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주방장이 면을 뽑는 과정을 지켜보면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이 분야의 달인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면발을 만들어 바늘귀에 꿰기도 한다. 머리카락의 두께가 고작 8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정도니 주방장들은 이미 수천년 전에 마이크로시대를 열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본격적인 마이크로시대는 반도체 관련 기술의 발달과 함께 열렸다. 손톱만한 칩위에 최대한 많은 회로를 올려놓기 위한 집적기술은 지난 수십년 간 눈부시게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머리카락 두께의 수백분의 1 정도는 눈감고 만들어내는 수준이다.
이처럼 미세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마이크로의다음단계인나노의시대를바라보고있다. 나노란10억분의1을뜻하므로1nm(나노미터)는${10}^{-9}$m, 즉 머리카락 두께의 10만분의 1에 불과한 길이다.
탄소나노튜브를 디스플레이에 적용
KAIST 화학과 김봉수 교수의 나노바이오광기술연구실은 이처럼 눈앞에 다가온 나노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나노시대를 가능하게 할 나노소자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나노소자로는 탄소나노튜브와 반도체 나노선을 들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직경이 수nm 정도의 속이 빈 길다란 원통형 분자다. 여름철 잠자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죽부인을 축소한 모습과 비슷하다. 1991년 처음 탄소나노튜브가 발견된지 겨우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기계적, 전기∙전자적 성질이 뛰어나 나노기술의 핵심 소재로 부상했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원자 6개로 이뤄진 육각형 기본구조가 서로 연결된 거대분자다. 나노튜브를 이루는 탄소원자는 서로 강하게 결합돼 있어 인장 강도가 아주 크다. 따라서 외부에서 힘을 받아도 부러지는 대신 휘어지고 힘이 사라지면 원상태로 복귀한다. 또 표면의 화학적 구조가 조금만 바뀌어도 전기적 성질이 쉽게 변해 다양한 수준의 반도체나 도체를 만들 수 있다.
최근 탄소나노튜브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중 하나인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의 핵심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브라운관이 하나의 큰 전자총으로 이뤄진 반면 FED는 작은 전자총이 많이 배열된 형태로 두께가 얇고 가벼운 디스플레이다. FED의 핵심기술은 전자총 소재를 개발하는 것인데, 최근 안정성이 뛰어나고 전자방출 효율이 높은 탄소나노튜브를 적용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김 교수팀은 최적의 물성을 갖는 탄소나노튜브 설계를 위한 이론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가 전자소자로 쓰이려면 전기적 특성이 일정하게 제어돼야 한다. 따라서탄소나노튜브와 주변 기체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연구가 필수적이다.
김 교수 연구실에서는 기체분자가 탄소나노튜브에 달라 붙을 때 탄소나노튜브의 전자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써서 분석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반도체 나노선도 김 교수 연구실의 주요 연구주제다. 금속 또는 반도체 원소로 이뤄진 나노선(nanowire)은 지름이 수-수십nm 정도인 아주 가는 선이다. 속이 비어있는 나노튜브와 달리 안이 채워져 있다. 구성성분에 따라 고유의 금속성 또는 반도체 성질을 보이기 때문에 집적도가 아주 높은 차세대 전자회로에 쓰일 수 있다.
지름 20nm 나노선 합성
현재 김 교수 연구실에서는 반도체 나노선을 직접 만든 뒤 그 전기적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 최근 합성한 황화아연(ZnS) 나노선은 직경이 20nm 정도로 반도체 성질을 보인다. 김 교수는“나노 메모리 소자나 나노 레이저를 제작하려면 반도체 나노선을 만드는 기술이 먼저 개발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레이저를 이용해 물질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DNA의 구성성분인 아데닌과 같은 생체분자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초저온 실험이 필요하다. 저온에서는 분자가 바닥상태(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상온에 비해 아주 단순한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어 그 해석이 무척 쉬워진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방법은 절대온도 1K(-2백72℃)까지 온도를 낮춘 실험용기에 생체분자를 미세하게 분사한 뒤 레이저를 쏘아 스펙트럼를 얻는 것이다. 그 결과 기존의 스펙트럼보다 해상력이 월등히 뛰어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생체분자와 물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 세밀한 과정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며“초저온 상태에서는 물과 생체분자가 단단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얻은 자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것은 예측불가능 한 길을 가는 과정”이라며“상상력이 풍부한 젊은이들이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연구실에는 2명의 박사후 연구원과 2명의 박사과정, 5명의 석사과정 학생들이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