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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선배의 불만
 

바로 엊그제 아주 조용하면서 도도하신 저널리스트 선배 한분이 계시는데, 이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격조했던터라 반갑기는 하였지만 느닷없이 "도대체 우리나라 전기사정이 왜 이 모양이야? 정전예고도 없이 불을 꺼버리면 어떡허라는 거야? 전기 품질이 형편없어"라고 언성을 높이면서 야단을 치신다. 마치 필자를 한전사장으로 오인한 듯.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점잖게 "원고를 또 날리셨군요. 쯧쯧. 좀 자주 디스크에 옮겨 담으시지 않구서…"라고 위로 겸 불찰을 나무라면서 대답했더니 이분이 "그게 그렇게 돼? 그런데 디스크에 옮겨 담을려고 하면 정전이 된단 말이야."
 

워드프로세서로서 한 화면 그득히 원고를 써서 읽고나서 이것을 보관하려고 키를 두둘기려고 하는데 정전이 일어 났을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시 생각해서 쓰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정성들여서 쓴 내용이 사라지는 순간 '아깝고 원통하다'는 말은 이때 쓰는 말이다.

컴퓨터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줄 쓰고 디스크에 옮겨 담고 한줄 쓰고 디스크에 옮겨 담고…" 그렇지만 디스크에 옮겨 담는 조치는 단추 하나를 치면 되지만 글이 머리에서 술술 나올때에는 이 조치 하나가 방해가 되어서 글이 잘 써지질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한면 그득히 채운 다음에 이 조치를 취하게된다. 이러한 도중에 정전이 되면 그야말로 불상사다.
 

그 분도 주위에 있는 여러사람들에게 예고없는 정전에 대하여 불평했을 것이며 분명히 주위사람들은 "그럴수도 있지. 그까짓 것 가지고…"라는 가벼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옛날 그 분하고 한직장에서 근무할때 전산실장이었던 필자가 정전때문에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처럼 방정을 떨던 모습을 되살렸겠지. 그래서 원고날림의 불만을 들어 줄 곳을 찾다가 필자를 골라서 한바탕 야단을 치신거겠지… 그렇게라도 안하면 부글거리는 속을 풀길이 없을테니까…

확실히 전기의 품질은 개선되어야 한다. 이나마 몇년전에 비하면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개선은 반복하고 반복해도 만족은 없을 것이다.

 

나의 불만
 

우리회사에서 필자에게 공급해 준 단말기가 2개 있다. 하나는 바보 단말기이고 하나는 똑똑한 단말기이다. 바보 단말기는 영어로 더미(Dummy)라고 해서 컴퓨터와 연결해서 써야하는 장치이다. 똑똑한 단말기란 개인용 컴퓨터에 문장을 처리하는 기능(워드프로세서)을 갖추고 있어서 주컴퓨터와 연결하지 않고서도 원고쓰기 정도는 할 수 있으며 또한 주컴퓨터와 연결해서 쓴 원고를 보내고도 받기도 하도록 만든 단말기이다.
 

지금 국내에서 보급되고 있는 여러가지 우리말 워드프로세서가 있다. 대체로 언젠가는 똑똑한 단말기의 역할까지 해내야 할터인데 현재로서는 기껏 원고작성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이런한 똑똑한 기계로서 주컴퓨터에 연결하지 않고 원고만을 쓸 때에 염려스러운 것은 정전이다. 물론 지나가던 사람이 전원케이블을 발로 걷어차서 화면의 원고를 날려 보내는 경우도 처음에는 있었으나 이러한 것은 하나의 조그마한 사고이다. 그런데 바보단말기로써 주컴퓨터를 연결해서 원고를 쓸 때에는 염려스러운 것이 이 정도가 아니다. 당장 단말기의 전원이 정전되는 것 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컴퓨터쪽의 전기사정이 시원치 않아서 안되는 경우, 전기사정이 아니더라도 무슨 문제점이 그리 많은지 짜증스러운게 한둘이 아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트러블은 또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수단에도 문제가 있다.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
 

필자는 전화로써 컴퓨터에 물린 전화번호를 돌려서 이것을 모뎀이라는 장치를 거쳐서 바보단말기로 연결하도록 꾸며 놓았다. 이쯤해두니까 안 될 때에는 정전정도가 아니라 컴퓨터, 전화줄, 모뎀, 단말기 어느 하나라도 안되면 못쓴다. 초창기 얼마동안에는 이틀이 멀다하고 이것 중 어느 하나가 반드시 말썽을 일으켰다. 이러한 말썽의 빈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진다. 사실 필자는 이러한 빈도의 감소가 큰 낙 중의 하나이다. 글쎄 요즘은 쓰고 싶을때 못쓰는 경우는 열번에 한번쯤일까? 그래서 오히려 즐겁다.
 

시스템의 신뢰성,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써보는 사람들이 먼저 알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신뢰성 안정성의 향상제고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이용자가 참을성을 가지고 지켜봐 주어야 한다.

