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화가 달리가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면 중력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십자가와 예수는 하늘에 떠 있고, 중앙 십자가의 모서리에 입방체가 튀어 나와 있다. 달리는 중력의 법칙을 초월하고 싶었고, 입방체와 입방체의 결합을 통해 4차원을 묘사하고 싶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달리는 과학에 깊이 매료돼 있었다.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같은 과학잡지를 필독했고, 핵물리학도 열심히 공부했다. 달리가 현대과학에 흥미를 느낀 계기는 18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때문이었다. 그는 뒷날 “원자가 자신의 사고 중심에 자리잡았다”고 고백했다.
전작 ‘명화 속 신기한 수학이야기’에 이어 예술과 과학의 유쾌한 만남을 다룬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는 유명 화가의 삶과 그림이 얼마나 과학과 연관되었는지 흥미롭게 소개한다. 저자도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김제완 한국과학문화진흥회장, 김학현 서울과학고 교사, 이상훈 가톨릭대 교수,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원 등 과학과 예술, 글쓰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뭉쳤다.
책은 네 가지 큰 주제를 바탕으로 각 소주제에 걸맞은 명화를 감상하고 다시 명화에 얽힌 과학을 들여다본다. 이명옥 관장이 네 명의 과학자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서술돼 쉽고 편안하게 읽힌다.
빛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던 인상파는 혁명적이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지녔다. 순간의 감흥을 표현하려고 물감을 화면에 신속하게 덧칠하는 바람에 오히려 칙칙한 그림을 만들었다. 빛은 삼원색을 섞으면 흰색이 되지만 물감은 검은색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고 했던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는 화학자가 쓴 ‘색채의 대비와 조화의 법칙’ ‘현대색채론’ 등을 읽으며 과학 지식을 쌓았다. 쇠라는 이를 통해 ‘점묘법’을 개발했으며 선배들처럼 즉흥적으로 붓질을 하지 않고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한 후 화면에 색점을 찍어 ‘라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걸작을 그려냈다.
화가들은 과학자처럼 자연과 생명을 관찰해 그림에 옮겼다. 영국 화가 컨스터블은 기상일지까지 작성하며 하늘과 날씨를 관찰해 화폭에 옮겼다. 그의 기상일지에는 ‘하늘에는 은회색 구름, 약한 남서풍, 온종일 맑음, 그러나 한 때 비, 밤에는 순풍’이라고 적혀 있다.
이런 과학적 사고는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1679년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이라는 곤충화집을 발간한 메리안은 위대한 여성화가이자 곤충학자였다. 남성 중심의 학계는 그녀가 남긴 업적에 인색했지만 그녀를 비난한 과학자들조차 그녀가 가장 위대한 사이언스 아티스트라는 사실은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