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휴대전화 고지서가 날아오는 날이면 고등학생 정민이는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지난달과 비교해 많이 나오면 안 되는데, 엄마가 미리 정한 금액은 넘지 말아야 하는데….’ 요즘 학교성적도 좋지 않아 걱정인데 휴대전화 요금까지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면 자신에게 쏟아질 잔소리는 불을 보듯 뻔하다.
휴대전화 요금이 초창기보다 많이 싸졌지만, 지금도 비싸다고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물론 요금에 민감하지 않아 얼마만큼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01년 시민단체들이 휴대전화 요금을 인하하라고 거세게 요구했을 때였다. 필자가 속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예측연구실은 한 이동통신사로부터 연구의뢰를 받았다.
엄마의 잔소리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의뢰내용은 요금을 과연 얼마나 인하해야 하며, 그러면 매출이 얼마나 감소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이었다. 혹시 요금을 내리면 휴대전화을 더 많이 사용해 통화량이 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도 연구의 중요한 과제였다. 마케팅 담당자는 요금인하 때문에 당장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회사 사장은 공공 서비스로서 사용자의 편익도 생각해야 하며, 요금을 인하하지 않거나 조금만 내렸을 경우 ‘미운 털’이 박혀 회사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사람들의 휴대전화 사용행태 유형을 분석함으로써 요금을 내릴 때 많이 사용할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을 중심으로 혜택이 돌아가도록 인하하는 방안이다. 그러면 회사는 매출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고 소비자가 원하는 요금인하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의 휴대전화 사용행태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요금에 민감해 요금이 싸지면 통화를 많이 하는 사람은 통화량을 얼마나 늘릴까. 이런 상황에서 회사 전체 매출은 어떻게 될까. 필자의 연구팀은 이런 문제에 답해 가며 ‘예측 수학공식’을 만들었다.
고등학생 정민이의 경우를 보자. 정민이의 이번 달 사용량은 지난 달의 고지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요금에 민감하니까. 지난 달에 많이 썼으면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고 이번 달에는 줄여야 할 것이고, 만약 지난 달이 시험기간이었거나 친구와 헤어져 휴대전화 쓸 일이 없어 요금이 조금만 나왔다면 이번 달에는 마음 편히 사용할 것이다.
정민이의 이번 달 휴대전화 사용량은 정민이의 지난 달 사용량에 따라 변한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번 달 통화량=상수1+상수2×지난 달 사용량’이다. 이처럼 어떤 수치가 자신의 과거 값과 관련이 있는 경우 ‘자기상관(autocorrelation)’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정민이처럼 엄마의 잔소리에 따라 사용량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형태는 ‘음의 자기상관’이 있다고 한다. 이때 수식에서 상수2는 음수가 된다.
사업하는 정민이 아빠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빠는 항상 생활패턴이 일정해 매달 통화량도 거의 일정하다. 그러면 월별 변동도 별로 없을 것이다.
요금인하에 대한 8가지 반응
과연 요금이 인하되면 정민이와 정민이 아빠는 어떻게 할까. 우선 정민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요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와 상의할 것이다. “엄마, 요금이 싸지니까 조금 더 써도 되지?”라고 말이다. 그러면 엄마는 “그래 조금만 더 써.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쓰면 잔소리할 거야”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요금이 인하되면 엄마의 잔소리는 예전보다 덜 듣게 된다. 정민이 아빠의 경우는 어떨까. 요금이 내리면 회사에서 유선전화를 써도 될 때 휴대전화을 쓰는 일이 늘게 된다. 또 휴대전화의 단축번호를 이용해 휴대전화을 전보다 더 쓰는 습관이 붙을 수 있다.
물론 이처럼 통화량을 늘리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금 인하에 상관없이 전과 동일하게 쓸 수도 있다. 실제 2000년 4월 휴대전화 요금이 인하된 적이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이 시기를 전후한 5만 여명의 통화량 자료를 통계 분석한 결과 모두 8가지(그림)의 휴대전화 사용량 행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새옹지마 예측법
연구팀이 분석한 자료에는 요금인하가 한번 밖에 포함되지 않았다. 만약 다음에 한번 더 요금을 인하하면 어떻게 예측해야 할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은 바로 개인의 포화(potential) 통화량이라는 개념이다. 즉 아무리 휴대전화이 좋아도 사람은 누구나 하루 24시간 이상 쓸 수 없고, 잠도 자야 한다. 아무리 요금이 싸져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포화 통화량과 현재 통화량의 차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래서 똑같은 정도의 요금을 인하하더라도 과거 요금인하 때보다 통화량이 덜 증가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포화치만큼 쓰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요금을 싸게 해줘도 더 이상 통화량을 늘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포화치와 현재 통화량의 차이가 큰 사람은 요금이 인하될 때마다 통화를 많이 할 것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통화량 행태를 찾아낸 후 요금이 인하되면 회사 전체의 매출이 어떻게 될지 알아봤다. 요금을 5% 인하할 때, 10% 인하할 때 등 다양한 경우의 연구결과를 제출했다.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요금을 몇% 내리면 회사 전체 매출이 요금인하 직후에는 감소하다가 몇 달 정도 지나면 사용량이 증가해 과거의 매출로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상 인하된 경우에는 과거 매출을 회복하기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2002년 1월 휴대전화 요금이 전체적으로 10% 가량 인하됐다. 연구팀에 의뢰한 이동통신사가 연구팀의 예측에 따라 요금인하 전략을 개발한 결과였다. 아쉽게도 이동통신사에서 실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예측치와 결과가 어느 정도 맞았는지는 알 수 없다.
예측은 우리의 행태를 자세히 관찰해 이를 수학공식으로 만들어야만 잘할 수 있다. 통화량 예측에서 사용한 행태는 우리의 일반 행태와 비슷한 경우가 참 많다. 이번 주에 열심히 공부했다면 ‘아, 열심히 했으니 좀 놀아도 되지 않겠어’라며 좀 더 놀고, 많이 놀았던 주는 반성을 하며 ‘이번 주는 열심히 해야 겠다’고 결심하는 행태와 비슷하다.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새옹지마(塞翁之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바로 전에 좋은 일이 있으면 다시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을 일이 있을 거라는 속담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과거와 반대로 움직이는 행태(음의 자기상관)를 반영해 앞으로의 행태를 예측하는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