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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박사와 함께한 7인의 우주인

아시아의 자존심, 일본 우주인 양성 프로젝트

2005년은 일본 과학미래관 관장인 모리 마모루 박사에게 특별한 한 해였다. 그가 일본 최초 우주인으로 선발된 지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유리 가가린은 ‘지구는 푸른 별’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으로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죠.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일본의 우주개발 수준은 아시아에서 최고라 할 수 있다. 우주인 양성 프로젝트 역시 우주개발의 정도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단계다. 일본은 이미 8명의 우주비행사를 양성했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우주인 양성은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우주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통해 우리나라 우주인 양성 프로젝트를 다시금 생각해봤다.
 

최초로 '우주 유영'을 성공해낸 노구치 소이치. 이로 인해 일본 우주인의 역량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이 선택한 8명의 우주인

일본은 1985년부터 지금까지 4회의 선발을 거쳐 모두 8명의 우주인을 배출했다. 1985년 첫 번째로 ‘탑재체전문가’(Payload Specialist ; PS) 선발을 목적으로 지원자 533명 가운데 서류심사를 비롯한 3단계의 심사를 거쳐 3명의 우주인을 선발했다. 그 후로 1992년에 ‘임무전문가’(Mission Specialist; MS) 1명, 1996년에 MS 1명, 1999년에 국제우주정거장(ISS) 승무원 3명을 선발해 모두 8명으로 늘었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 모리 마모루였다. 홋카이도대 출신의 화학자인 모리 마모루는 미세중력활용실험인 ‘스페이스랩-J’(Spacelab-J)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본 최초의 공식 우주인으로 일본은 프로그램 참여 대가로 300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야 했다.
 

일본 최초의 우주인 모리 마모루, 현재 일본 과학미래관 관장으로 우주개발을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도 한다.


모리 마모루의 우주비행은 1992년 9월로, 미국의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를 타고, 190시간 30분 23초 동안 127회의 지구궤도 비행을 하며 재료처리와 생명과학에 관한 44건의 실험을 수행했다. 모리 마모루가 우주인으로 선발된 때가 1985년이었으므로 7년의 훈련 기간을 거치고 우주로 나간 것이다. 그 후로 2000년 11월, 268시간을 비행하며 MS 역할을 했다.

사실 일본인으로 우주를 여행한 사례는 그보다 2년 전인 1990년도에 이미 있었다. 일본 도쿄방송(TBS)의 토요히로 아키야마와 료코 기쿠치가 러시아와의 상업적 협약에 의거 1989년에 우주비행사로 선발됐다. 두 사람은 1년간의 간단한 훈련을 마치고 소유즈 TM-11에 탑승하여 미르에서 9일 동안 머무르면서 우주생활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하고 인간 수면 실험에 참가했다. 하지만 우주개발 임무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모리 박사를 최초의 우주인으로 인정한다.

모리 마모루와 함께 선발된 일본우주개발사업단(NASDA) 우주환경이용시스템본부 소속 무카이 치아기와 도이 다카오도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무카이 치아기는 주로 PS로 활동하며 1994년과 1998년, 컬럼비아호에 탑승하여 우주생리학, 방사성생물학 관련 미소중력실험에 참가했다. 도이 다카오 역시 PS로 선정되어 스페이스랩-J에 참여했다. 하지만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 폭발사고로 우주왕복선 운항이 중단되며 우주로 나가지 못하고 선발 후 12년이 지난 뒤인 1997년 11월 컬럼비아호에 탑승했다. 그의 임무는 고장난 태양관측 위성인 스파르탄201을 회수해 수리하는 것으로 그의 임무 성공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2년 일본은 MS 선발을 위해 두 번째 우주비행사 선발을 실시했다. 이때 선발된 우주인이 바로 와카타 고이치다. 최초의 일본인 MS로 선발된 와카타 고이치는 1996년과 2000년 우주비행을 통해서 ISS 건설에 필요한 MS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1996년에도 일본은 1명의 MS를 선발했다. 이때 선발된 우주인이 노구치 소이치로 지난해 7월 컬럼비아호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주인공이다. 차세대 초음속기 엔진개발 회사에 근무했던 노구치 소이치는 2001년 우주왕복선 탑승이 결정됐으나 컬럼비아호 폭발로 발사가 연기되는 바람에 선발 후 십여 년을 기다려야 했다. 노구치의 지난 임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우주 유영’이었다. 우주탐사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 유영을 하면서 디스커버리 호 선체 밑에 튀어나온 2개의 충전재 조각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일본 우주인의 기술력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 선정된 일본 우주인은 1999년에 선발한 후루가와 사토시, 호시데 아키히코, 스미노 나오코, 3명이다. 세 사람 모두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승무원으로 선발된 MS로 외과의사, 일본 H2형 로켓개발자, 일본 실험 모듈(JEM, 키보) 개발 업무 담당자로 구성되어 있다. ISS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우주인 후보는 참가하는 나라의 우주기관이 책임을 맡아서 정해진 훈련항목을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 자체 기관에서 시행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월등히 많은 우주인을 선정하고 양성하고 있다. 이는 바로 우주개발의 수준과 직결된다. 일본은 이미 독자적인 우주센터를 건설해 자체 로켓을 개발하여 발사하고 있으며, ISS 건설에도 미국, 러시아와 어깨를 견주고 있다.
 

우주인 노구치 소이치. 칼럼비아호 폭발 후 첫 우주왕복선 비행에 성공한 주인공이다.


