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질서를 찾고 있는 정하웅 교수(왼쪽에서 네 번째)와 연구원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703/S200703N041_IMG_01.jpg)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누군가를 매개로 밀접한 사이임을 알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실제로 싸이월드에서 ‘1촌 파도타기’를 하면 모르는 사람도 평균 여섯 번 안에 인맥으로 엮인다.
지난달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00만명의 회원을 조사한 결과, 임의의 두 회원이 싸이월드에서 6단계 내에서 연결될 확률이 98%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Small World’
전 세계 사람들이 여섯 단계의 지인을 거치면 서로 연결된다는 ‘6단계 분리’는 1998년 미국 수학자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물리학자 던컨 와츠와 함께 사람의 친분관계를 ‘그래프 이론’으로 기술하면서 재확인된 문제다. 주변의 무수한 개인을 점(노드)으로, 두 사람 사이의 친분을 선(링크)으로 표현하면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그래프, 즉 네트워크가 완성된다.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도 다양한 분야의 복잡계 네트워크를 연구한다. 인터넷의 지형도, 바이러스의 유행, 20/80의 법칙, 신경세포의 연결, 제품의 마케팅전략이 정 교수의 연구대상이다. 생물학자나 경제학자도 아닌 물리학자가 이들 문제를 연구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멱함수 분포를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인 남성을 키 순서대로 줄을 세우면 1.7m부근에서 정점이 되고 좌우로 점차 감소하는 표준정규분포 그래프를 따를 것이다. 반면 멱함수 분포는 평균주위에 정점이 없고 크기가 커짐에 따라 계속 감소하는 모양을 갖는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수는 적지만 영향력이 큰 멱함수의 오른쪽 부분이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은 인터넷 웹 페이지도 정규분포를 따르는 무작위 네트워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1999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하나의 웹 페이지에 링크된 다른 웹 페이지의 경로를 추적한 결과, 이런 예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하나의 웹 페이지에서 다른 웹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의 수가 한두 개인 경우는 무수히 많은데 비해 링크된 개수가 수천 개나 되는 페이지는 극히 적지만 존재했다. 누군가 중요한 웹 페이지 1%만 공격해도 전체 월드와이드웹 연결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네이처 표지논문으로 ‘인터넷 대란’ 경고
정 교수는 2000년 ‘네이처’ 표지를 장식한 ‘인터넷의 아킬레스건’이란 논문에서 “인터넷은 대표적인 ‘부익부 빈익빈’형 네트워크며, 가장 많이 링크된 컴퓨터인 ‘허브’(hub)에 치명적인 약점이 생긴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03년 우리나라에 인터넷 ‘대란’이 일어났다.
윈도 2000/NT 서버를 집중 공격하는 웜 바이러스 때문에 국가 인터넷망 대부분이 무력화된 사건이다. 인터넷망이 외국으로 나가는 경로가 소수의 KT서버에 집중돼 다른 나라보다 피해가 컸다.
반면 지난달 6일 세계 인터넷 통신망을 중계하는 ‘루트(root) 서버’가 한국을 경유한 해커들에게 공격받는 대형 해킹사고가 발생했지만 인터넷 통신에 큰 장애는 없었다. 세계 컴퓨터 통신망의 근간이 되는 13개 컴퓨터 중 3개 이상이 해커의 공격을 받았지만 예비 서버가 가동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터넷 지도와 교통체계를 알고 대비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정 교수는“기존의 물리학적 지식과 방법을 이용해 새롭게 등장한 정보통신이나 생명정보학의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연구자의 관심사에 따라 정치판세 분석이나 교통흐름 제어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