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에서 봉화 쪽으로 낙동강 물길을 따라 약 30km를 올라가면 여러 개의 암봉이 우뚝 솟아오른 산이 눈에 띈다. 전남 영암의 월출산, 경북 청송의 주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奇岳)으로 꼽히는 청량산이다.
이름난 동양화폭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산세로 넉넉한 모습을 드러내는 청량산은 작지만 갖가지 암봉과 계곡이 혀를 내두를 만큼 기막힌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안팎으로 각각 6개의 암봉이 연꽃잎 모양으로 산 중심부를 감싸고 있는 육륙봉(六六峯)은 예부터 그 명성이 자자한 청량산의 상징이다.
청량산 암봉은 역암(礫岩)으로 만들어졌다. 암봉 가까이 바짝 다가서면 바위 곳곳에 주먹에서 사람머리 크기만한 자갈이 수없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암은 자갈과 진흙 또는 모래 성분이 물 속에서 뒤섞여 만들어진 퇴적암으로 시멘트와 자갈을 함께 버무려 놓은 콘크리트 같은 모양이 특징이다.
청량산 암봉이 역암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이곳이 한때 바다나 호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청량산 지역은 1억년 전 쯤 호수의 일부분이었고 여러 차례에 걸친 홍수로 주변 산지에서 굴러온 자갈과 진흙, 모래 등이 호수 바닥에 쌓여 거대한 퇴적층이 만들어졌다.
이 퇴적층으로 형성된 자소봉(육륙봉의 하나)에는 높이 2m, 너비 50m 정도의 움푹한 홈이 있다. 오목하게 패인 일자형(一字型) 침식지형인 ‘니치’(niche)다. 비오는 날에 어른 100명이 피해도 될 만큼 널찍한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희귀지형이다. 거대한 퇴적암 아랫부분에 만들어진 이 ‘자연 처마’는 어떻게 형성된 걸까.
청량산 암봉은 주로 역암으로 이뤄져 있지만 이암과 셰일, 역암, 사암 그리고 현무암 층이 반복해서 쌓여 있다. 이암, 사암, 역암은 각각 열과 냉기에 의한 팽창률과 압축률이 다르다.
굵은 자갈이 섞인 역암보다는 가는 점토가 굳은 이암이 열과 냉기에 더 민감하다. 퇴적 성분이 세립질일수록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이다. 뜨거워지면 이암은 역암보다 더 빨리 팽창하고 추워지면 더 빨리 수축한다. 부피 변화가 클수록 침식률도 커진다.
자소봉 아랫부분은 적색의 이암과 셰일로 이뤄져 있어 윗부분에 쌓인 역암층보다 침식과 풍화가 잘 된다. 특히 깊게 패여 나간 부위는 태양이 잘 드는 남쪽에 있기 때문에 일조량이 많아 여름철에 급격히 팽창한다.
사계절 내내 계곡 아래의 습기를 머금고 불어오는 지방풍(국지적으로 부는 바람)을 먼저 맞으면서 바람이 실어주는 습기를 오랫동안 머금는 것도 침식과 풍화가 더 쉽게 이뤄지는 원인이다.
이렇게 아랫부분의 이암이 윗부분의 역암보다 먼저 침식되면서 자소봉에는 한옥 마루 위의 처마 같은 특이한 지형이 만들어졌다. 청량산 도처에 발달해 있는 김생굴과 고운굴, 의상굴, 원효굴, 금강굴, 방장굴도 모두 암질이 다른 청량산 퇴적층의 차별침식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