 

컴퓨터로 원고를 쓰려면
 

필자가 이 원고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쓰는 운동을 편지 벌써 3년이나 된다. 이러한 것을 어느 석상에서도 꾸준히 강조하여 왔다. 어떤 사람은 "당신 같은 선택된 사람이나 쓰는것 아니요?"라고 나무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래도 한발 엎서서 "무슨 기계를 사면 배우기 쉽습니까?"라고 물어봐서 필자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첫번째 질문에는 화가 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없는데 왜 선택되었다고 말하느냐고 항의조로 대답하였다.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대답을 하지못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이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거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나라 제품을 존중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을 사시요. 그리고 국가에서 만드는 공중데이타통신망을 경유해서 데이타 통신이 될 수 있는 것을 사시요. 아마도 이 두가지 요건에서 아직 개발중에 있는 것이 많을 것이요. 그러나 이 두가지 요건을 갖추려면 앞으로 시간도 걸리고 다소의 경비도 더 들것이요. 그러나 메이커가 이것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이미 구입한 기계에 대해서도 이러한 조치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사십시요"라고.
 

그런데 이 두가지 조치가 다 이루어진 다음에 대량생산이 되고 또 값이 싸지면 사겠다는 사람도 나온다. 원고를 쓰는 사람은 이것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글자를 손에 익혀 두어야 한다. 글자판을 손에 익혀둔다는 것은 2000년대를 사는 사람들의 필수적인 수단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손이 더 굳기 전에 건반을 두들기는 연습정도는 해두어야 할것이다.
 

우리의 생활습관은 먼저 자기가 연필로 초안을 잡고 이것을 타자수에게 맡겨사 깨끗하게 정타를 하고 만약에 수정할 일이 생기면 또 거의 처음부터 다시 하다시피 해서 허비하는 노력과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두가 국력의 낭비이다. 원고지에 빈칸을 채우는 사람은 그것이 활자화될 때까지의 노력이 얼마나 힘든지를 미처 알지도 못하고 휘갈겨 써서 무슨 글자인지 식별하지를 못해 식자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이것을 일관되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워드 프로세서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내 돈으로는 아직 못사요. 회사에서 사주면 몰라도"이다.

 

워드프로세서는 커다란 잡기장
 

필자는 컴퓨터 속에 4천매의 명함을 쳐넣었다. 그래도 연락이라도 할 일이 생기면 비교적 편리하게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일정표를 넣었다. 매일 아침에 그날의 날짜를 치기만 하면 그날의 일정이 나온다. 그래서 옛날 같으면 시간을 잊어버리고 실수한 일이 한두번이 아닌데 비교적 실수를 하지 않게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또한 여기에 그날의 일지를 써넣는다. 우리 사장님이 만약에 그동안 도대체 무얼했느냐고 물으면 무엇무엇을 했다고 주루룩 찍혀서 나오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생각나는대로 몇자씩 적어 둔다. 그리고 이것을 자동편집하면 이것이 하나의 으젓한 원고가 된다.

얼마전의 일이다. 우리 직원 한사람이 '위원님의 이력서와 연구업적목록'을 제출하여 달라는 독촉이다. 이력서는 이미 옛날 것을 복사해와서 추가사항만 적으면 되지만 지금까지 쓴 보고서, 논문, 잡지기사를 모두 정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연도별로 중요한 것만 골라서 쓰려고 하는데 한편씩 모두 달란다.
 

"기다려 봐요 "라고 해놓고 단말기를 켜서 해당 파일을 불러서 프린트를 지시했다. 5분정도 걸렸을까? 그동안의 것이 모두 깨끗하게 프린트되어 나온다. 그걸 건네 주었다. "이것 때문에 마감날짜를 못 지킬줄 알았는데…란다. "자네들도 이렇게 정리해 두어"라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회사내에서도 이러한 정보의 격차가 있음을 실감하였다.
 

"그걸 언제 다 쳐넣었읍니까?"라고 항의한다. "한 페이지만 쳐넣어봐. 남이 쓴 걸 베끼지 말고 자기 스스로의 일기를 쓴다는 마음으로"라고 필자의 경우는 하루에 2시간 정도씩 3달을 치니까 생산성이 6배로 올랐다. 즉 옛날 같으면 원고 30매를 쓰는데 1주일은 족히 걸렸는데 이걸로 치니까 빠르면 반나절, 늦어도 하루를 잡으면 충분하다. 서두에 설명드린 선생님의 이야기도 역시 2달만에 3배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컴퓨터 작가들과 대화를
 

정보는 보존해 두어야 언젠가는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오늘날의 듣고 보고 말하는 정보생활의 습관에서 기록 보존하려는 노력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기록하려도 하기는 해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할뿐아니라 모두가 기록하려고도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 또한 출판인쇄를 끝내면 할 일이 다 끝난것처럼 생각하는 버릇부터 없애야 할터인데 그렇지가 못하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이 생활화가 되지 못한 이유의 하나도 손으로 쓴다는 것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카터'대통령도 워드프로세서로 자서전을 쓰고 일본에서는 웬만한 소설가도 이걸로 쓰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걸 익숙하게 쓰는 사람이 워드프로세서에 의한 속기법도 개발해서 응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설하는 내용을 거의 동시에 화면에 비추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금 이 원고를 워드프로세서로 쳐넣고 있다. 다 치면 프린트기를 통해서 주루룩 찍어내면 된다. 이것을 갖다주면 원고료 얼마를 주겠지. 그러면 이 돈을 모두 써도 좋으니까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이용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한다. 컴퓨터로 원고를 씁시다. 이미 쓰고 있는 분은 대화 좀 합시다.

198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유경희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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