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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섬의 남동쪽에 있는 「펠레의 산」은 세계에서 가장 왕성하고 빈번한 화산활동을 보여준다.

지난 5월 3일 새벽, 필자는 와이키키와 호놀룰루 그리고 진주만이 있는 오아후섬을 출발, 하와이섬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 유명한 하와이국립화산공원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이륙후 40분 남짓 지난 뒤 창밖을 내다 보니 거대한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4천1백70m의 우뚝한 높이를 자랑하는 활화산 마우나로아(Mauna Loa)였다. 제주도의 한라산처럼 마우나로아도 섬의 중심부위에 자리잡고 그 산세를 해안지역까지 떨치고 있었다.

비행기는 힐로공항에 도착했다. 인구가 약 5만명인 힐로시는 하와이섬의 두 도시중 하나인데 비(雨)의 도시, 난(蘭)의 도시로 유명하다. 면적이 제주도의 5배가 넘는 하와이섬이지만 인구는 10만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섬의 대부분이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화산지역이기 때문에 해안가에 거주지역이 몰려 있었다.
 

킬라우에아는 지난 7년동안 98번 분출했다.


물씬한 유황냄새를 맡으면서

좀 더 구석구석을 다녀보기 위해 렌터카를 이용했다. 인구 10만을 위한 도로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널찍하게 잘 닦인 도로를 따라 곧바로 하와이의 화산지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하와이화산관측소로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는 킬라우에아(Kilauea) 화산(1천2백22m)의 분화구 근처에 위치한, 말하자면 화산연구의 최전선을 찾은 것이다.

관측소 안에는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었다. 또 화산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관련 영화를 상영하고, 자세한 설명도 곁들여졌다. 다음은 그곳의 화산연구학자에게 들은 킬라우에아의 어제와 오늘이다.

화산의 폭발은 새로운 땅을 창조해 낸다. 아울러 화산산맥들과 광활한 용암대지가 생긴다. 물론 이런 일은 대개의 경우 매우 천천히 일어난다. 적어도 한 사람의 수명보다는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하와이섬 사람들은 화산활동으로 인한 지각의 변동을 짧은 간격으로 경험해 왔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젊은 화산 킬라우에아가 무궁무진한 조화를 부렸기 때문일 것이다.

킬라우에아를 처음 서구에 소개한 사람은 영국의 선교사 윌리엄 엘리스였다. 그는 산의 정상에 올라간 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분화구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눈부신 화염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용암이 지나간 뒤에도 끈질기게 서 있는 나무들. 하지만 이들은수일내에 쓰러지고 만다. 그 줄기가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펠레의 분노

원주민 안내인은 펠레여신의 신화를 들려 주었다. 불의 여신인 펠레는 지속적으로 공물을 받칠 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했는데 이를 어길 경우 크게 벌을 내렸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 벌은 화산의 폭발이었다. 그래서 하와이 사람들은 지금도 지표가 진동하면 펠레의 분노가 임박했다고 믿는다. 성난 펠레를 달래기 위한 의식이 자주 거행되었는데 이 행사는 헤이아우라는 일종의 사원에서 열렸다고 한다.

킬라우에아 주변의 헤이아우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섬의 남쪽 해안가에 있는 와하울라 헤이아우다. 이제는 폐허만 남아있는 이 와하울라는 지난해 여름의 용암 분출로 하마터면 그 흔적조차 사라질 뻔 했다.

엘리스의 등반후 킬라우에아는 곧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1866년에는 이들이 머물 호텔이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이 호텔의 최초의 손님은 '톰소여의 모험'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었다. 트웨인은 이곳에 머물면서 많은 관찰 기록을 남겨, 킬라우에아의 19세기 후반부 연대표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킬라우에아가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인 화산으로 밝혀지자 지질학자 화산학자들이 이곳에 몰려 들었다. 아마도 화산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 과학자들을 부른 손짓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 거의 규칙적으로 용암을 분출해 주었고, 폭발성 분출이 드물었기 때문에 신체적인 위험도 다른 화산에 비해 덜했다.

