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인간에 대해 꿈꿔왔다. 종교를 통해 초월자와 하나가 되려했으며 과학으로 초인간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런 꿈을 대변하는 SF영화에서는 3가지 유형의 초인간이 등장한다. 먼저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같은 유형이다. 보통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필요할 때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인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사이보그도 등장한다. 터미네이터나 로보캅이 좋은 예다. 세번째는 인간의 사고인지능력을 초월한 초인간의 모습으로, 영화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신인류의 모습과 같은 부류다.
태권V는 이런 세가지 유형에 딱히 속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모습을 한 거대로봇으로 인간 능력을 넘는 가공할 만한 힘과 기능을 발휘할 뿐이다. 게다가 태권V 자체는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뇌 같은 기관이 없다. 조종사인 훈이의 뇌파에 공조(싱크)한 채 새로운 초능력을 갖춘 조종사의 또 다른 몸이다. 어떻게 보면 훈이가 거대로봇인 태권V를 마음대로 조종함으로써 첫번째 유형의 초인간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태권V는 뇌-기계 접속 기술 필요
훈이가 생각한 대로 태권V를 마음껏 조정하기 위해서는 ‘뇌-기계 접속’(Brain-Machine Interface, BMI) 기술이 필요하다.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 같지만 인간의 뇌파를 이용해 기계를 제어하는 방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돼 왔다. 게다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선정한 ‘미래국가유망기술 21’에 지정돼 있을 정도다.
BMI는 말 그대로 뇌파를 이용해 기계장치를 움직이는 기술이다. 하지만 뇌파는 매우 많은 신경세포의 활동전압이 합쳐져 나오는 복합신호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평균화된 신호만 이용할 수 있어 구체적인 정보의 내용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BMI 기술은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됐다. 미국 클리블랜드 케이스웨스턴대의 헌터 패컴 박사는 뇌신경세포의 전기신호를 조절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에서 커서를 생각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뇌파를 기록하는 전극을 뇌의 대뇌피질에 가장 가까이 둬야 한다. 물론 사람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대뇌피질에 삽입한다면 효과가 크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10년 전부터는 BMI 기술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운동정보를 처리하는 두뇌에 많은 미세전극을 시도했다. 신경세포에서 나오는 운동명령정보를 미세전극에서 받아들인 뒤 실시간으로 해석해 기계를 제어한다. 이런 기술은 1990년대 후반 컴퓨터 정보처리 속도가 급속히 발달함에 따라 많은 신경세포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해독하고 실시간에 기계를 조정하는 명령어로 변환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어깨, 팔, 손목관절의 운동을 실시간에 로봇의 기계운동으로 구현할 수 있다. 게다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BMI 기술도 연구중이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수많은 신경세포가 작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BMI 기술로 로봇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이려면 각각의 신경세포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일일이 기록하고 다시 로봇 손가락에 적용해야 한다.
원숭이 실험은 이미 성공
태권V를 훈이가 자유자재로 조종하기 위해서 현재의 BMI 기술을 적용한다면 조종사 훈이의 뇌에 미세전극을 이식해야 한다. 물론 훈이가 태권V에 직접 타고 있을 필요는 없다. 무인원격조정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뇌에 미세전극을 심지 않고 훈이가 생각한 대로 태권V를 조종하려면 빛을 이용해 뇌의 기능을 읽어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BMI 기술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돼야 이 기술은 태권V와 같은 로봇이나 기계에 응용되고 실용화될 수 있다.
BMI 기술의 핵심은 ‘뇌-컴퓨터 접속’(Brai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이다. 미국 듀크대의 미구엘 니코렐리스 교수는 원숭이의 대뇌운동중추에 있는 단일신경세포집단으로부터 손의 움직임을 해석해 로봇팔을 생각만으로 움직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해석한 신호는 인터넷을 통해 보스턴의 매사추세츠공대(MIT)로 보내 실시간에 원격으로 그곳의 로봇팔을 움직이도록 했다. 이 연구는 세계의 주요 언론에서 21세기의 신기술로 보도됐다.
