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렵겠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피부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흔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왕들의 사망 원인 가운데 제일 많은 질병이 ‘종기’였다. 문종을 비롯해 성종, 효종, 정조, 순조가 모두 종기로 인한 패혈증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부에 세균이 감염돼 생기는 조그만 종기가 생명을 위협할 만큼 무서운 피부질환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 문종이 등에 앓던 종기는 길이가 한 자(30.3cm) 가량 되고, 폭이 5~6치(15~18cm) 정도로 매우 컸다. 정조의 종기도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는 연적만큼이나 컸다. 환경이 비위생적이고 보건 개념이 미흡한 시절이다 보니 종기가 악화돼 생명을 해칠 수 있었던 것이다.
피부는 오장육부의 거울
한의학에서는 피부를 우리 몸이 외부의 기운과 감응하는 기관으로 본다. 즉 외부의 정기(正氣)는 받아들이고 보존하는 한편 사기(邪氣)는 막아서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보호하는 것이다. 만약 피부의 방어 기능이 떨어지면 인체에 사기(邪氣)가 침입해 질병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는 것은 인체의 건강에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몸에는 경락이 그물처럼 얽혀있다. 이를 통해 외부의 기운과 인체 내부의 변화가 몸 안팎으로 전달되거나 차단된다. 가령 혈액이 피부의 어떤 부위에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 가려움증이 생긴다. 기혈이 원활히 소통하지 못할 때는 통증이 생긴다. 종종 피부색으로 신체 내부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의학에서는 피부질환의 원인을 신체의 부조화에서 찾는다. 오장육부가 나무의 뿌리라면 피부는 나뭇잎에 비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변비나 소화불량처럼 소화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생리통, 생리불순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때는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일어난다. 열이 위로 치우치는 상열(上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피부질환을 치료할 때는 기본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그밖에 침 치료를 병행하거나 한약재를 피부 표면에 직접 바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왕들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한약을 복용하는 한편 종기의 곪은 자리를 째서 고름을 빼고 고약을 붙였으며 한약을 태우거나 달일 때 나는 연기를 쐬었다.
한약의 연기를 쐬는 것처럼 한약재를 외용하는 방법은 한약을 복용하는 방법과 함께 한의학 초창기부터 발달해왔다. 한약재를 피부 표면에 바르고, 뿌리고, 싸매고, 찜질하는 것 역시 한약재의 외용법에 속한다. 중국의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견된 약 2200년 전의 한(漢) 시대 무덤에서는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이라는 책이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뱀에 물렸을 때 겨자씨를 진흙처럼 만들어 바르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 있다.
부작용 없이 여드름 치료하기
피부질환 중 가장 흔한 것이 여드름이다. 여드름은 단순히 피부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인 요인, 식사 습관, 연령 등 여러 요인이 관련돼 있다. 여드름은 사춘기에 많이 생겼다가 자연스럽게 없어지기도 하지만 종종 만성적인 상태로 남기도 한다.
한방으로 여드름을 치료할 경우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여드름은 단순한 피부 부위의 세균 감염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방 치료처럼 신체의 전반적인 상태를 고려해서 처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방 치료를 할 경우 항생제를 장기간 먹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1994년 일본에서는 10개 의료기관이 여드름 환자 139명을 대상으로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와 약용 식물인 형개(荊芥)와 연교(連翹)를 비롯해 10여 가지 약재가 들어간 ‘형개연교탕’의 치료 효과를 조사했다. 환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 두 그룹에는 각각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와 형개연교탕을, 나머지 한 그룹에는 두 약제를 함께 투여했다.
그리고 약물의 효과를 판정하기 위해 2주마다 발적(發赤), 지루(피지의 과잉 분비), 농포(고름 주머니), 구진(발진), 면포(피지 주머니) 5개 항목을 조사했다. 총 실험 기간은 8주로 실험이 끝난 뒤 치료 효과를 5단계(현저히 개선, 개선, 조금 개선, 불변, 악화)로 나눠 평가했다. 최종 유용성 판정은 전반적인 개선도와 부작용을 고려해 4단계(매우 유용, 유용, 조금 유용, 유용성 없음)로 판정했다.
