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에 봄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면 그 소리에 놀라 동면하던 생명들이 깨어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봄을 기다리는 조급한 마음 탓일까. 벌써 활짝 핀 꽃들의 농염한 향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 자연 가까이 다가가 조금만 유심히 관찰하면 그 안에 숨겨진 오롯한 질서와 조화를 찾을 수 있다.
자연은 대칭을 좋아해
자연이 정갈한 질서를 빚어내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대칭구조다. 이등변삼각형을 생각해보자. 이등변삼각형은 각의 이등분선 또는 변의 수직이등분선에 대해 서로 대칭이다. 도형이 어떤 선을 기준으로 좌우가 똑같을 때, 즉 그 선을 따라 접으면 완전히 겹칠 때 ‘좌우대칭’(반사대칭)이라고 한다.
정삼각형도 좌우대칭을 이룬다. 그런데 정삼각형의 경우 무게중심을 기준으로 120°회전시키면 원래의 도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떤 점을 중심으로 회전시켰을 때 원래의 도형과 같아지면 그 도형은 회전대칭을 이룬다고 말한다. 꽃과 눈송이에서도 정삼각형처럼 좌우대칭과 회전대칭이 동시에 나타난다.
완전한 대칭구조를 보이는 도형은 원이다. 원은 임의의 지름을 기준으로 좌우를 접거나 중심에 대해 임의의 각도로 회전해도 모두 대칭을 이룬다.
자연이 부리는 대칭의 마법도 놀랄 만하다. 거의 모든 생물체는 한개 이상의 대칭을 몸속에 지닌다. 가장 흔한 경우는 좌우대칭이다. 꽃은 꽃잎의 수에 따라 다양한 대칭성을 나타낸다. 모든 꽃잎이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자라고 1개 이상의 축에서 대칭이 나타나는 꽃은 방사상대칭을 이룬다. 또 꽃잎의 모양이 모두 같지는 않고 1개의 축에서만 대칭을 이루는 경우를 좌우대칭을 이룬다고 한다.
피보나치의 마법에 걸린 식물
푸른 들판이나 길가에 핀 꽃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만 말고 꽃잎을 한번 세어보자. 거의 모든 꽃잎이 1장, 2장, 3장, 5장, 8장, 13장, 21장, 34장일 것이다.
흰색 칼라는 1장, 꽃기린은 2장, 백합과 붓꽃은 3장, 접시꽃과 채송화, 패랭이, 동백, 딸기꽃, 협죽도는 5장, 모란이나 코스모스, 기생초는 8장, 금불초와 금잔화, 시네라리아는 13장의 꽃을 갖는다. 과꽃과 치커리, 루드베키아의 꽃잎은 21장, 질경이와 데이지는 34장, 쑥부쟁이는 종류에 따라 55장과 89장이다.
1, 1, 2, 3, 5, 8, 13, 21, 34와 같이 꽃잎의 수나 씨앗이 들어차는 순서를 결정하는 수의 배열을 ‘피보나치수열’이라고 한다.
12세기 말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발견했다. 이 수열은 한 쌍의 토끼가 매달 한 쌍의 토끼를 낳고, 새로 태어난 토끼가 두 달 뒤부터 새끼를 낳기 시작한다면 전체 토끼가 어떻게 불어나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항은 1, 두 번째 항도 1, 세 번째 항은 앞의 두 항을 더한 2, 네 번째 항은 3, 다섯 번째항은 5, 여섯 번째 항은 8, 일곱 번째 항은 13과 같이 계속된다. n번째 항은 바로 직전인 n-1번째 항과 n-2번째 항의 합으로 표시된다.
피보나치수열은 식물의 잎차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잎차례는 줄기에서 잎이 배열되는 방식으로 n분의 t로 표시한다. t번 회전하는 동안 잎이 n개 나오는 비율을 살펴보면 참나무와 벚나무, 사과나무는 5분의 2고, 포플러와 장미, 배나무, 버드나무는 8분의 3, 갯버들과 아몬드는 13분의 5다.
식물의 대부분이 피보나치수열로 이뤄진 잎차례를 따른다. 제한된 공간에 씨앗을 빈틈없이 채워야 하는 식물들도 피보나치수열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해바라기의 씨앗은 꽃머리에서 시작해 시계방향과 시계반대방향으로 엇갈린 나선 모양을 그리며 배열된다.
잘 들여다보면 작은 해바라기는 21개와 34개의 나선을 갖고 큰 해바라기는 55개와 89개, 심지어 89개와 144개의 나선이 나타나기도 한다. 나선의 개수는 모두 피보나치숫자이며 그 비율은 0.618의 황금비를 이룬다. 어떤 해바라기에서는 68개와 110개의 나선 배열도 나타나는데, 이것 역시 34와 55의 배수라는 점에서 황금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비바람 견디고 햇볕을 나누는 방법
솔방울은 시계방향으로 8줄, 시계반대방향으로 13줄의 나선을 갖는다. 데이지 꽃머리에는 서로 다른 나선이 34개와 55개씩 있다. 그렇다면 식물이 피보나치수열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만약 해바라기의 꽃머리에 0.618의 비율이 아닌 0.5의 비율로 시계방향과 시계반대방향의 나선이 있다고 하자. 그럼 0.5회전을 할 때마다 한 개, 즉 한바퀴 돌면 두 개의 씨앗이 나란히 배열된다. 이때 해바라기의 꽃머리는 씨앗으로 꽉 채워지지 않고 빈공간이 많아진다.
회전 비율이 0.48인 경우는 0.48회전마다 한 개의 씨앗, 바꿔 말해서 12회전마다 25개의 씨앗이 들어찬다. 0.48은 0.5보다 약간 작으므로 직선에서 벗어난 팔랑개비와 같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13번째로 회전할 때는 출발점의 씨앗과 같은 직선상에 놓일 것이다. 43회전마다 100개의 씨앗을 배열할 수 있는 0.43의 비율은 0.48보다 효율적이다. 43번째로 회전할 때 비로소 원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앞의 경우보다 씨앗을 더 많이 채울 수 있다. 이는 43이라는 숫자가 소수인 까닭이다. 소수는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갖기 때문에 다른 숫자와 겹칠 확률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모든 씨앗이 조금씩 어긋나게 배열되면 그만큼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피보나치수열로 빈틈없이 배열된 씨앗은 비바람에도 잘 견딜 수 있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하다. 마찬가지로 줄기에서 잎이 돋아날 때도 피보나치수열을 따르면 다른 잎을 가리지 않고 햇볕을 고르게 받을 수 있다. 피보나치수열은 자연이 기나긴 적응의 과정을 거치며 터득한 나름의 생존법칙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