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쓰는 냉장고는 냉매로 불리는 액체의 기화와 응축을 통해 온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액체가 기화되면 열을 흡수하고, 응축하면 열을 방출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 냉장고에는 응축기(컴프레서)라는 전기 펌프가 달려 있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냉장고라고 부를 때 이는 응축식 냉장고의 준말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냉장고는 응축식 냉장고밖에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냉장 기기들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에는 다른 방식이 있었다. 액체의 기화와 응축으로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 반드시 응축기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냉매를 가스 불꽃으로 기화시킨 뒤 그 기체를 물과 같은 특정 액체에 흡수되도록 해 응축하는 방식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흡수식 냉장고라고 부른다. 초기의 흡수식 냉장고는 암모니아를 냉매로 썼고, 기화된 암모니아를 흡수하는 액체로 물을 이용했다.
처음에는 응축식 냉장고와 흡수식 냉장고 두 가지 냉장 방식이 모두 기술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오히려 당시 우수한 기술자일수록 흡수식 냉장고의 매력을 높이 평가했다. 응축식 냉장고는 응축기의 소음으로 인해 시끄러운 반면 흡수식 냉장고는 조용했다.
또 작동 부품이 거의 없어 정비와 유지가 쉬웠다. 가스발전이 흔했기 때문에 작동 비용도 응축식 보다 저렴했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흡수식 냉장고는 응축식 냉장고에 나름대로 비교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도시가 팽창하면서 야채나 과일 등 식료품의 장거리 배달이 늘어나 냉장 기술에 대한 수요는 날로 높아졌고, 아울러 두 가지 방식의 냉장 기술도 급속히 발전했다. 19세기 말에는 응축식 냉장 기술이나 흡수식 냉장 기술 모두 대규로 공장에서 상용화될 정도였다. 맥주 양조장이나 공장 저장고에서 대형 냉장 설비들을 대량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기술에 완벽을 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두 가지 냉장 기술의 공존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정용 소형 냉장고 시장이 형성되면서 두 기술 간의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18년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 출신 기술자들이 전기 자동 회사를 창업하고 처음으로 실용적인 가정용 응축식 냉장고를 개발했다. 이들은 이 냉장고에 ‘켈비네이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켈비네이터 냉장고는 우선 가동이나 정비 과정이 거의 자동으로 이뤄졌다. 공장용 냉장고와 달리 가정용 냉장고는 주부가 특별히 기계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손쉽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 시킨 것이었다.
또 켈비네이터 냉장고는 안전했다. 초기에 응축식 냉장고의 냉매로 연소가 잘 되는 이산화황과 같은 유독성 가스를 사용했는데, 봉인 기술이 취약해 툭하면 가스가 새어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냉장고에 의한 가스 중독 등의 사건 사고들이 신문 지면에 심심찮게 오르내리곤 했다. 따라서 응축식 냉장고가 가정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가스 안전 기술 확보가 관건이었다.
이후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이 가정용 응축식 냉장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응축식 냉장고의 기술은 계속 발전했다. 1927년 GE는 냉각부와 모터부 등 분리돼 있던 냉장고의 구조를 개선해 최초로 일체형 모델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어서 1930년에는 GM에서 유독성도 없고 가연성도 없는 당시로서는 안전한 프레온 냉매를 개발해 응축식 냉장고를 한층 개선시켰다.
한편 이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더불어 새로운 판촉 방식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특히 GE는 미국 전역 대도시들에 판매 대리점을 냈고, 대리점이 냉장고의 판매와 서비스를 전담했다. 그리고 네온사인 등의 첨단 광고 기술, 전시용 차량을 이용한 방문 판매 등 적극적인 판매 전략도 동원됐다.
당시 이런 판매 전략은 선진적이었고, 이 전략에 힘입어 응축식 냉장고는 빠르게 미국의 가정으로 전파됐다. 대도시에 점점 개수가 늘어나던 전기발전소도 응축식 냉장고에 유리했다.
반면 흡수식 냉장 기술은 가정용 시장에서 점차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26년 스웨덴의 칼 문터스와 발짜 폰 플래튼이 값비싼 자동 조절 장치 없이도 지속적으로 운전되는 흡수식 냉장고를 개발해 흡수식 냉장고에도 기술적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 이점만으로 흡수식 냉장고의 열세를 만회할 수는 없었다.
흡수식 냉장고 제조업체들은 GE나 GM과는 달리 냉장고를 대량 제작할 충분한 자금을 갖지 못했다. 예를 들어 켈비네이터 사가 응축식 냉장고에 100만 달러를 투자할 때 흡수식 냉장고 제조업체인 커먼센스 사는 고작 30만 달러를 썼다. 당연히 대량 판촉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여기에 대도시에 빠르게 건설돼 가던 전기발전소도 흡수식 냉장고에 불리했다.
결국 1923년만 해도 8개사에 달하던 흡수식 냉장고 생산 회사가 1956년에는 단 한 개로 줄었다. 이처럼 응축식 냉장고는 대기업의 자금력과 대량 판촉, 전기발전소의 부흥에 힘입어 흡수식 냉장고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냉장고의 소음에 익숙해져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