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Issue] 유전자 가위 둘러싼 세기의 ‘특허 전쟁’ 2라운드 돌입

유전자 가위 둘러싼 세기의 ‘특허 전쟁’ 2라운드 돌입

 

2012년 생물학계에서는 역사상 가장 큰 ‘특허 전쟁’이 벌어졌다. 차세대 기술로 손꼽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크리스퍼 기술은 DNA에서 원하는 부위에 특정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제거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생물의 DNA를 편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자생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큼 획기적이었다. 크리스퍼 기술은 최근 몇 년간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됐다.

 

경제적 가치도 만만치 않다. 인도에 기반을 둔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오캄스(Occams) 비즈니스리서치· 컨설팅에 따르면 2022년까지 크리스퍼로 인한 수익은 연평균 23억 달러(약 2조6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분쟁도 있는 법.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실제 세포에 적용하는 데 성공한 미국의 두 기관이 2012년 이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면서 특허 전쟁의 막이 올랐다. 올해 초 이 특허 전쟁은 끝이 난 듯 보였지만, 최근 특허 전쟁이 2라운드에 돌입하면서 다시 이목을 끌고 있다.

 

 1. 라운드 

가장 먼저 발표한 UC버클리의 패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특허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
(Broad Institute of MIT and Harvard) 양쪽이 출원했다. 브로드연구소는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연구소다.

 

분쟁의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허 출원 시점으로만 보면 UC버클리가 조금 앞선다. UC버클리는 2012년 5월, 브로드연구소는 같은 해 12월 특허를 출원했다.

 

하지만 특허 등록을 먼저 완료한 곳은 브로드연구소다. 브로드연구소가 미국의 우선심사제도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우선심사제도는 미국 특허청(USPTO)이 요구하는 일정한 요건만 만족시키면 심사 청구의 순서에 상관없이 다른 출원보다 먼저 심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결국 2014년 4월 브로드연구소가 특허를 먼저 등록했다.

 

UC버클리는 특허청 심판위원회(PTAB)에 저촉심사를 요구했다. 저촉심사는 기술을 먼저 개발한 사람을 우선하는 선(先)발명주의 원칙을 근거로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했는지 밝혀낸다. 심사를 신청한 쪽이 기술을 먼저 개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상대방의 특허가 등록됐다 하더라도 무효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분쟁의 방향은 UC버클리 측 예상과는 다르게 흘렀다. 특허 심판관들이 저촉심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유는 양측의 기술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팀이 2012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8월 17일자에 발표한 연구는 처음으로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이하 크리스퍼)이라는 효소를 이용해서 DNA 절단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오로지 시험관에서만 진행한 실험이었다(doi:10.1126/science.1225829). 반면 2013년 1월 브로드연구소는 사람의 세포에서 크리스퍼가 DNA를 절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doi:10.1126/science.1231143).

 

결국 특허청은 올해 2월 세균과 같은 원핵세포에서 크리스퍼를 적용하는 경우와 인간의 진핵세포에 적용하는 경우는 전혀 다른 기술로 볼 수 있는 만큼 브로드연구소의 특허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UC버클리의 특허도 승인했지만, 원핵세포로 제한적이었다는 한계가 있어 포유류나 인간에게 적용되는 모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할 권리는 브로드연구소에 있다고 판정했다. 사실상 브로드연구소의 승리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유럽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유럽특허청(EPO)이 UC버클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올해 3월 28일 유럽특허청은 UC버클리가 출원한 크리스퍼의 특허를 승인했다. 특히 진핵세포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하는 부분까지 광범위하게 인정했다. 따라서 유럽 38개국의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암과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등의 유전자 치료 연구에 크리스퍼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UC버클리에 특허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특허권에 대한 정의가 더욱 복잡하다. 유럽에서 크리스퍼 특허 문제를 담당하는 캐서린 쿰베스 변호사는 8월 4일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특허 분쟁을 두 집단(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 사이의 문제로만 생각하는데, 훨씬 더 복잡하다”며 “유럽은 승자 한 명이 특허권을 독식하는 구조가 아니라, 크리스퍼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6개 기관이 권리를 나눠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6개 기관은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를 포함해 미국 하버드대, 독일 머크 사의 밀리포르시그마(Milliporesigma), 리투아니아 빌뉴스대 그리고 한국의 툴젠도 포함됐다.

