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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붉게 물든 아름다움

발목까지 물이 차는 얕은 습지에서 무성하게 자란 물억새가 한여름의 정적을 지키고 있다. 그 줄기 끝에 앉아 있는 잠자리의 모습이 갑자기 뚜렷하게 다가온다. 잠자리라고 하기엔 너무 가냘프고 하루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건방지고…. 걸리버의 소인국에 온 것일까?

꼬마잠자리는 작은 몸집에 튀는 색깔로 승부한다. 수컷은 짙은 물감을 뒤집어 쓴 듯 몸은 온통 검붉고, 굵은 검은 줄 하나가 등을 둘로 가른다. 암컷은 다갈색 몸통에 군데군데 흰색 칠로 한껏 치장했다. 등에 달린 두 쌍의 비행 장치는 길고 투명하다. 그야말로 ‘잠자리 날개’ 같다. 이런 날개로 어떻게 자유자재로 날 수 있을까. 그래도 우람한 가슴 근육 아래 당당하게 뻗은 6개의 다리는 한 번 붙잡은 먹이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완강하고 고집스럽게 생겼다.

꼬마잠자리의 수줍은 행동을 보라. 물억새 줄기를 부여잡고 물구나무서듯 하늘을 향해 앙증맞게 꽁지를 쳐든다. 짝짓기를 하려 소리 없이 그렇게 님을 기다리는 몸짓이다.

오소후 시인이 어떻게 내 맘을 읽었을까? ‘만 개의 낱눈으로 보석을 놓아 겹눈을 지닌 까닭을 아시나요 / 그대 찾으려다 두 눈이 튀어나왔어요’ -<;잠자리>;
 

꼬마잠자리 수컷. 온통 붉은 몸 색깔은 표현하기 힘든 자연의 색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잠자리

꼬마잠자리의 학명은 ‘난노피아 피그마에아’(Nannophya pygmaea Ramber)다. 피그마에아란 ‘아주 작다’는 의미의 라틴어로 아프리카의 가장 작은 부족인 ‘피그미족’과 같은 의미다. 크기가 작은 만큼 행동반경도 좁다. 서식처인 습지를 벗어나지 않고 맴돌면서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온다. 수컷은 짝짓기를 하기 위해 자기 영역을 두고 텃새를 부린다. 다른 수컷이 다가오면 쫓아버리는 습성이 있다.

짝짓기는 다른 잠자리들과 같다. 흔히 꼬리라고 생각하는 수컷의 배 끝에는 집게가 달려 있어서 암컷을 만나면 이 집게로 암컷의 목덜미를 움켜쥔다. 목덜미를 잡힌 암컷은 수컷의 배를 움켜잡는다. 수컷은 생식기가 두 개다. 배 끝에 있는 생식기가 정자를 만들어 가슴에 달려 있는 부생식기에 정자를 붙여둔다. 암컷은 자신의 배를 구부려 수컷 가슴에 있는 부생식기에 갖다 대며 짝짓기가 이뤄진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보면 마치 하트모양을 닮았다. 하지만 꼬마잠자리는 워낙 작아서인지 하트보다는 삼각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암컷이 물 속에 낳은 알은 부화해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지낸다. 우화(羽化)는 습지에서 자란 풀줄기 바로 위에서 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꼬마잠자리가 세운 나름대로의 삶의 전략이다.

49년 전 발견 그리고 부활

우리나라 꼬마잠자리는 49년전에 처음 발견됐다. 고려대 생물학과 김창복 교수가 1957년에 속리산 법주사에서 한 마리를 발견해 꼬마잠자리임을 밝혔다. 그 뒤로는 뚜렷한 발견 기록이 없다가 1999년에 전남 곡성에서 다시 발견돼 서울여대 배연재 교수가 형태와 서식처를 조사했다. 배 교수는 “꼬마잠자리는 열대성 곤충으로 우리나라가 이 종의 북방한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일본 남부에 넓게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주로 남부 지방에 적게 분포하는 희귀종이다.