브라운대의 존 도나휴 교수도 이와 비슷한 뇌-컴퓨터 접속 연구를 수행해 왔다. 사이버키네틱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브레인게이트’(BrainGate)란 뇌-컴퓨터 접속 시스템을 개발해 세계 의료시장에 내놓고 있다. 실제 도나휴 교수팀은 극심한 뇌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개발한 뇌-컴퓨터 접속 기술의 유용성을 실험했다. 그중 한 사람이 미국 매사추세츠에 사는 매튜 네이글이다. 그는 칼에 찔려 척수에 심한 손상을 입고 전신마비가 됐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매튜 네이글은 브레인 게이트를 이식받고 허리를 펴거나 팔을 움직이는 동작을 생각만으로 해낼 수 있게 됐다.
컴퓨터는 뇌의 정보처리 기능을 인간의 몸 밖으로 끄집어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빠르게 진행돼 이제는 인간 뇌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능가하는 상태까지 왔다. 책상 위의 PC는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슈퍼컴퓨터가 되고 있다. 또한 뇌의 부분적인 기능보다도 월등히 앞선 컴퓨터는 이제 우리가 들고 다니는 노트북 컴퓨터, PDA로 소형화돼 몸의 한 부분으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태권V-훈이 접속 3가지 조건
태권V와 같은 거대한 고성능 로봇을 훈이가 BMI 기술로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태권V에 입력센서를 달아야 한다. ‘조종을 한다’는 의미는 처해진 상황을 적절히 판단해 이에 맞는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훈이가 태권V가 처한 상황을 알려면 태권V에 다양한 센서를 달아 여기서 들어오는 막대한 정보를 입력 BMI를 통해 훈이의 감각두뇌영역에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현재 가장 발달된 입력 BMI는 청각정보처리 입력 BMI다. 그러나 시각, 후각, 촉각, 운동감각의 입력 BMI는 현재 매우 초보적인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다.
둘째 정보처리를 위한 슈퍼컴퓨터를 달아야 한다. 훈이가 생각한 모든 행동을 신호로 받아 이를 구현하려면 먼저 훈이의 뇌파에서 전달된 수많은 신호를 처리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태권V 자체에 슈퍼컴퓨터를 장착하고 이런 슈퍼컴퓨터는 훈이의 뇌와 접속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훈이의 뇌에 미세한 슈퍼컴퓨터가 이식돼야 한다.
셋째 슈퍼컴퓨터가 움직임을 제어해야 한다. 태권V는 적에 맞서 싸우며 어려운 태권 동작까지 해내야 한다. 사람의 경우 이런 행동은 소뇌가 담당하는데, 태권V에는 이런 소뇌의 역할을 담당할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또한 훈이 뇌의 운동영역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태권V용 슈퍼브레인 필요
머지않아 모든 생활공간과 물건에 미세한 컴퓨터가 들어가는 유비쿼터스 컴퓨터 환경이 구현될 것이다. 나노·바이오·정보기술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미세한 컴퓨터가 뇌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컴퓨터(객체화된 뇌)와 인간 뇌의 접속으로 장애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인간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에 서있다.
훈이가 거대로봇인 태권V를 마음대로 조종함으로써 SF영화에 등장하는 ‘첫번째 유형의 초인간’이 됐다고 하자. 태권V 몸에 입력·중앙처리·출력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슈퍼컴퓨터가 마치 태권V의 말초신경계, 자율신경계 및 중추신경계로 들어가야 한다. 인간의 뇌를 닮았으면서도 그 기능을 뛰어넘는 태권V용 ‘슈퍼브레인’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인간의 종합적인 뇌기능을 흉내낼 수 있는 슈퍼컴퓨터는 개발되지 못했다. 인간의 뇌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아직도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 기능에 대해 모두 이해하지 않고는 인공두뇌 역할을 하는 슈퍼컴퓨터를 개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 훈이의 뇌 기능을 전체나 일부분 업그레이드하는 기술도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초월하고자 하는 염원이 크기 때문에 BMI 기술이 개발되면서 인간장애를 극복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보통 인간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방향으로 BMI 기술은 진보하리라 생각한다.
그런 과정에서 태권V가 실제로 제작되고, 이를 조종하는 초월적 뇌를 갖는 새로운 인류인 ‘훈이’도 탄생할 것이다. 만일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고 발전하지 못한채 현재 상태의 구인류로 남는다면 어쩌면 인류는 미래에 도태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