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 각종 언론 매체는 영화 ‘왕의 남자’가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는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가 갖고 있던 총 관객 1175만명이라는 기록이 깨졌기 때문이다. 영화 ‘왕의 남자’는 그 후에도 저력을 발휘해 대단원의 막을 내린 4월 18일까지 전국적으로 12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 국민의 4명 가운데 한명꼴로 이 영화를 본 셈이다.
그동안 관객 동원 1, 2위를 차지하고 있던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는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이에 반해 ‘왕의 남자’는 제작비가 44억원밖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왕의 남자’가 한국영화의 흥행 신기록을 갈아 치운 원인은 무엇일까.
블록버스터 ‘태풍’을 누르다
지난해 12월 개봉된 ‘왕의 남자’는 곽경택 감독, 장동건 주연의 ‘태풍’과 맞붙었다. ‘태풍’의 감독과 주연은 영화 ‘친구’를 흥행시켰던 쌍두마차로 ‘왕의 남자’의 인적 구성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였다. 국내 영화전문지 ‘스크린’에서 발표한 감독과 배우의 흥행지수도 ‘태풍’이 ‘왕의 남자’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풍’은 ‘왕의 남자’보다 제작비나 마케팅비를 2.5배 이상 쏟아 부었고 개봉관도 540개로 ‘왕의 남자’보다 230개 더 많이 확보했다. 개봉 이전, 두 영화의 정보를 비교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태풍’이 ‘왕의 남자’보다 흥행에 훨씬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누구나 태풍이 더 흥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개봉 이후의 누적 관객 수를 비교해 보면 2주 앞서 개봉된 ‘태풍’이 개봉 한달 만인 지난 1월 14일에 ‘왕의 남자’에게 추월당했다. 결국 ‘태풍’은 총 4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는데 그친 반면, ‘왕의 남자’는 총 관객수 1200만명을 돌파했다. 예상을 뒤집고 ‘왕의 남자’가 흥행에서 완승을 거둔 것이다.
두 영화의 흥행 예상과 실제 결과가 차이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의 스타파워(흥행지수), 감독과 제작진의 구성, 장르, 제작 국가, 제작 비용, 광고와 홍보 비용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소위 흥행을 보증하는 배우나 감독이 참여하지 않은 영화 ‘왕의 남자’는 사극 장르가 흥행하기 힘들다는 고정관념까지 깼다.
흥행 성적은 영화의 개봉 시기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영화산업 자체가 매우 경쟁적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영화의 개봉 시점에 매력적인 또 다른 영화가 개봉된다면 그 영화의 매력도는 상대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이는 곧 관객 수의 급격한 감소로 연결될 것이다. ‘왕의 남자’가 개봉되지 않았다면 ‘태풍’의 흥행 성적이 더 좋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또 영화가 대표적인 경험재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경험재는 특정 식당의 음식처럼 소비자의 구전효과(입소문)가 중요한 상품이다. 영화는 본 사람의 평가, 즉 입소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인터넷 평점 차이가 성적 갈라
여러분은 영화를 선택할 때 어떤 요인을 고려하는가. 예측연구실에서는 여러 요인을 고려해 영화의 매력도(Attractiveness)를 계산할 수 있는 수학공식을 개발했다. 어떤 영화의 매력도란 한 시점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의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한 모형에서 나온 척도다. 일반적으로 개봉 후 상영일수가 늘어남에 따라 매력도의 수치는 줄어든다.
매력도를 계산하는 수학공식은 다음과 같다. 매력도=(상수0+상수1×국적+상수2×개봉시점 영화관수+상수3×장르+…)+{-(상수4-상수5×전날의 인터넷 평점)×상영일수+상수6×전날까지 누적 관객수}. 매력도는 크게 개봉시점에 정해지는 요인들과 개봉 이후 변하는 요인들로 결정된다. 개봉 당일에는 주연배우, 감독, 개봉일 영화관수, 장르, 제작 국가 등이 영화의 매력도를 결정한다. 그 후 상영일수가 늘어나면 구전효과가 영화의 매력도에 큰 영향을 준다. 이때 영화에 대한 평가가 입소문이나 인터넷 평점의 형태로 나타난다.
구전 효과는 다음과 같이 고려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좋을수록 매력도는 쉽게 떨어지지 않고 일정한 수준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반면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일수록 매력도는 더 빨리 감소한다.
또 입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영화를 먼저 본 관람객들이다. 따라서 누적 관람객이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에 대해 얘기하기 때문에 영화의 매력도는 증가한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공식을 이용해 ‘태풍’과 ‘왕의 남자’의 매력도가 상영일수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봤다. ‘태풍’은 개봉 시점의 매력도가 4.45로 ‘왕의 남자’(4.21)보다 높았다. 개봉 후 7일까지의 관람객 수를 비교했을 때도 ‘태풍’은 ‘왕의 남자’를 30만명 가량 앞섰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인터넷에 남긴 평가에서 두 영화는 큰 차이를 보였다. 개봉일 ‘왕의 남자’가 9.66(10점 만점)이라는 평점을 받은 반면, ‘태풍’은 그 절반 수준인 평점 5.84의 혹평을 받았다. 이같은 차이 때문에 개봉 6일 이후부터 매력도는 ‘왕의 남자’가 ‘태풍’을 앞서기 시작했다. 결국 두 영화가 대조적인 흥행성적표를 받았다.
이심전심 마케팅
흔히 스타가 나오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의 매력도를 분석한 결과 인터넷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입소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화의 흥행 성적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험을 팔아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의 주방용품 전문회사 ‘타파웨어’는 독특한 방법으로 마케팅을 한다. 이 회사는 TV 광고 같은 전통적 방법 대신 주부를 대상으로 파티를 열어 제품을 직접 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입소문을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영화는 이런 경험을 전달해야 한다. 일반인은 영화 홍보행사에서 나눠주는 이벤트성 사은품을 받아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의 얘기나 인터넷의 평가를 보고 그 영화를 볼 것인지 결정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야 성공하고, 그런 영화가 흥행 대박을 터뜨린다. 예산은 적게 들였지만 잘 만든 한국 영화가 좋은 입소문과 댓글로 인정받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