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기뻐하면 땅이 생기를 되찾아 봄이 온다고 생각했다. 우주에도 봄의 대지처럼 초록으로 멋을 낸성운이 있다.
배꽃이 바람결에 흩어지며 봄 들판에 ‘하얀 눈’을 선사하는 계절이다. 그리스인들은 봄에 꽃이 피고 나무에 새싹이 돋는 이유를 데메테르의 기쁨에서 찾았다.
지난해 4월 유럽우주기구(ESO)는 초록으로 단장한 성운 ‘N214C’의 사진을 공개했다. 까만 우주에 뚫린 커다란 구멍처럼 보인다. 어디를 향한 통로일까. 푸른색 구멍 위쪽에는 불그레한 열매를 닮은 천체도 있다. 열매가 익어 막 벌어지려는 듯한 모습이다.
데메테르에게는 페르세포네라는 이름의 사랑스런 딸이 있었다.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가 그만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고, 그녀를 납치해 도둑 결혼을 했다. 이 사실을 안 데메테르는 분노했고 대지에 가뭄의 재앙을 내렸다. 대지는 점차 불모의 땅이 됐다.
최고의 신 제우스는 데메테르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하데스에게 그녀의 딸을 돌려주도록 권했다. 하데스도 꾀를 냈다. 지하세계의 음식을 하나라도 먹으면 지하세계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규칙을 이용했다. 그는 순진한 페르세포네에게 석류열매를 먹였고 그 결과 페르세포네는 1년 중 4분의 1을 지하세계에 살아야 했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 머무는 겨울엔 데메테르가 슬픔에 빠져 대지가 메마르지만, 페르세포네가 어머니를 찾아오면 땅이 활기를 띠고 봄이 온다는 얘기다.
푸른 성운 N214C는 봄을 맞아 초록빛을 띤 대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시커먼 지하세계에서 초록의 대지를 향해 열린 통로처럼 보인다. 사실 N214C는 뜨거운 기체로 이뤄진 성운이다. 대마젤란은하에 있는 이 성운은 무거운 별들이 탄생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N214C의 기체는 전자를 하나 이상 잃어버려 이온화된 상태로 성운 중심에서 가깝게는 125광년, 멀게는 170광년까지 퍼져 있다. 그렇다면 왜 성운의 대부분은 푸른 대지처럼 초록으로 빛나는 걸까. 2개의 전자를 잃어버린 산소 이온에서 나온 빛 때문이다.
성운 중심에는 N214C에서 가장 밝고 뜨거운 별인 ‘Sk-71 51’이 위치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별이 특이하게 태양보다 80배 가량 무거울 것이라고 추정한다. ‘Sk-71 51’의 북쪽에서는 기다란 호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별에서 맹렬히 뿜어낸 물질이 주변 기체를 강하게 밀어붙인 모양이다.
또 성운에서 열매처럼 보이는 천체의 정체는? 불그레한 빛깔의 열매라면 페르세포네가 먹었다는 석류열매가 아닐까. 사실 이 천체는 뜨겁게 이온화된 기체가 지름 4광년의 구형으로 모인 덩어리다. 가운데가 갈라져 보이는 이유는? 먼지가 이 천체를 거의 남북으로 가로질러 띠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