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제주도 비바리 강소리 양.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된 강 양은 설레는 마음으로 김포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대학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지하철이 방향을 틀자 몸이 한쪽으로 쏠리더니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끼기기긱~’ 이 소린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녀의 스트레스였던 성적표보다 더 끔찍했던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돋아오는 소름에 강 양의 두 손은 어느덧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해결하는 김 탐정은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요즘 많이 한가해져 6시 45분이던 기상시간을 7시 45분으로 늦춘 터였다. 시간 관리에 철저한 김 탐정이 9분간 뒤척이다 6분간 세수하면 정확히 8시가 된다. 그런데 김 탐정이 깬 시간은 7시 30분. 김 탐정은 흠칫 놀랐지만 시끄러운 소리가 휴대전화 벨소리임을 깨닫고 약간 안도했다. 휴대전화를 받자 울려퍼지는 목소리.
“저 소린데요. 지하철 소음 좀 잡아주세요!”
지하철에 달린 8개의 스피커
‘지하철이 커브를 돌 때 들리는 날카로운 소음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라. 강소리 양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는 오후 4시 30분 전까지 문제 해결♡’
어릴 때부터 김 탐정이 무던히도 쫓아다녔던 강소리 양이 지금 김 탐정을 찾고 있다. PDA에 강 양의 의뢰를 저장한 현재 시각 오전 8시 30분. 아침식사를 대충 마친 김 탐정은 탐정 인포넷에 접속했다. 전에 ‘소음은 떨어지는 폭탄도 잡는다’ 프로젝트를 하며 눈여겨본 단체가 있었다. 소음진동공학회. 김 탐정은 지하철 소음을 연구한 과학자를 찾다가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의 김관주 교수를 발견했다. 그는 철도차량 소음 전문가였다. 김 탐정은 김 교수의 사진과 실험실 정보를 PDA에 입력하고 집을 나섰다.
김 탐정이 홍익대 공대 건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전기숫돌로 칼을 가는듯한 ‘키깅~’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찾아낸 음향진동실험실의 문을 열자 날카로운 소리가 김 탐정의 귀를 파고 들었다.
실험실에 있던 김 교수는 갑자기 들어온 김 탐정을 보고 놀란 눈을 하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실험이 끝나고 실험실이 조용해지자 김 탐정이 물었다.
“이건 뭐하는 장치인가요?”
“지하철이 곡선구간을 달릴 때 차바퀴가 레일을 미끄러지며 내는 소리를 재현하는 장치죠. 커다란 차바퀴로 실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작은 모형으로 실험하는 겁니다.”
곡선구간에서 나는 소음이라는 말에 김 탐정은 쾌재를 불렀다. 강 양도 지하철이 커브를 돌 때 소음이 들린다고 했다. 김 탐정은 김 교수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지하철 소음이요? 지하철 소음은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그럼 사람 귀에 가장 거슬리게 들리는 스킬 소음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스킬 소음은 차바퀴가 레일에 미끄러지면서 나는 마찰 소음입니다.”
김 교수는 급하게 휘어진 레일과 그 위를 지나는 바퀴를 그렸다.
“이렇게 휘어진 레일 위로 지하철이 달리면 바깥쪽 레일의 바퀴는 빠르게, 안쪽의 바퀴는 천천히 돌아야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바퀴는 하나의 축에 고정돼있기 때문에 바깥쪽 바퀴와 안쪽 바퀴가 모두 미끄러지고 이때 스킬 소음이 발생합니다. ”
바퀴와 레일의 마찰로 생긴 진동은 바퀴의 재질과 모양 때문에 높은 진동수의 큰 소음으로 바뀐다. 마찰로 생기는 소음의 크기는 물체 표면의 모양과 재질에 따라 좌우되는데, 재질의 표면이 평평하고 매끄럽고 넓을수록 소리는 더욱 커진다. 금속으로 이뤄진 지하철 바퀴와 레일의 마찰 소음이 크게 들리는 이유는 당연한 셈이다.
“곡선구간에서 지하철이 특히 시끄러운 이유는 스킬 소음 때문입니다. 전동차 1량에 달린 8개의 바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8개의 스피커라고 보면 돼요. 스킬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갈을 깔아 소리의 울림을 줄이거나 스킬 소음의 원인이 되는 마찰력을 줄여야 합니다.”
자갈이 깔린 구간은 콘크리트만 있는 구간보다 소음이 작다. 자갈이 소리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리는 평평한 콘크리트에 부딪히면 그대로 반사된다. 하지만 자갈이 깔려있으면 상황이 다르다. 스킬 소음이 자갈에 부딪히면 자갈을 진동시키며 흡수된다. 다양한 형태의 자갈에 반사된 소리들이 서로 만나 상쇄되는 효과도 있다.
스킬 소음은 마찰력이 원인이기 때문에 마찰력이 클수록 소리의 세기도 커진다. 지하철의 시설을 관리하는 서울메트로나 서울도시철도공사는 곡선구간의 레일에 윤활유를 뿌려 스킬 소음을 줄인다.
“마찰력은 질량에 비례하니까 사람이 적은 지하철을 타도 소음이 줄어들까요?”
“사람이 많은 지하철보다 소음의 크기는 줄어들겠죠.”
