 낭만적이다. 심각한 문제는 하천 생태계가 무너지고 수질도 나빠지며 홍수 피해가 커진다는 사실이다.

강가의 모래톱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일정범위를 넘어서 쌓이면 하천범람의 원인이 되고 과도하게 파헤쳐지면 하천지반이 약해진다. 물과 모래가 얽혀 자유롭게 흘러 다니게 해야 하천에 백사장과 모래 여울이 만들어진다. 하천에 흐르는 물의 양에만 연연한 나머지 모래흐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먼저 물길이 자연스럽게 흘러 모래톱이 되살아나도록 댐에 갇힌 모래를 댐 아래로 내려 보내야 한다. 그리고 자연 하천을 뒤덮은 콘크리트나 환경블록을 걷어내고 하천수질이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모래톱이 있는 하천이라야 물이 맑아지고 새와 물고기도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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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강선욱
  • 이삼희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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