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다. 이런 걸 두고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할까. 달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당신, 차라리 가까운 미술관에서 기분전환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16~19세기 회화 작품 70여점을 모아 기획전을 열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멀지만 서울 용산은 가깝다. 명화를 감상하며 화폭에 담긴 수학적 코드를 찾아보자.
원근법은 화폭의 혁명
금빛 액자로 장식된 그림이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다. 그 안에는 날개를 단 에로스와 프시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이 보인다. 화폭은 2차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자연과 생물은 3차원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화가는 현실처럼 생생한 실재감을 화폭에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수학적 기법을 사용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원근법이다.
원근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험한 예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자신의 책 ‘회화론’에서 “당신이 수학자가 아니라면 내 책을 읽지 마시오”라며 첫 구절을 시작했다. 어찌 보면 황당한 주문일 수도 있지만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회화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2차원 화폭에서 3차원의 ‘환영’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빈치는 ‘원근법은 점, 선, 면, 입체, 각도로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수학에서 점은 좌표상의 위치만 차지하며 길이와 면적, 부피는 갖지 않는다. 그러나 원근법으로 표현되는 화폭에서 점은 눈의 착시현상이 빚어내는 실재하는 점이며 이를 소실점이라고 한다. 선도 마찬가지다. 수학적으로는 점의 연장이며 길이만 있고 면적과 부피는 없다. 그러나 그림에서 선은 색의 경계를 나눌 뿐만 아니라 모든 물체의 윤곽을 결정한다.
원근법은 바둑판 모양의 촘촘한 그물을 현실공간에 덮어씌운다. 눈높이를 기준으로 모든 사물이 소실점을 향해 일관된 시각적 깊이를 연출한다. 모든 사물은 위치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고 비례와 균형으로 형태가 결정된다.
비너스에게 끌리는 건 황금비 때문?
비너스의 매끄러운 살결과 고운 머릿결은 사실 끔찍한 불화 속에서 탄생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원치 않는 자식을 많이 낳게 한 남편에게 불만을 품고 막내아들인 크로노스와 모의를 했다. 가이아는 크로노스에게 큰 낫으로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바다로 던지도록 했다. 그리고 바다로 떨어진 성기가 만든 거품 속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태어났다.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테오도르 샤세리오는 바람에 실려 지중해의 한 섬에 도착한 비너스의 모습을 상상했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비너스는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체중이 오른쪽 다리에 실리며 자연스럽게 몸의 관능적인 곡선도 살아난다. 바닥에는 비너스가 타고 온 커다란 조개껍데기가 놓여있고 고둥과 소라도 보인다.
‘물에서 태어나는 비너스’는 1839년 당시 스무 살이던 프랑스의 화가 샤세리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비너스의 탄생’은 이미 보티첼리, 티치아노, 앵그르 같은 유명한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주제였지만 샤세리오의 작품은 비너스의 여성적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눈부신 균형과 비례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황금비가 숨어있다. 비너스의 배꼽을 기준으로 상체와 하체, 목을 기준으로 머리와 상체, 배꼽에서 무릎까지의 길이와 그 아래 종아리의 길이는 정확하게 1 : 1.618의 비율을 이룬다. 황금비는 피라미드나 파르테논신전부터 신용카드나 담배갑의 형태에까지 널리 쓰이는 이상적인 비율이다.
황금비가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곳은 자연이다. 조개껍데기나 고둥은 황금비를 따르는 등각나선 모양으로 성장한다. 어쩌면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싫증나지 않는 아름다움은 그 속에 숨겨진 황금비 때문일지도 모른다.
삼각형이 만드는 불안과 공포
1816년 여름, 메두사호의 난파 소식이 프랑스에 날아들었다. 메두사호는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파견된 프랑스의 군함으로 항해 당시 군인들과 선원 그리고 세네갈에 정착할 이주민이 타고 있었다. 보기만 하면 돌처럼 굳어버린다는 메두사의 저주 때문일까. 프랑스의 낭만파 화가였던 제리코가 화폭으로 옮긴 당시의 상황은 온몸이 굳어버릴 듯한 불안과 공포 그 자체다.
당시 메두사호는 20년이 넘도록 키 한 번 잡지 않았던 퇴역 해군 장군의 지휘 아래 있었으며 항해 도중 아프리카 해안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메두사호에 배치된 구조용 보트를 타고 선장과 장교들은 탈출했지만 보트에 오르지 못한 150여명의 사람들은 뗏목에 몸을 싣고 바다를 떠돌며 끔찍한 나날을 보내다 결국 15명만 구조됐다. 제리코는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
기나긴 생존의 여정에서 제리코가 선택한 순간은 마지막 남은 안간힘으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림 아랫부분에는 목마름과 배고픔에 지쳐 쓰러진 사람들이 있고, 윗부분에는 먼 곳을 바라보며 손짓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뗏목과 돛대가 이루는 기울어진 삼각형 구도는 시각적 불안을 유도한다.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길게 뻗은 팔과 바람에 흩날리는 헝겊조각도 위태로운 사선 하나를 그림에 보탠다.
생의 의지로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아래쪽의 한 남자는 죽은 자를 끌어안고 고뇌한다.
일반적으로 삼각형 구도는 상승감과 안정감을 주지만 제리코의 그림에서는 갈등과 불안, 공포를 잘 드러낸다. 삼각형 구도 속에 수많은 사선을 배치해 안정감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같은 삼각형 구도라도 기울어지면 무게중심의 위치가 높아져 불안해 보인다.
시선은 희망을 향해 뻗은 남자의 손끝에 다다랐다가도 어둡고 무겁게 버티고 서있는 돛대에 이르면 산산이 분산된다. 먹구름은 검은 악령처럼 온통 하늘을 뒤덮고 파도는 뗏목을 금세 삼켜버릴 듯 거칠다.
주어진 사명을 착실히 따르기만 했던 봉건시대의 예술가와 달리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가들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자연에 다가갔다. 원근법이 등장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에 주관성이 더해졌다. 예술가는 실험하는 과학자였다. 오늘날 우리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분야에 박학다식했던 그들을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른다.
원근법이 르네상스시대가 추구하던 사실주의 정신의 결정체라면 화면의 분할과 구도, 인체의 비례가 만들어내는 황금비는 수학의 영역에 속한다. 루브르박물관전의 그림을 보며 예술적 감수성으로 덧칠해져 있는 캔버스 아래 어떤 수학적 코드가 숨어있는지 찾아보는 일도 재미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