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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3차원 홀로그램 만든다

광굴절분자집합체연구단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도입부. 일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돌아온 톰 크루즈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꺼내 본다. 버튼을 누르자 1차원 동영상이 공중에 펼쳐진다. 소리내 웃고, 손을 흔드는 아내와 아들이 실제로 눈앞에 서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고 있는 홀로그램의 한 예다.

홀로그래피는 빛의 간섭현상을 이용해 3차원 영상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사물을 본다는 것은 곧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본다는 의미다. 이 빛만 재생하면 실제로 없는 사물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다.

빛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빛의 파장에는 물질의 색깔 정보가 들어있고, 빛의 진폭은 밝고 어두운 정도를 나타내며, 빛의 위상은 올록볼록한 물체의 입체감을 표현한다.

사진을 찍어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사진 필름이 빛의 파장과 진폭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은 빛의 위상을 기록하지 못하는 탓에 평면적이다. 빛의 위상을 기록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입체적인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홀로그램이다.

한양대 화학과 김낙중 교수가 이끄는 광굴절분자집합체연구단은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3차원 홀로그램을 실현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빛의 위상까지 기록하는 홀로그램 필름 개발이다.

김 교수는 신용카드에 붙어있는 홀로그램이나 유명 인사의 홀로그램 사진과 달리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홀로그램 동영상을 보여주는 물질을 만들려고 한다.


지는 전자, 뜨는 광자

홀로그램 동영상을 실현시키기엔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홀로그램은 데이터 용량이 너무 크다. 각설탕 한 개쯤 되는 홀로그램 1cm3가 차지하는 데이터 용량은 1GB (기가바이트, 1GB=109B). 2시간짜리 일반 동영상 파일이 대략 700MB(메가바이트, 1MB=106B)인 점을 감안하면 홀로그램 데이터가 얼마나 방대한지 짐작할 수 있다.

데이터 자체가 너무 커서 홀로그램 기술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통신망으로는 전송이나 저장이 힘들다. 대용량 정보를 활용하려면 정보처리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 밑받침돼야 한다.

전자 대신 광자인 빛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광자공학(Photonics)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광자공학은 ‘전자 사회’를 ‘광자 사회’로 전환하려는 기술이다.

핵심은 빛의 제어다. 광자를 이용하려면 전자만큼 빛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빛을 통제하려면 빛이 통과하는 매질의 굴절률을 조절해야 한다. 매질의 굴절률은 빛의 속도와 관련이 있는데 빛은 굴절률이 큰 매질을 통과할 때 느리게 움직인다.

예를 들어 공기 중의 빛은 물 속을 지날 때 속도가 줄어든다. 연필을 수조에 담갔을 때 연필이 꺾여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빛을 비추어 광굴절 재료에 새겨진 간섭무늬가 바뀌었다. 이에 따른 위상차이가 재료의 굴절률이 변했음을 보여준다.


빛을 제어하는 광굴절재료

김 교수는 매질의 굴절률에 따라 빛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에 착안해 물질의 굴절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하고 있다.

어떤 물질에 빛을 쪼이면 그 물질 안에 있던 전자가 재배열하면서 물질의 굴절률이 변하는데 이것이 바로 김 교수가 개발하고 있는 광굴절 재료다.

광굴절 재료는 광전도성과 전기광학 재료를 결합한 신물질이다. 광전도성은 빛을 쪼이면 절연체이던 매질에 전기가 통하는 것을 말하며, 전기광학 재료는 전압에 의해 매질의 굴절률이 변하는 물질을 뜻한다.

두 유리판 사이에 액정이 들어있는 액정 디스플레이는 전기광학 물질의 대표적인 예다. 액정 디스플레이에 전압을 걸어주면 두 유리판이 각각 양전하나 음전하를 띠면서 그 사이에 있는 액정이 재배열한다. 이로 인해 매질의 굴절률이 변하는데 김 교수는 이런 현상을 전기가 아닌 빛으로 만들려고 한다.

