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려움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가려움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잠도 설치곤 한다.
가려움증은 각종 피부질환에 흔히 나타나지만, 단지 피부의 문제가 아니라 간장과 신장의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당뇨병이 있을 때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원인이 되는 질환을 고려하지 않고 가려운 증상만 치료하면 자칫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 이번에는 피부 증상 자체가 주로 문제인 경우만 다루도록 하겠다.
한방 치료가 과연 피부질환에 효과가 있을까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약이 피부질환 치료에 효과가 좋다는 보고가 여럿 있다. 기타사토 한방연구소나 게이오기주쿠대 한방클리닉 같은 일본 내 한방 의료기관이 집계한 환자 질환 통계를 봐도 알레르기 피부질환이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메마른 나무에 불나기 쉽다
요즘처럼 춥고 건조한 때는 땀의 분비가 적어 피부가 메마르며 거칠어지기 쉽다. 따라서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피부질환이 있으면 가려움증이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며, 피부질환이 없더라도 팔, 다리의 가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다. 피부 보습을 위해 목욕 횟수를 줄이고 비누를 쓰지 않으며 보습제를 자주 바른다고 하더라도 피부 자체가 심한 건성인 사람은 관리가 그리 쉽지 않다.
한의학에서는 피부가 건조한 것은 몸에 자양분이 되는 음(陰)의 성분이 부족한 것이고, 피부가 가려운 것은 염증과 같은 열(熱)의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다. 가령 나무가 메마른 것은 물이 부족한 것이며, 이렇게 건조한 조건에서는 산불이 나기 쉽다. 이런 자연현상을 인체에 대응해서 생각해보면, 피부가 건조하면 가려워서 긁게 되고 결국 피부색이 붉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피부를 윤택하게 하기 위해 몸의 음적인 면을 보충하는 약물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지황(地黃)이다. 가려움증은 열을 없애주는 치료법을 쓰는데, 약물로는 황련, 백선피, 고삼 등이 있다.
한방 치료법은 근본적인 치료(本治)와 나타난 증상의 치료(表治)로 나눈다. 본치란 체질과 연관된 몸의 부조화 상태를 정상화시키는 방법이며, 표치란 환자가 불편해하는 증상 자체를 완화시키는 방법이다.
피부가 건조해서 가려움을 느끼는 경우라면 지황과 같은 약물을 복용해 건성 피부 체질을 개선하는 방법이 본치에 해당하고, 가려움증 자체를 치료하는 약물은 표치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온청음(溫淸飮)은 본치를 위한 사물탕과 표치를 위한 황련해독탕을 복합 처방한 것이다.
양방과 한방의 합작품, 과민전
1994년 일본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 습진과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에게 한약인 십미패독산(十味敗毒散)과 양약인 항히스타민제(clemastine fumarate)를 투여해 비교 실험한 결과 증상이 호전되는데 양쪽이 거의 동일한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특히 한의학 관점에서 환자의 비만도와 체격을 고려해 증상에 맞춰 심미패독산을 투여한 경우 효과가 더 높았다고 한다.
양방을 고려한 한방 치료법은 알레르기 피부질환에도 응용되고 있다. '과민전’(過敏煎)은 중국의 의학자 축심여(祝諶予)가 수십년 동안 알레르기 치료에 사용했던 기본 처방이다. 축심여는 일본 금택의대를 졸업한 의사로 60여년간 진료와 연구를 하며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결합 치료를 주장했던 대표적인 중국 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과민’은 ‘알레르기’의 중국어이며, 과민전이란 굳이 우리나라말로 하자면 ‘알레르기탕’ 으로 번역할 수 있다. 과민전은 다섯 가지 약재 즉 은시호, 방풍, 오미자, 오매, 감초로 이뤄져 있다. 효능은‘피의 열을 식히고 풍을 없애주며, 음을 보하고 과민반응을 없애준다’고 나와 있다.