현재 시각 16시 10분. 김 탐정은 곡선구간에서 나는 지하철 소음의 원인을 밝히고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알아냈다. 김 탐정은 강 양에게 승객이 타고 있는 지하철 레일에 일일이 윤활유를 뿌릴 수는 없으니 사람이 적은 지하철을 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 탐정은 혹시나 하는 맘으로 답장을 기다렸지만 그녀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소음 작은 전동차 구별법
“삐리리리~, 삐리리리~”
허탈한 마음에 밤새 베개를 끌어안고 자던 김 탐정은 오늘도 7시 45분, 자명종 소리에 잠이 깼다. 강 양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9분간 뒤척이다 세수하고 평소처럼 e메일을 확인했다.
“어제는 고마웠어요. 답문을 보내려고 했는데,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닳았지 뭐에요. 그런데 어제 이모 댁에 갈 때 탄 지하철은 무척 조용하던데 지하철마다 소음이 다른가 봐요. 오늘 제주도로 내려가기 전에 저녁이나 같이 먹으며 왜 그런지 얘기해줘요. 6시에 봐요.”
야호! 김 탐정은 환호를 지르며 탐정인포넷에 접속했다. 검색을 하자마자 김 탐정 눈에 ‘저소음 전동차’라는 키워드가 들어왔다.
‘저소음 전동차 개발 프로젝트. 지하철 소음을 줄이는 로템 기술연구소….’
오늘은 왠지 일이 술술 풀릴 것 같다. 연구소는 경기도 의왕에 있었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제주도도 가뿐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서두르면 일을 마치고 6시 전에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 로템 기술연구소로 출발!
“저소음 전동차요?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로템 기술연구소 응용기술연구팀의 우관제 박사는 김 탐정을 반갑게 맞았다.
“저소음 전동차는 객실 내부로 전달되는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기술로 만듭니다.”
외부 소음은 바퀴가 레일 위를 구르며 발생하는 구름(rolling) 소음, 지하철을 움직이는 견인 전동기와 기어의 소음 등이 있다. 그런데 모든 전동차에 이런 소음원이 다 있지는 않다. 일부 전동차에는 견인 전동기와 기어가 없는 경우가 있다.
지하철은 대개 10량의 차량이 연결돼 있는데, 견인 전동기의 유무에 따라 M-카와 T-카로 나뉜다. 견인 전동기가 있는 차량을 M-카(Motorized car), 견인 전동기가 없는 차량을 T-카(Trailer car)라고 한다. T-카는 차량의 아래에 있는 견인 전동기의 소음이 발생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소음이 작다.
“M-카의 소음도 자세히 들어보면 달라요. 지하철이 출발할 때는 전동기의 회전 속도를 제어하는 장치의 ‘위잉’하는 전자기음이 들립니다. 전자기음은 시속 30~40km까지 강하게 들리지만 그보다 속도가 빨라지면 전동기의 냉각팬이 돌아가는 소음과 바퀴와 레일에서 발생하는 구름 소음이 더 크게 들려요.”
오는 3월에 개통해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운행하는 공항 철도의 저소음 전동차는 바닥으로 전달되는 진동을 줄이기 위해 ‘뜬바닥 구조’를 사용했다. 뜬바닥 구조는 승객이 밟는 바닥판과 객실 아랫면의 접촉을 막는 이중 구조다. 객실 아랫면 위에 탄성체를 넣어 바닥판을 객실 아랫면과 띄우게 된다. 진동으로 인한 내부 소음은 바닥판에서 가장 많이 나기 때문에 뜬바닥 구조는 내부 소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신형 지하철은 대부분 저소음 전동차입니다. 신형 지하철 중에서도 판토그래프(집전장치)가 달리지 않은 T-카는 다른 차량에 비해 소음이 작죠. 지하철 소음을 피하고 싶은 분은 신형 지하철의 T-카를 타라고 권하고 싶군요.”
김 탐정이 로템의 기술연구소를 나온 시각은 4시 38분. 지금 서울로 올라가면 강 양을 만나기로 한 6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듯 했다. 김 탐정은 저소음 전동차의 원리와 조금 더 조용한 T-카를 구분하는 방법을 정리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다 저녁을 먹으며 아는 척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정도면 소리도 내 능력에 감탄하겠지?”
5시 46분, 김탐정은 서울 신도림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하하! 소리! 나야! 김 탐정.”
“아~ 네. 그런데 어쩌죠?”
“응? 왜?”
“주말이라 비행기 표가 지금 밖에 없어서요. 방금 제주행 비행기에 탔어요. 이륙해야 한다고 휴대전화를 끄라고 방송하네요. 저녁 식사는 다음으로 미뤄요. 오빠! 안녕!”
소리한테 얼마만에 들어보는 ‘오빠’란 말인가! 김탐정은 ‘오빠! 오빠! 오빠!’ 말만 속으로 되뇌었다.
쓸쓸히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김 탐정. 운 좋게 신형 전동차가 도착했고 김 탐정은 집전장치가 달리지 않은 T-카를 골라 탔다. 곡선 구간에서만 스킬 소음이 간간히 들리는 조용한 지하철. 그래서일까? 맞은편에 앉은 연인의 속삭임은 너무도 또렷하게 시린 가슴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