김 교수는 “화학 반응으로 굴절률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한번 반응이 일어나면 다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를 저장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정보의 연산처리 재료로는 부적당하다”며 “움직이는 동영상 정보를 처리하려면 빛의 세기에 따라 물질의 굴절률이 계속해서 변하는 광굴절 재료를 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홀로그램 기록과 재생 실험^레이저 빔을 이용해 일원짜리 동전 이미지를 홀로그램으로 재현했다. 홀로그램 필름에 김 교수가 개발한 광굴절 물질을 썼다.


시시각각 변하는 3 차원 홀로그램

2001년 광굴절분자집합체연구단은 고분자를 이용한 유기 광굴절 재료를 개발했다. 같은 해 이 재료를 이용해 홀로그래피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실험을 했다. 국내 최초로 이뤄진 이 실험에서 연구팀은 실물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선명한 홀로그램 이미지를 얻었다.

홀로그램을 만들려면 일단 레이저빔 하나를 물체빔(Ob- ject beam)과 기준빔(Reference beam)으로 갈라야 한다.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된 물체빔이 어떤 물체도 통과하지 않은 기준빔과 만나면 서로 중첩되면서 수많은 선으로 이뤄진 간섭무늬를 만든다. 간섭무늬에는 물체의 색과 명암 그리고 입체감을 나타내는 위상 정보가 담겨 있다.

간섭무늬가 맺히는 곳이 바로 홀로그램 필름인데, 김 교수가 개발한 광굴절 재료가 바로 여기에 쓰였다. 홀로그램 필름에 간섭무늬가 기록되면 물체빔을 끄고 기준빔만 비추면 3차원 영상이 나타난다.

김 교수가 개발한 광굴절 재료는 비교적 낮은 전기장(33V/μm)에서 화질이 선명한 홀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또 빛의 세기에 따라 굴절률이 자동으로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이미지 외에 동영상도 3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광굴절재료가 빛에 반응하는 속도가 느려 물체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빛에 더 빠르게 반응하도록 광굴절 재료의 기능을 보완하면 영화 속 홀로그래피가 현실이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김 교수는 광자가 보여줄 3차원 세계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영화 같은 현실, 빛으로 만든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더군요.”
광굴절 재료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낙중 교수는 “화학과 물리를 함께 공부해서 나름대로 두 분야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서 1년동안 끙끙거린 광학 문제를 물리 전문가는 단 3개월 만에 해결하더라”며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광굴절 재료를 개발하려면 고분자 유기물질을 합성하는 화학적 지식도 필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빛의 성질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때문에 외국에서는 광굴절 재료 개발 연구가 광학, 유기화학, 전자기학 등 화학과 물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대형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김 교수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려니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연구단이 보인 성과는 그의 말과는 다르다.

김 교수가 광굴절 재료 개발 연구를 제안해 창의연구단에 선정된 것은 1998년. 고분자 광굴절 재료가 1995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것을 감안하면 선진국보다 3년이나 늦게 시작한 연구지만 그의 성과는 세계 최고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광굴절 물질에 빛을 쪼였을 때 절연체이던 물질에서 만들어지는 공간 전하장을 측정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홀로그램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실험에서도 세계 어느 연구팀보다 선명하고 사실적인 영상을 얻었다.

광굴절 재료의 효용은 무궁무진하다. 3차원 디스플레이 외에도 광굴절 재료를 활용하면 병렬 연산처리가 가능해 정보처리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김 교수는 “지문 식별 장치에 이 기술을 이용하면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같은 지문을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공상’을 실험 자료를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김 교수. 그는 “공상이 현실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영화 같은 현실을 위한 걸음을 재촉한다
 

3차원 홀로그램 동영상을 실현하기 위해 광굴절 재료를 개발하는 김낙중 교수(앞줄 오른쪽에서 다섯번째)와 연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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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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