남동쪽으로 갈수록…

1909년 이곳을 찾은 MIT의 지질학자 토마스 자가 교수는 1912년에 하와이화산관측소를 설립했다. 1947년 미국 지질조사단에 인계될 때까지 이 관측소는 순전히 그의 노력에 의해 유지됐다.

지질학자들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는 하와이열도(카우이 → 오아후 → 몰로카이 → 마우이 → 하와이)의 남동쪽(하와이섬)에서 북서쪽(카우이섬)으로 갈수록 화산활동이 약해지는 이유를 밝히는 일이었다. 이 의문은 1840년에 이곳을 다녀간 미국의 젊은 지질학자 제임스 다나가 제기했다. 다른 네 섬들에는 적어도 한개 이상의 화산이 있는데 반해 유독 카우이섬만 화산 부재(不在)라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다나는 모든 섬들이 동시에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면면히 조사한 후대의 지질학자들은 북서쪽의 카우이섬부터 순서대로 출현했다고 결론지었다. 다시 말해 북서쪽의 카우이섬이 가장 오래된 땅이고, 남동쪽의 하와이섬이 가장 최근에 생긴 땅이라는 것.

하와이섬 내에서도 이런 경향은 그대로 나타난다. 이 섬에는 모두 다섯 개의 화산이 있는데, 섬 북서쪽의 화산은 남동쪽의 화산보다 그 활동력에 있어서 훨씬 미약하다. 예컨대 북서쪽에 위치한 코할라화산은 6만년 전부터 '휴업'중이지만 남동쪽의 킬라우에아화산은 지금도 '성업'중이다. 코할라에서 약간 내려온 곳에 있는 마우나케아화산도 노쇠하기는 마찬가지다. 3천년전부터 꼼짝않고 잠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킬라우에아와 밀접한 후알라라이와 마우나로아는 아직 살아 있다. 후알라라이는 1800~1801년 사이에 자신의 생존을 증명했고, 마우나로아는 최근까지 용트림을 했다(1984년).

땅 위로 솟아 올라올 날만 기다려

최근 지구과학자들은 하와이 화산지역이 5천6백㎞에 달하는 긴 해저산맥과 환초(環礁, 고리모양의 산호초)를 따라 형성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카우이에서 하와이까지 다섯 섬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사슬의 형성과정과 용암이 분출하게 된 배경은 판(板)구조론(plate tectonics)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베게아의 대륙이동설에서 비롯된 판구조론에 따르면 액체인 맨틀(mantle)위에 떠 있는 지각은 몇개의 딱딱한 판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진이나 화산활동은 이 판들의 충돌로 생긴다. 따라서 판들의 경계부위가 지질과 화산의 다발(多發)지역이 된다.

하지만 하와이의 화산들의 경우는 예외다. 실제로 하와이는 두 판이 만나는 경계선에 있지 않고 태평양판의 중간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이 판은 아시아 방향으로 매년 수㎝씩 밀려가고 있다.

하와이의 화산들은 바다 밑 약 96㎞ 지점에 있는 지구 맨틀의 열점(hot spot)으로부터 직접 생동력을 공급받는다. 그런데 태평양판의 이동에 의해 북서쪽의 화산들은 점차 열점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이것이 북서쪽의 화산들이 깊은 잠에 빠져든 원인이다. 그에 비해 하와이섬 남동쪽의 두 맹렬한 화산, 즉 마우나로아와 킬라우에아는 현재 바로 밑(맨틀)에 열점을 두고 있다.
 

최근에 용암이 도로까지 흘러 들어 왔다.