그 결과 형개연교탕은 60.6%가,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는 62.2%가 ‘유용’ 이상의 효과를 나타냈다. 두 약제를 병용한 그룹에서는 78.6%가 ‘유용’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 특히 형개연교탕을 복용한 그룹은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를 복용한 그룹에 비해 피부 증상 중에서 농포와 발적에 효과가 뛰어난 반면 면포에서는 효과가 떨어졌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눈에 띄는 결과가 하나 있다. 형개연교탕을 복용한 그룹에서는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반면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를 복용한 그룹에서는 22.5%가 소화기 부작용을 나타냈다. 이는 형개연교탕과 같은 한방 치료가 양방 치료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 한편 부작용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침 맞으면 가려움이 싹
피부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이 가려움이다. 가려움은 침으로 치료할 수 있다. 침 치료가 마취를 비롯해 통증을 억제한다는 연구는 많다. 그런데 사실 가려움증과 통증은 신경생리학적으로는 비슷한 현상이다. 두 감각 모두 히스타민 또는 프로스타글란딘이 신경섬유(C섬유)를 자극해 생긴다.
1984년 미국의 마일스 벨그래이드 등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침 치료는 히스타민에 의한 가려움이나 홍반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다. 연구팀은 건강한 지원자 25명을 대상으로 경혈 두 곳에 15분 동안 전침자극을 가한 뒤 히스타민을 피부에 주사했다. 그리고 이들을 경혈이 아닌 다른 부위에 침 치료를 한 그룹과 침 치료를 하지 않은 그룹과 비교했다.
그 결과 경혈이 아닌 다른 부위에 침 치료를 한 그룹이 침 치료를 전혀 하지 않은 그룹보다 가려움증이 많이 줄었다. 또 경혈에 침 치료를 한 그룹이 다른 부위에 침 치료를 한 그룹보다 가려움이 지속되는 시간과 가려움의 강도가 훨씬 줄었고, 홍반의 크기도 더 작아졌다.
최근에는 주름을 없애는데 침을 사용하기도 한다. 단 침 치료는 깊은 주름이 아니라 잔주름을 제거하는데 효과가 좋다. 침으로 주름을 없애는 원리는 피부 마사지나 지압과 같다. 치료할 부위의 경혈에 침을 놓아 경락을 소통시키고 기혈을 잘 돌게 해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피부 조직의 영양 상태를 개선해서 주름을 없애는 것이다. 오장육부의 기능을 조절하는 경혈에 침을 놓아 전신의 대사 기능을 왕성하게 하거나 정상화시키기도 한다.
햇볕은 피부의 천적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따가운 햇볕이 피부질환의 최대 적이다.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고 싶다면 되도록 강한 햇볕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일부러 선탠을 하는 사람들이 줄었지만 몇년 전만 해도 거무스름하게 선탠을 해야 겨울에 감기가 덜 걸린다든가 건강해 보인다고 해서 해수욕장에 가면 살갗을 태우는 사람이 많았다.
오행(五行)에서 화(火)의 계절인 여름철에 햇볕을 많이 쬐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여름철에는 신체의 표면에 열기가 많아지는데 여기에 외부의 열기까지 더해지면 피부에 좋은 반응이 나타날 리 만무하다. 자외선이 피부 노화를 촉진해 주름살이나 기미, 검버섯을 생기게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생활약탕기
살구씨는 한약재명으로 ‘행인’(杏仁)이라고 한다. 살구씨는 화장품 원료로도 쓰이는데, 피부의 각질을 제거하고, 보습 효과와 더불어 주름이 생기고 색소가 침착하는 것을 완화한다.
살구씨 기름에는 미백 효과가 있다. 살구씨를 곱게 갈아서 물이나 요구르트에 섞어 팩 또는 마사지를 하면 좋다.
피부에 여드름이 나기 쉬운 지성피부라면 녹차로 얼굴을 씻어 보자. 녹차에 함유된 폴리페놀의 일종인 EGCG는 피부 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항산화 효과가 있어 깨끗한 피부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천연 재료를 얼굴에 사용하기 전에 다른 부위에 먼저 소량을 시험해보는 것이 안전하다. 예민한 피부를 가진 사람은 재료 자체가 자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