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에는 인턴십 등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특히 다른 국가의 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학기를 이수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영미권, 유럽권 대학뿐만 아니라 한국의 서울대, 중국의 베이징대 등 동양권 대학을 경험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국비유학생들은 교환학생을 가면 그 기간에는 장학금이 나오지 않는 등 제약이 있어 선뜻 신청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어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친구들끼리 모여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데 흥미를 느껴 학교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 연구를 진행했다. 3학년 때 친구들과 시작한 ‘시링크스(Syrinx)’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일본 플랫폼 기업인 DMM으로부터도 지원을 받아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DMM.make 아키바(AKIBA)’라는 공방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DMM.make 아키바는 3D 프린터와 페인트 부스를 비롯해 작업에 필요한 각종 설비를 구비하고 있고, 또 전문 프로젝트 매니저도 상주하고 있어 상담이나 창업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공방이다.
내가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 전혀 다른 두 부류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서서 나를 맞이했다. 한쪽에는 양복 차림의 일반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이들은 공방에서 창업 상담을 맡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자유로운 복장을 한, 소위 ‘오타쿠(좋아하는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타쿠들은 아두이노, 전자회로 등의 전자부품을 이용해 전기공작을 하고 있거나, 3D 프린터를 이용해 피규어를 뽑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가 떠올랐다.
슈타인즈 게이트는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여기서 ‘미래 가제트 연구소’라는 아키하바라를 거점으로 하는 연구기관이 나오는데(물론 가상의 장소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괴상한(?) 물건을 개발한다. DMM.make 아키바는 이런 미래 가제트 연구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DMM.make 아키바는 하루 24시간 내내 공방을 열었다. 전자상가가 즐비한 아키하바라에 공방이 위치한 덕분에 우리는 공방에 박혀 작업하다가 필요한 부품이 떨어지면 바로 주변 전자상가에서 구해 다시 작업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본도 외출 자제, 등교 제한 등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중이라 프로젝트가 잠시 중단된 상태다.
그래서 나는 도쿄대 전자과 연구실에서 작업할 수 있는 인턴십을 시작했다. 도쿄대 연구실 인턴십은 재학생들이 연구가 하고 싶다며 찾아가면 대부분 쉽게 받아준다.
내가 찾아간 연구실은 카와하라 요시히로(川原圭博) 교수의 연구실이다. 새로운 전자 장비를 개발하는 연구실로, 주로 사물인터넷(loT) 관련 연구를 진행한다. 나는 난청이 있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안경형 장치 ‘asEars’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3학년 때 전공 수업을 들으며 전자회로 이론, 전자파 공학 등의 기초적인 내용은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임베디드 시스템(특정 목적을 수행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기판 위에 부품을 실장(납땜하거나 조립해 부착)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어 연구실 선배들에게 처음부터 배워야만 했다.
연습용으로 처음 내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기판은 오디오 앰프였다. 이 기판은 부품을 부착하기가 특히 어려웠는데, 부품 대부분이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3mm, 6mm로 매우 작았기 때문이다. 납땜해야 하는 핀의 길이도 0.4mm 정도밖에 되지 않아 현미경으로 보면서 작업해야 했다. 당시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이때 만든 앰프는 아직도 내 자랑거리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제한되며 무력감에 빠져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교수님, 친구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연구에 매진해 성과를 내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나도 가만있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한 후 한 일이 지금의 인턴십이다. 인턴십을 하면서 전자공학도로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막막하기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내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