작년 8월에는 경상대 박중석 교수가 경남 양산 영취산 자락의 양산습지에서 암컷 1마리와 수컷 2마리를 발견했고, 지난 6월에는 국립환경과학원 생물다양성연구부에서 문경시 농암면에 있는 습지에서 500마리가 넘는 집단 서식처를 발견했다. 이곳 경기도 광주에서 발견한 서식처는 다른 지역보다는 훨씬 북쪽이다. 얼마 전 인천 무의도에서도 발견됐다는 기록이 있어서 꼬마잠자리의 분포가 더 위로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배연재 교수는 지난 4월부터 환경부와 함께 ‘멸종위기동물 증식’ 과제를 시작했다. 대상은 물자라와 꼬마잠자리다. 생태 특성과 서식 환경 조건을 밝혀 3년 뒤에는 꼬마잠자리가 많이 자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풀잎 끝에 매달려 사랑을 나눈다. 백천간두에서 마지막 사랑을 나ㅜ듯 애처로와 보인다.


총성으로 사라질 보금자리

이곳 꼬마잠자리 서식처로 향하는 길목에는 ‘분묘개장 안내판’이 퉁명스럽게 세워져 있다. 분묘개장을 위탁받은 한국토지공사 군부대수탁보상사업소 담당자는 “2002년에 국방부가 고시한 지역으로 올해 8월이면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사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환경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혹시 사전환경성검토에서는 문제가 없었을까.

환경부 국토환경보전과에서는 “당시 꼬마잠자리 발견기록은 없으며, 지금 서식한다면 공사 과정에서 조치를 취해야 하고 관리는 지방환경청에서 담당한다”고 했다. 한강유역관리사무소 담당자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먼저 공사를 담당하는 군부대가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국방시설 공사를 담당한 군 관계자는 “보안 사항이라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굉장히 중요한 시설이 들어와 공사 중단은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법적으로 갈등을 정리하는데 4년이 걸렸다. 도롱뇽 소송이라 불렀던 천성산 원효터널공사 착공금지 가처분사건은 3년의 갈등 끝에 마무리 됐다. 결론은 모두 인간의 승리. 지금 새만금과 천성산에서는 인간의 편의를 위한 땅과 시설을 만들고 있다. 이곳 꼬마잠자리들에게는 머리 싸매고 투쟁할 환경운동가도 단식투쟁할 스님도 없다. 다만 생태사진가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간밤에 내린 비에 투명한 날개가 흠뻑 젖었다. 무거워진 날개를 털고 날아보지만 이내 거미줄에 걸리고 만다. 끈적끈적한 느낌에 몸부림을 치지만 어느새 온몸은 거미줄에 휘감긴다. 그렇게 또 한 마리가 사라져간다.

꼬마잠자리 한 마리가 없어진들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 내일은 또 다른 꼬마잠자리가 허물을 찢고 나와 날개를 펼칠 것이다. 하지만 알을 낳을 습지가 사라지고 날개를 펼칠 물억새마저 모두 없어져버리면 더 이상 꼬마잠자리를 볼 수는 없다.

잠자리는 인간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모기를 좋아한다. 하루에도 수백 마리의 모기와 장구벌레를 잡아먹으니 자연이 피워놓은 모기향이다. 잠자리가 사라지면 자연 모기향은 꺼진다. 모기들은 잠자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인간의 피를 찾아 습격해 올 것이다.

꼬마잠자리들은 가녀린 날갯짓으로 날아오른다. 작지만 커다란 두 눈은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아무리 슬퍼도 질척한 습지를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지 못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그들이 남긴 여백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작고 힘없는 꼬마잠자리는 거미줄에도 쉽게 걸려 죽음을 맞는다.
 

200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tjwjdghk 생태사진가
  • 김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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