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그대에게 바치는 가을 보약

몸이 허할 땐 보약이 치료약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이자 희망일 것이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천하를 모두 얻었던 진시황조차 간절히 소망했던 것이 바로 불로장생(不老長生)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가을에 보약 먹는 이유

조선시대 왕들도 장수(長壽)를 꿈꾸긴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보약(補藥)을 자주 먹으며 심신을 다스렸다.

83세까지 살며 조선 왕들 가운데 제일 장수했던 영조(英祖)는 평소에 특히 인삼을 즐겨 복용했다. 72세에는 1년 동안 인삼 20여근(약 6kg)을 복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 후기부터 왕실뿐만 아니라 민간 의료에서도 인삼이나 녹용 같은 약재를 보약으로 많이 썼다. 지금까지도 한국이 이웃나라와 비교해 유독 보약을 선호하는 경향은 조선 후기 이후의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흔히 보약은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의학에서는 보약이 허증(虛證)을 치료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허증은 요즘 말로 하면 신체 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뜻한다. 한의학에서는 허증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본다.

한의학에는 이른바 ‘8법’(八法)이라고 해 질병을 치료하는 8가지 원칙이 있다. 보약은 그 가운데 한가지 방법인 ‘보법’(補法)에 해당한다. 즉 보약이 치료약의 하나라는 뜻이다.

허증은 크게 ‘양허’(陽虛)와 ‘음허’(陰虛)로 나뉜다. 양허는 인체에 양기가 부족해 생긴 증세로 인체의 각종 기능이 감퇴한 상태를, 음허는 인체 내 체액 성분이 부족한 상태를 뜻한다. 실제로 진료를 할 때는 허증의 상태를 양허, 음허, 기허(氣虛), 혈허(血虛)의 네가지로 나눠 처방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약은 허증이 생겨 병들기 전에 예방한다는 목적이 크다. 대개 봄과 가을에 보약을 많이 먹는 현상도 이와 관련이 있다. 여름에는 소화기질환을 앓기 쉽고, 겨울에는 호흡기질환에 잘 걸리므로 봄과 가을에 미리 보약을 먹어 예방하겠다는 의도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소화기질환이나 호흡기질환이 잘 생기는 두가지 체질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런 경우 보약을 적절히 처방하면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


병들기 전에 치료하라

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학책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이미 병이 난 뒤 치료하지 말고 병들기 전에 치료하라’(不治已病 治未病)고 강조한다. 또 ‘몸 안에 바른 기운이 있으면 병의 원인이 되는 나쁜 기운이 침입하지 못한다’(正氣存內 邪不可干)며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방어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바른 기운, 즉 정기(正氣)는 현대의학의 면역 기능과 관련이 깊다. 정기와 사기(邪氣)가 싸우는 것을 면역반응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의학 이론에서는 이런 정기 또는 정상적인 면역력을 유지하는데 오장육부 중에서도 특히 폐장, 비장, 신장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본다.

폐장은 기(氣)의 호흡과 순환에 관련되며, 비장은 인체에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신장은 원기를 발생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하기 때문에 인체의 성장과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이다. 따라서 인체가 충분한 정기, 즉 정상적인 면역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장이 가장 중요하고, 비장과 폐장이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

사람은 성장이 끝난 뒤에는 노화를 겪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신장의 기운이 떨어지면 노화가 진행된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장은 해부학적인 의미의 콩팥뿐만 아니라 생장과 발육을 관장하는 힘의 원천까지 지칭한다.

따라서 신장의 선천적인 기능 여부에 따라서 타고난 건강 상태가 달라지며, 비장의 후천적인 영양 공급 상태에 따라서 수명이 결정된다고 보는 관점이 한의학의 견해다.

나이가 들수록 신장의 타고난 기능이 떨어지는 현상은 당연하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연년익수불로단’(延年益壽不老丹)이라는 보약 처방이 있다. 이 보약은 이름 그대로 수명을 늘리고 늙지 않게 한다는 9가지 약재로 이뤄졌다.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원기를 북돋고 신장의 기능을 향상시키는데 좋다.