주로 비폭발성으로 분출돼

하와이의 화산은 개성이 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용암 분출이 비(非)폭발성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용암이 이처럼 완화된 형태로 분출되는 까닭은 마그마(magma)의 특이한 화학조성 때문이다. 지표에 도달하기 전 상태의 용암을 가리켜 우리는 마그마라 칭하는데, 하와이의 마그마는 주로 현무암으로 구성돼 있다. 상대적으로 액성(液性)이 큰 이 하와이형 마그마는 그안에 보다 많은 가스를 수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갈라진 지표면을 뚫고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 그렇게 요란하지 않다. 대개는 길게 늘어진 액상의 용암이 서서히 흘러내리는 광경을 연출한다.

또 하와이섬의 화산은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특히 길고 완만하게 경사진 거대한 분화구, 즉 칼데라(caldera)는 보는 이를 압도하고 만다. 밑이 평평한 사발 모양인 칼데라는 대개 산의 꼭대기에 있는데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예컨대 킬라우에아의 정상에 있는 칼데라는 폭이 4.8㎞, 깊이가 약 1백50m에 이른다.

하와이의 용암은 두 경로를 통해 분출된다. 그 첫번째 경로는 칼데라고, 다른 하나는 지표의 균열지역(rift zone)이다. 킬라우에아는 두 방향의 균열지역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킬라우에아를 중심으로 동부지역과 남서부지역에 걸쳐 있다. 이 균열지역은 해안까지 이어져 있는데, 멀리는 육지에서 수십마일 떨어진 연안 바다까지 뻗쳐있다.

최근 7년 동안 98번 분출해

엘리스가 다녀간 이후 1세기 동안 킬라우에아의 화산활동은 할레마우마우분화구에서만 일어났다.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는 산정상(頂上) 칼데라 지역 안에 있다. 할레마우마우의 분출사(史)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24년에 있었던 용암 분출이었다. 이때 킬라우에아에서는 드문 예인 폭발성 분출이 일어났다고 한다. 후에 이 '폭발성'의 원인은 물과 마그마의 상호작용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1924년부터 1934년까지 할레마우마우에서는 용암 분출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그후 18년간은 잠잠하다가, 1952년 할레마우마우에 다시 불길이 치솟으면서 킬라우에아는 그 명성을 되찾았다. 이날부터 1백36일동안 숨쉴 새 없이 계속 용암을 흘려 보냈던 것이다.

할레마우무우가 힘을 잃자 이번에는 동부의 균열지역이 꿈틀거렸다. 1969년 마우나울라에서의 용암 분출이 최초의 신호탄이었다. 그것도 단발성이 아니라 무려 5년간을 다연발로 퍼부었다.

1983년 이후로는 동부의 균열 지역 내의 푸우오오와 쿠파이아나하에서 주로 분출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분출된 용암은 금년에도 민가를 급습, 18채의 주택을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또 용암은 칼라파나해안가로 밀려 들어 바다를 땅으로 바꿔놓고 있다. 이를테면 용암의 분출로 땅이 새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87년 말부터 1989년 말까지 약 1백에이커의 땅이 새로 생겼다고 한다. 그 땅은 간척지와 같이 인공산(産)이 아닌 자연산으로서는 지구에서 가장 나이 어린 육지임에 틀림없다. 지난 1983년부터 7년에 걸쳐 98번의 집중포화를 퍼부운 결과, 하와이섬의 지도를 바꿔놓고 만 것이다.
 

푸우오오 상공에서 찍은 분화구 사진. 용암연못이 보인다.


밑으로 불덩이가 흐르고

옆에서는 이 장엄한 화산활동을 사진에 담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물론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불과 몇주전에 흘러 나온 용암이 수m앞에 굳어진 채로 펼쳐진 모습을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 밑에는 아직도 식지 않은 불덩어리가 이글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저쪽에 서 있는 나무들을 보라. 뜨거운 용암이 지나간 자리인데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다. 생명에의 애착이 그다지도 질긴 것일까.

화산이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이채로운 일이다. 물론 비(非)폭발성이라는 하와이 화산의 특징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많이 주었을 것이다. 또 화산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도 강한 흡인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울러 검은 모래해변 등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들이 하와이섬을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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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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