축심여는 환자가 알레르기 검사에서 양성을 나타낸 경우 두드러기, 알레르기 비염, 천식, 식품 알레르기,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 등 여러 가지 질환에 과민전을 사용했다. 축심여는 과민전을 기본으로 하고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합한 약물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알레르기를 치료해서 수십 년간 만족할 만한 효과를 봤다고 한다.
십여 년간 양방 치료로 별 효과가 없었던 알레르기 질환을 한두 달의 한방 치료로 완치한 사례가 있었다고도 한다.
과민전의 항알레르기 작용은 동물실험 결과로도 입증됐다. 과민전을 투여한 생쥐는 많은 양의 유리항체를 생산해 몸속에 침입한 항원을 중화시켰다.
또 임상 검사에서도 과민전은 환자의 혈청 중 IgG(항체)와 T세포(면역세포)에 작용해 IgG가 항원을 중화시키고, 항원과 IgE의 결합을 차단하며, T세포 또한 IgE의 생산을 억제함으로써 알레르기 반응을 억제했다.
체질개선은 막연한 표현
필자의 견해로는 축심여의 과민전을 이용한 알레르기 치료방법은 변병(辨病)과 변증(辨證), 즉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접목한 치료방법이라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즉 알레르기의 병명에 따라 기본적인 치료약을 먼저 설정한다. 그런 다음 한의학적인 진찰에 따라 필요한 약물을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아마 이런 방법이 진료하는데 간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한의학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될 가능성을 줄여주는 장점이 더욱 큰 것 같다.
왜냐하면 한방 진료에서 칼날같이 정확한 변증이란 항상 어려운 것이어서 가끔 약을 바꿔써봐야 비로소 맞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민전과 같은 처방은 양방 또는 한방에서도 치료 효과가 있는 약물들을 합쳐서 쓰게 되므로 어떻게든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추측이다.
임상에서 드물지 않게 보는 질환 가운데 만성적인 두드러기가 있다. 대부분의 두드러기는 생긴지 며칠 내에 없어지고 다음에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데도 오랜 동안 지속적 또는 간헐적으로 계속해서 두드러기가 나는 만성 두드러기가 있다.
임상에서도 환자가 수년간 만성 두드러기로 고생하다가 일정 기간의 한방 치료 후에 증상이 없어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이런 경우 막연하게 ‘체질 개선’ 때문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지만, 과학적으로 어떤 기전 때문에 효과가 있는지 밝혀진 것은 아니다. 한방 치료가 단지 일시적인 두드러기 증상 완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밝혀지지 않은 다른 기전을 통해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고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만성 두드러기에 효과가 있는 한약재는 지부자, 지실, 부평초 등을 들 수 있다. 지부자는 댑싸리의 열매이고, 지실은 탱자나무의 어린 열매 그리고 부평초는 개구리밥을 말린 것이다. 이런 약물은 오래전부터 피부질환과 두드러기에 사용돼 왔는데, 실험적으로도 알레르기 반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만성 피부질환의 영역에서 한방 치료를 통해 일시적인 증상을 완화시키기보다 지속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좀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생활약탕기
피부가 가려울 때 해수욕을 갔다 온 다음에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이 피부 가려움증을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다음 내용은 ‘동의보감’에 수록된 피부 치료법 가운데 소금물로 목욕하는 방법이다.
‘염탕(소금물을 끓인 것)은 모든 종류의 가려움증을 치료한다. 소금 1말을 물 10말에 넣고 끓여 절반으로 줄면 따뜻하게 해서 세번 목욕한다. 가려움증을 목욕으로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소금물을 진하게 달인 것으로 목욕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해수욕을 하면 더욱 좋다.’
그런데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소금물의 농도는 매우 높다. 이런 경우 오히려 피부 손상이 생길 수 있으므로 바닷물과 비슷한 3% 정도의 소금물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부 증상이 소금물 때문에 오히려 심해질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중단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