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를 알리는 음성이 들리자 몸이 당장이라도 바닥으로 꺼져 버릴듯천근만근 무거워진다. 헬스클럽에서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리는 느낌과 비슷하지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몸무게의 5배나 되는 힘을 느끼고 있다. 피가 다리 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연신“윽! 윽!”소리를 내며 힘겹게 숨을 쉰다. 곧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하며 자세가 흐트러진다.
그러자 시야가 바깥부터 흐려지더니 양쪽의 녹색불이 흐릿하게 보인다.‘아, 그레이아웃(grayout)이 시작되는구나.’다리와 복부의 힘이 풀리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윽!”소리와 함께 다시 복부에 힘을 주자 커튼이 걷히듯 시야가 다시 선명해진다.
“30초!”하는 소리가 들리고 스틱을 앞으로 밀자 몸이 앞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면서 속도가 느려진다.“우주에 가기 위해 내가 준비해야 했던 것 중 가장 얻기 쉬웠던 것은 돈이었다”고 말한 최초의 우주여행객 데니스 티토의 말이 이해가 된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에 지원한 3만6206명 가운데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기자가 중력가속도 내성훈련을 받는 모습이다. 기자를 포함한 30명의 후보자들은 충북 청원 공군항공우주의료원에서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17일까지 3개조로 나뉘어 정밀신체검사와 우주적성검사를 받았다.
롤러코스터는 장난이야
중력가속도 내성훈련은 우주적성검사의 하이라이트. 평소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를 탈 때도 중력가속도를 느낄 수 있지만 내성훈련과는 차원이 다르다. 롤러코스터에선 최대 2~3G의 힘을 느끼는 정도지만, 우주인 후보들은 5G를 30초간 버텨야 한다.
다리 쪽으로 피가 쏠리는 것을 막지 못하면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중력가속도에 의한 의식상실’(GLOC) 상태에 빠진다.
기자와 함께 훈련을 받았던 10명의 후보자 중 의식을 상실한 사람은 2명. 한 후보자는“몸에 힘을 주는 타이밍을 놓치자 시야가 좁아지며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훈련을 무사히 마친 우주인후보 부천경찰서 장준성 경위는 다리와 팔뚝에 실핏줄이 터져 군데군데 붉은 반점이 생겼다.
또 다른 우주적성검사 항목인 저압실 훈련. 여기서는 고공의 기압 변화를 체험한다. 먼저 기압은 지상의 6분의 1로 고도 13km 수준이다. 몸속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가스가 팽창하면‘체강통’을 일으킨다. 대장이나 위, 얼굴 뼈, 심지어는 썩은 이빨의 공간에 있던 기체까지 팽창해 통증을 만든다.
고공에선 썩은 이빨 위험
특히 압력이 높아질 때 고막 안쪽 중이(中耳)에 있는 공기와 외부공기의 압력을 같게 유지하지 못하면 고막이 손상될 수 있다. 저압실 훈련교관 조정훈준위는“이런 증상을 막기 위해 양손으로 코를 막은 상태에서 바람을 내뱉어 입속 공기를 강제로 유스타키오관을 통해 중이로 보내는‘발살바’(Valsalva)호흡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후보자들은 고도 7.5km의 기압 수준에서 산소마스크를 벗고 저산소증에 대한 적응력을 평가받는다. 체내 산소가 부족해지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비행기나 우주선 내부는 항상 2.4km 고도 수준의 기압을 유지하지만, 비상상황을 대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판단력을 검사하는 방법은 바로 구구단 거꾸로 쓰기. 초등학생들도 줄줄 외는 구구단이라지만 저압실에서는 학력에 상관없이 실수를 연발한다. 우주인후보인 한 대학교수는“8곱하기 8을 63이라고 썼지만, 쓰는 도중에도 틀린 줄 몰랐다”고 말했다.
우주적성검사와 함께 진행된 정밀신체검사. 결핵반응, 24시간 심전도, 심장초음파, 흉부 복부 CT촬영, 지능검사까지 30개가 이어진다. 진료부장 임정구 소령은“러시아연방우주국의 공개 자료와 이미 우주인을 선발한 국가의 검진과목을 참고해 검사항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 복부초음파 검사를 받기 위해 후보자들은 4~5끼를 굶어야 했지만, 우주인이 되기 위한 열정은 배고픔도 잊게 했다.
후보자들을 가장 긴장시켰던 검사는 단연 기립검사대 검사였다.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물을 투여하면 심장박동이 급격히 빨라지며 혈압도 높아진다. 약물을 계속 투여하면 부교감신경이 반응해 반대로 혈압이 떨어지는데, 자율신경계가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저혈압으로 의식을 잃을 수 있다.
검사를 담당한 손현주 대위는“무중력 우주공간에서 피가 머리로 몰렸다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혈액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저혈압 증상이 올 수 있다”며“자율신경계가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꿈 ★ 은 이루어진다
4박 5일의 검사기간 동안 25세 경찰부터 41세 공군 소령까지 10명의 후보자는 어려운 검사를 차례차례 거쳤다. 공군 김학창 소령은“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며“누가 최후의 2명이 되든 대한민국 우주인으로서 임무를 완벽히 해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선발과정을 통해 뽑히는 10명의 후보자는 고립실 테스트, 훈련기 탑승훈련, 뇌 MRI 검사, 러시아 현지 적응훈련 등의 4차 선발과정을 거친 뒤 12월 25일 2명으로 좁혀진다. 후보자 2명은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약 1년간 훈련을 받고, 2008년 4월 최종 1명이 소유즈 우주선에 탑승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과학임무를 수행한다.
그레이아웃 : 대뇌로 가는 피의 양이 감소해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하고 심하면 의식을 잃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