동물실험에 따르면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이나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같은 보약은 항산화와 항노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즉 자유 라디칼(free radical)을 제거해 인체의 산화작용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자유 라디칼은 일종의 불안정한 산소 찌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체 세포에는 수많은 종류의 대사작용이 일어나고 이에 따른 부산물이 만들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이른바 활성산소라 부르는 자유 라디칼이다. 자유 라디칼은 세포를 파괴하며 특히 유전자를 공격한다.

계절과 상관없이 보약을 처방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출산 직후다. 이때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허약해진 기혈(氣血)을 보충해 산후 회복을 돕는다는 의미가 크다.

감기가 오래 갈 땐 보중익기탕

보약으로 질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이때 보약은 인체의 기혈이나 장부(오장육부)의 기능을 북돋아줘 질병을 이길 수 있도록 돕는다. 즉 보약으로 몸 안의 정기를 길러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방법이다.

이런 치료법을 정기를 들어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해서 ‘부정거사’(扶正祛邪)라고 부른다. 특히 만성질환의 경우 질병을 이길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데 보약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감기에 자주 걸리거나 한번 걸린 감기가 오랫동안 낫지 않을 때는 치료법으로 보약을 처방한다. 조선시대 선조(宣祖)도 50세에 오랜 감기로 치료를 받던 중 원기가 부실해 감기 치료를 잠시 중단하고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과 같은 보약을 복용했다.

실제로 보중익기탕은 면역계에 관여하는 세포의 수를 증가시키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순천대 생물학과 이성태 교수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보중익기탕은 동물실험에서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T세포, B세포, 대식세포의 분화와 증식을 유도해 면역력을 증가시켰다.

만성 폐색성 폐질환(만성 기관지염과 폐기종)은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고 호흡이 어려워 집에서 산소요법을 쓰는 환자가 많다. 이들 가운데 30~50%는 체중이 줄어들고, 겨울철에는 감기에 걸려 질병이 급속히 악화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1997년 일본 지치의대 호흡기내과 스기야마와 키타무라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 폐색성 폐질환을 앓는 환자 11명에게 4~5개월 동안 보중익기탕을 처방한 결과, 보중익기탕을 복용하지 않았던 그룹에 비해 감기에 걸리는 횟수가 절반가량 줄었다고 한다. 또 보중익기탕을 복용하기 전에 체중이 줄었던 환자 3명은 몸무게가 평균 2.83kg 늘었다고 한다.

우리가 ‘보양’(保養)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의학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오장육부가 병들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뜻과 이미 허약해진 부분을 치료한다는 의미다. 흔히 더운 여름에는 한약을 먹어도 좋은 성분이 땀으로 다 빠져나가니 효과가 없다고 한다. 만약 질병을 예방할 목적이라면 가을이나 겨울에 먹는 것이 좋지만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 허약해진 부분을 치료한다는 뜻에서 보약을 먹는 것이 좋다. 보약은 현대판 ‘웰빙 음식’이라고 할 만 하다.

생활약탕기

인삼은 원기를 북돋는 대표적인 보약재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나는 인삼은 예로부터 효과가 우수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인삼을 약간의 대추와 함께 달인 것을 ‘독삼탕’(獨蔘湯)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에는 ‘허로(虛勞)로 피를 토한 뒤에 몹시 여위고 기운이 약해진 몸을 치료한다’고 쓰여 있는데, 예전에는 기력이 매우 떨어진다든지 출혈이 심하거나 심부전으로 쇼크가 있을 때 구급약으로도 사용했다.

인삼을 많이 먹으면 열이 나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식으로 체질에 안 맞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피곤할 때는 체질에 상관없이 2~4g 정도 소량을 복용하면 원기를 회복하는데 좋다.

대추를 많이 넣어 함께 달이면 맛 좋은 인삼차를 즐길 수 있다.
 

인삼은 원기를 북돋는 대표적인 보약재다.
 

200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정선 한의사

🎓️ 진로 추천

  • 한의학
  • 의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