 

 

 2. 라운드 

유전자 교정 기술 둘러싸고 복잡

 

일단락되는 듯 했던 ‘크리스퍼 전쟁’은 올해 4월 UC버클리가 미국 특허청의 판결에 불복해 미국연
방순회항소법원(CAFC)에 항소하면서 2라운드에 돌입했다.

 

UC버클리는 1차 판결 직후 “우리의 특허권은 세포의 종류와 관계없이 하나의 세포 안에서 크리스퍼가 작동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즉 원핵세포, 진핵세포를 떠나 숙련된 분자생물학자라면 UC버클리의 연구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진핵세포의 유전자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6개 연구기관이 UC버클리의 최초 연구를 토대로 진핵세포 유전자 편집에 성공한 점을 들었다.

 

UC버클리 측은 7월 25일 “미국 특허청의 심판위원회가 판결에 결정적인 핵심 증거를 무시했다”는 내용의 변론 취지서를 제출했다.

 

특허 전쟁 2라운드의 향방은 아직 불투명하다. 현재로서는 UC버클리가 유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UC버클리의 연구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핵이 존재하는 진핵세포의 경우 이 상황에 맞는 핵심 기술이 필요하다”며 “UC버클리 연구팀은 이 기술을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 기술은 크리스퍼 단백질을 진핵세포의 핵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핵이동신호(NLS·Nuclear Localization Signal) 기술이다.

 

미국의 크리스퍼 특허 분쟁에 관여하는 제이콥 설코우 뉴욕대 법대교수 역시 ‘사이언스’ 7월 26일자에 “미국 특허청 심판위원회가 놓친 부분도 있지만,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만큼 치명적이지 않다”며 “매우 철저한 검토 뒤에 판결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뒤집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소장도 “UC버클리가 이번에 제출한 변론 취지서의 내용은 이전에 주장했던 내용으로, 심판위원회가 이미 검토한 내용”이라며 “2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 특허 전쟁 2라운드의 이목은 UC버클리의 승소 여부 보다는 툴젠 등 다른 기관에 쏠려 있다. 툴젠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진핵세포 안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였고, 브로드연구소보다 2개월 앞선 2012년 10월 미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누가 먼저 개발했느냐(선발명주의)’가 아니라 ‘누가 먼저 출원했느냐(선출원주의)’를 우선시 하는 국가에서는 진핵세포에 대한 크리스퍼 특허를 가지기에 더 유리하다.

 

미국은 2003년부터 선출원주의로 특허법을 개정했다. 만약 2심에서도 브로드연구소가 승기를 잡는다면, 브로드연구소보다 더 먼저 출원한 툴젠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올해 8월 툴젠 설립자인 김진수 단장이 이끄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크리스퍼를 이용해 인간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인간배아의 유전자를 교정해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가 자손에게 전달될 확률을 50%에서 28.6%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사용한 크리스퍼 기술 중 일부가 툴젠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특허 전쟁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는 시각도 있다.

 

밀리포르시그마도 복병이다. 유럽 특허청은 올해 7월 7일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진핵세포의 DNA를 교정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권은 밀리포르시그마에 부여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런 이유로 밀리포르시그마는 “유럽에서는 김진수 단장과 미탈리포프 교수의 연구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셜코우 교수는 8월 4일 ‘사이언스’에 “예상치 못한 요소들이 발생하면서 특허 분쟁의 결과를 더더욱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며 특허 분쟁의 2라운드가 예상보다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법학
  • 경제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