일본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 실시하고 있는 우주인 양성 프로젝트와 우리나라와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우주인 양성은 일단 선두로 나선 미국과 러시아의 룰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우주인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역할은 미국과 러시아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역시 선발과정은 우리나라가 제시한 우주인 선발과 비슷하다. 최초 서류심사를 거쳐 신체검사, 면접, 필기시험, 정신심리검사 등의 3단계 선발과정을 거치며, 선발 요건 역시 과학적 지식 및 전문성, 의학적 전문성, 대인관계 관련 행동학적 적합성, 언어능력 등이며, ISS 승무원 행동규약 준수도 선발 요건에 들어 있다.

우리가 러시아 우주센터를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 우주인의 훈련과정은 대부분 NASA 존슨우주센터에서 진행된다.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보다는 우주왕복선을 이용한 임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ISS 건설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으로 실험을 담당하는 PS보다는 실제 우주개발 인력인 MS가 대부분이다. 훈련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양성계획과 다른 점도 ISS 관련 MS훈련에 있다. ISS 승무원의 경우 자국의 우주기관이 교육을 담당하도록 돼있어 츠쿠바우주센터와 같은 일본 자체 우주기관에서 이뤄진다. 이것은 우주개발의 진행에 따라 필요한 인력을 계획적으로 양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태양관측위성 스파르탄201의 회수 장면.


이제는 현실이다

우주 비행사 양성은 그 나라의 역량과도 직결되는 문제지만 처음에는 꿈과 희망에서 시작된다. 일본의 우주인 선발도 그랬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의 경우 특진은 물론 그의 조각상까지 만들어 국민적 우상으로 떠올랐을 정도다. 하지만 이미 8명의 우주인을 배출한 일본의 경우는 이제 꿈을 넘어서 현실이 되었다.

이제 일본은 미국이나 러시아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서 독자적인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난 2003년 JAXA라는 이름으로 우주개발의 통로를 하나로 마련하면서 H2A 7호기의 성공, 소행성 탐사선인 하야부사의 소행성 이토카와 암석 채취 등에 성공했고 장기 우주개발계획의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중국의 유인우주선 선저우 6호의 발사 성공에 자극받아 유인우주선 발사에 시간 다툼을 하고 있다.

JAXA가 아사히신문에 발표한 미래우주개발에 관한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우주에 화성탐사 등 우주탐사의 거점이 될 우주기지 건설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 발표한 달기지 건설보다 한 발 더 앞선 우주개발 계획으로 화성에 가는 최초의 지구인이 일본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야마카와 히로시 우주과학연구본부 교수는 “아직 기초 계획 단계지만 다른 나라와 차별된 일본의 독자성을 살리고 싶다”고 하면서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했다.

이미 우주센터를 건설하고 독자적인 우주로켓을 발사한 일본은 우주개발에서 우리나라보다는 월등히 앞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비록 우리는 우주인 양성 프로젝트의 첫 단추를 끼우고 있지만 우주개발의 구체적인 목표 설정과 장기적인 계획에 발맞춘 우주인 양성을 통해 우주를 누빌 한국인 우주인을 기대해 본다.
 

01 ISS승무원으로 선발된 후라가와 사토시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일본실험모듈인 '키보'관련 훈련을 받고 잇는 장면. 02 소행선 탐사선 '하야부사'의 모습. 지난 2005년 최초로 소행성 암석채취라는 쾌거를 이뤘다.


우주인 배출 사업, 잠시 숨고르기?

지난 ‘1.2 개각’으로 스페이스코리아에 강한 의지를 표명해온 오명 과학기술부총리가 물러나고 민간투자를 유치할 사업자 선정이 늦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우주인 배출사업에 적신호가 켜진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 우주청 관계자들이 우리측이 제시한 탑승시점에 대해 난색을 표명하면서 자칫 사업 추진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과기부 관계자는 “러시아측이 2007년 탑승은 불가능하다는 의사를 표명해 이르면 2008년 4월께나 가능할 것 같다”며 “오는 4월로 예정된 1차 우주인 후보 선발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우주인 사업은 우주개발중장기사업 가운데 핵심 사업으로 폐기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차기부총리가 취임하는대로 곧 새로운 사업 추진 일정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배출사업을 위해 과기부에 파견된 인력의 원대 복귀가 결정됐고 우주선 탑승 시점에 대한 결정권이 우리측에 있지 않아 앞으로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2월 25일 러시아 우주청 크라스노프 유인우주국장은 과기부와 항국항공우주연구원을 방문해 “미국이 우주왕복선의 운행차질로 2007년 4월 러시아 우주선을 이용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체류중인 미국 우주인의 교대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ISS기본협정에 따라 러시아는 미국을 포함한 ISS회원국이 우주선 탑승을 요청해올 경우 우선권을 주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ISS협정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항우연은 당초 사업 계획대로 지난 1월 우주인 선발과 양성사업을 추진할 사업국을 정식으로 여는 한편, 이달 중 임무개발소위원회를 열어 우주인이 수행할 임무를 검토할 계획이다. 소위원회는 자체 개발한 임무와 러시아측이 요청한 임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올해 중 우주인의 임무를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우주인의 분류 : 우주인은 그 임무에 따라 사령관(CRT), 파일럿(PLT), 임무전문가(MS), 탑재체전문가(PS)로 나눈다. 사령관은 우주선과 승무원을 비롯한 모든 책임을 지고 파일럿은 사령관을 도와 우주선을 조종한다. 임무전문가는 ISS조립, 우주유영, 로봇팔과 같은 시스템을 운용한다. 탑재체전문가는 탑재체 운영에 대한 책임자로 주로 우주실험을 담당한다.

스페이스랩-J : NASA와 NASDA(현 JAXA)가 공동으로 진행한 우주왕복선 유인 실험모듈 설치 및 우주실험 프로젝트. NASDA에서는 35개의 실험을, NASA에서는 7개의 실험을 지원하여 모두 44개의 실험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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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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